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소장(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한국농어민신문] 

마을 대소사 논의할 협의기구 필요 
시대에 맞게 개발위원회 재조정 모색
운영위원회와 일치가 가장 바람직

지난번 칼럼(“역사적으로 되짚어보는 마을 이장 제도”, 2022.6.17.)에서 이장 제도의 이중적 성격을 소개하고, 마을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바가 있다. 페이스북에도 기사를 소개했더니 이런저런 문의도 많았다. 변화를 싫어하는 농촌 사회에서 이장 제도는 ‘뜨거운 감자’에 해당하고,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또 개혁이 필요함을 인정하면서 마을 스스로 제기하기 힘드니 외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앞으로 이런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며 이번에는 한걸음 더 들어가 개발위원회 제도까지 다뤄보고자 한다.

사실 개발위원회 제도가 언제 생겼고 왜 있는지 역사적 근거는 모호하다. 아니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주민들도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인회나 부녀회, 청년회 같은 자생 조직도 아니고,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 영농회장과 같은 직책도 아니다. 그런데도 개발위원장이란 직책은 있고, 개발위원회 회의가 열리는 것도 아니니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마을총회(대동회)가 주민 다수가 참여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면 개발위원회는 제도적 측면에서 일상적인 대소사를 결정하는 운영위원회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개발위원회 제도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정기회의는 이장회의 결과를 전달받는 경우에 그치기 때문이다.

일단 개발위원회의 설치근거나 구성, 역할, 운영 등은 각 지자체의 조례에 규정돼 있다. 가장 오래된 조례가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시(혹은 군) 리 개발위원회 조례”라는 명칭으로 거의 대부분의 지자체마다 제정돼 있다. 그래서 조례의 제정시기나 명칭으로 추측하자면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아주 밀접하다. 상위법에서 근거를 찾자면 지방자치법 제7조 제6항 “행정리에 그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하부조직을 둘 수 있다”(신설 2021.4.20.)는 규정이 해당된다. 하지만 법조문 내용이 거의 개정되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된 경우가 많고, 개발위원회 조례 자체가 없는 지자체도 있는 것으로 보면 그만큼 중시되지 않는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로 전북도의 기초 지자체 조례는 “○○시(혹은 군) 리의 하부조직 운영에 관한 조례”로 통일돼 있고, 조례 속에 이장, 반장과 더불어 개발위원회가 명시돼 있다. 특이하게 고창군은 2020년 1월에 조례를 개정해 개발위원회 명칭을 ‘마을가꾸기 위원회’로 변경했다. 

개발위원회 역할은 조례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비슷하다. 첫째, 주민 참여의 마을 개발 촉진과 문화·복지·후생, 공동 이익 사업, 재난방재, 예비군 운영 등의 지원. 둘째,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른 사업의 계약과 시공 계획의 작성 집행 및 수입금의 관리와 정산에 관한 사항. 셋째, 행정에 대한 건의나 지원 요청 등이다. 넷째, 지자체에 따라서는 ‘마을총회에서 선출한 이장의 추천’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도 다수 있다. 다섯째, 위원회에서 심의, 결정한 사항 중에서 행정적 지원이 요구되는 사항은 읍·면장에게 건의할 수 있으며, 위원회의 건의를 받으면 “시책반영 및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규정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개발위원의 선정 방식은 마을총회에서 주민들이 직접 선출하는 경우, 읍면장이 위촉하는 경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합해 명시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인원수 규정도 지자체마다 다양하다. 예를 들어, “리·통장, 새마을지도자와 읍·면·동장이 위촉한 15인 이내”(보령시), “마을총회에서 선출한 5명 이상, 15명 이하”(금산군), “리장, 예비군 리대장, 읍면장이 위촉한 15인 이내”(청도군), “60호 미만인 마을은 10인 이내, 60호 이상인 마을은 15인 이내”(해남) 등이다. 개발위원장은 마을총회나 개발위원회에서 선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경상북도는 대부분 이장이 겸임하도록 규정해 통합성을 중시한다. 반면에 전라북도는 이장이 개발위원회의 간사를 담당하도록 역할을 분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장 제도에 비해 개발위원회는 광역 지자체의 역사적 특성을 훨씬 더 많이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역사적 성격과 조례 내용을 보자면, 제도적 측면에서 개발위원회는 마을 내부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법을 논의할 때 총회(대동회) 다음으로 중요한 기구에 해당한다. 하지만 ‘개발의 시대’가 지났다는 역사적 측면도 있고, 마을자치 관점에서 주민 스스로 마을 실정에 맞게끔 운영방식을 다양하게 정해볼 수 있다. 개발위원회가 아니라도 마을의 대소사를 일상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협의기구로 운영위원회 같은 조직은 마을 민주주의 측면에서 꼭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은 현재의 개발위원회 조례를 인정하고(조례가 없거나 마을규약으로 위임되어 있으면 무시해도 무방), 개발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일치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행정에 대해서는 개발위원회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운영위원회로 보자는 제안이다. 혹은 개발위원회 제도가 지방자치법에서 지자체로 이관한 사무에 해당하므로 지역사회 논의를 거쳐 조례를 전면 개정하거나 고창군처럼 마을만들기위원회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마을의 권한과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면, 마을자치회의 대표로서 회장이 있고, 이장은 행정과의 창구 역할만 담당하며, 각종 수익사업이나 프로젝트는 별도 추진위원장이 담당하는 것이 미래지향적이다. 운영위원회(개발위원회 대체)는 마을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협의하는 임원회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운영위원장은 회장과 이장, 추진위원장의 역할분담에 따라 겸직하거나 별도로 선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의는 매월 1회 정기적으로 열고, 회의록과 중요 결정 사항은 마을 게시판에 공지하거나 월례회의에서 의무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한두 사람이 마을을 끌고 갈 수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서로 조정하며 합의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주민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마을에서 민주주의도 꽃 피울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개발위원회 제도도 현실에 맞게끔 과감하게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초고령화 상황이라 하지만 역할분담이 불명확하고, 권한과 책임을 골고루 분배하지 못하면 마을에 갈등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새롭게 문제제기 하는 것 자체가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논의를 계속 묻어두고 갈 수는 없다. ‘마을 주민 모두의 약속’이라 할 수 있는 자치규약을 제정하는 관점에서도 중요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번 여름 농한기에 마을정자나 회관에 모여 가볍게 논의를 시작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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