양석준 상명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재미’ 요소 찾는 독특한 한국 술문화
품질과 맛·향 위주 전통주 홍보 벗어나
재미있는 추억 더할 마케팅 나서야

IMF 금융위기 사태 때의 일이다. 세계적인 주류회사 A사는 한국의 대형 맥주회사를 하나 인수한다. A사는 600년 이상의 맥주 제조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었지만 한국시장 진출 초기에 수많은 실패를 한다. 한국의 술문화가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A사는 초기에 한국의 맥주 시장을 조사하다 깜짝 놀란다. 한국 소비자들은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소맥’이었다. A사는 600년 이상 맥주를 만들었던 역사와 자부심이 있었다. 때문에 맥주에 싸구려 술인 소주를 섞어 마시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맥주의 고유한 맛과 향을 해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에 A사는 소맥을 마시는 이유에 대한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다. 결론은 ‘맛있다’와 ‘빨리 취해서 놀 수 있다’였다. 유럽 맥주 전문가들은 기존 한국맥주의 알콜도수가 문제라고 판단했다. 소맥으로 알콜도수를 높이니 맛있다고 했고, 알콜 도수가 높으면 당연히 빨리 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A사는 최적의 소주-맥주 비율을 찾았고 고알콜 맥주를 출시했다. 한국 소비자들은 소맥을 만드는 귀찮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최고로 맛있는 맥주를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이 맥주는 잘 팔렸을까? 

결국 깔끔하게 실패한다. 왜 실패했을까? 이유는 유럽과 한국의 술문화의 차이였다. ‘술’의 의미와 각인이 유럽과 한국은 달랐던 것이다. 세계적인 소비문화코드 분석가 클로테르 라파이유는 프랑스의 술문화를 분석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술의 맛과 향을 교육받는다. 가족 파티에서 부모님이 샴페인을 즐길 때 만일 아이가 “엄마 그게 뭐야? 나도 줘!”라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어린이는 안돼!”라고 거절하지 않는다. 프랑스 부모들은 크래커에 샴페인을 조금 찍어서 아이들에게 준다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이건 무슨 맛이지?’하면서 향도 맡아보고 맛도 보고 하면서 자라난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프랑스 사람들은 술의 맛과 향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맛과 향을 중시 여기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에서 술은 성인 전에는 못 마시는 것이다. 하지만 중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에서 몰래,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에서는 쓰러질 때까지 마신다. 그래서 술의 맛과 향을 배울 기회는 한국사람에게 없다. 친구들과 놀기 위해 술을 마신다. 때문에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술에 대한 각인은 바로 ‘재미를 위한 도구’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술의 맛과 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저렴한 소주가 많이 팔리게 되고, 맥주도 라거 한 종류만 있어도 상관없게 된다. 

A사가 초기 실패한 원인은 유럽인의 술문화로 한국 소비자를 해석한 것이다. 소맥을 먹는 한국 소비자들이 중시한 것은 맛과 향이 아니라 ‘재미’요소였던 것이다. 맛과 향이야 소맥보다는 A사가 만든 고알콜맥주가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 요소가 빠진 ‘이미 섞여진 소맥’을 한국인이 사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A사의 초기 실패는 또 있었다. 진출 초기에 한국 여성들은 레몬을 한 조각 넣어서 병째 마시는 C 수입 맥주를 선호했다. 이를 본 A사는 여성들을 위해서 레몬맥주를 출시한다. 결과는? 거의 실패! 사실 한국의 여성들은 레몬맛 맥주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맥주에 레몬을 넣는 행동을 무의식 중에 재미삼아 즐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A사는 이런 실패를 바탕으로 한국 술문화를 제대로 이해한 후 맥주 마케팅을 바꾸었고, 결국 한국에서 맥주 부문 1위를 차지한다. 

한국 전통주의 부진과 지역주의 약진도 술문화로 해석이 가능하다. 전통주는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낸 맛, 향, 품질과 건강 등을 강조한다. 현대 한국 소비자들의 술문화인 “재미”와는 거리가 있다. 때문에 법까지 제정해서 진흥하려 했지만 성과가 미미했던 것이다. 반면에 지역주는 매우 잘된다. 소비자들은 강릉에 가면 버드나무집 맥주를, 제주에 가면 제주 에일 같은 지역주를 마셔보고 싶어한다. 판매도 잘된다.

왜 그럴까? 그 지역주를 마신다는 이미지가 바로 강릉에 여행 온 재미, 제주에 여행 온 재미를 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주는 전통주 중 하나인 지역특산주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지역주는 맥주라서 그 지역농산물을 쓰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한국 술의 소비문화코드인 ‘재미를 위한 도구’ 개념을 이해하면 왜 품질과 맛, 향 등에 초점을 맞춘 전통주는 활성화가 어려웠었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전통주는 소비자의 재미가 아닌 ‘품질’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없어진 오랜만의 여름이다. 많은 분들이 농어촌 지역으로 휴가를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한국의 술문화를 이해하고 이에 맞는 지역주 마케팅을 준비했으면 한다. 재미를 줄 수 있는 지역주가 우리 농산물을 원료로 한 지역특산주면 더 좋겠다. 그렇게 해서 올여름 농어촌으로 휴가오신 분께는 더 재미있는 추억을, 농어촌 지역민에게는 더 큰 수익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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