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절대량 부족 아닌 빈부격차·배분의 문제
남은 음식물·과도한 음식 섭취 줄이기 등
‘식량위기 대처’ 인식 개선 이뤄져야

얼마 전 UN에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몇 달 내에 세계 식량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식량가격이 30% 가까이 인상됐다는 뉴스까지 보도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에 전쟁까지 더해져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부족과 대규모 기아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식량의 부족과 식량 위기를 숱하게 우려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가 식량 부족에 직면한 것으로 이해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나는 이 부분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인류가 생산하는 식량의 총량이 79억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인구가 먹고 생존할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빈부 격차와 분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구를 남반구와 북반구로 구분해서 봤을 때 북반구 국가 중에 배를 곯는 나라는 많지 않다. 미국·유럽·극동 아시아 등 대부분이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다. 오히려 먹고 남은 음식물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북한을 비롯한 일부 국가를 빼면 대부분 배고픔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절대 빈곤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아가 심각한 사회 현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지나친 열량 섭취로 비만과 성인병 등을 더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물론 남반구의 아프리카 또는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 등에서 기아 문제가 심각한 것은 명백하다. 즉 이론상으로는 부자나라의 식량을 잘 배분하면 저개발 국가의 기아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물리적인 식량생산이 이뤄지고는 있다고 생각된다. 국제사회의 원만한 노력으로 부의 분배를 성공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지만,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기아와 가난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인류가 먹고도 남을 만큼 식량이 생산된다고 주장하면 문제 인식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식량 생산량은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식량이 부족하다는 인식의 확대는 결국 과도한 식량생산 증대라는 잘못된 메시지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제기구는 계속해서 식량 부족사태를 예견하고 있는데, 오히려 많은 나라들은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걱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구촌은 식량 부족사태를 걱정하기에 앞서 식량의 고른 분배와 유통을 걱정하는 것이 더 우선돼야 한다.

국내 통계 자료를 보면 성인 비만 인구도 늘고 있고, 1인당 지방공급량 또는 1인당 하루 평균 칼로리 섭취량 등 영양지표 대부분이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처한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국민 1인당 연간 육류 (돼지고기·소고기·닭고기 기준) 소비량은 대략 60kg 수준이다. 이를 하루치로 환산하면 160g 정도다. 고기 1인분 정도를 매일 먹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설사 지금보다 육류 섭취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해도 영양학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미국은 더욱 심각한데, 미국 성인인구 절반이 과체중 내지는 비만일 정도로 너무 많이 먹고 있다. 지구촌 79억 명 인구 중 30억 명이 중국과 인도의 인구이고 유럽·미국 인구가 12억 명 정도인데 이들 나라도 절대 빈곤층이 상당 수 있지만 국제사회가 도와줄 필요는 없다. 아프리카 인구수가 12억 명 정도 되기 때문에 67억 인구가 12억 인구의 절대 기아를 해결할 수도 있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즉, 현재까지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면 식량의 절대 부족이 아니라 풍요로운 식량의 부족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지 모른다.

뉴스를 보니 식량위기를 걱정하는 국제기구의 책임자들 상당수가 비만으로 보여지고, 심지어 기아 사태에 직면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표들도 비만이나 과체중이 상당수 보인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식량 부족 사태를 우려한 국제사회가 과도한 식량 증산을 가장 우선된 해결책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면 결국 지구의 한정된 자원을 더 많이 소비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식량 부족이라는 메시지가 불필요하게 국제 식량 가격 상승을 오히려 부추기는 측면이 있을까 우려된다. 필요한 물량이 충분히 유통되고 있음에도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 메시지는 제품의 가격을 상승시키는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식량 부족을 걱정하기 전에 식량의 고른 분배와 유통을 통해 남는 음식물을 줄이고, 과도한 음식 섭취를 줄여서 식량위기에 먼저 대처하자는 인식 개선이 우선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현재는 코로나19와 전쟁 같은 예기치 못한 사태로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하고, 경기침체가 현실화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를 간과하고 식량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미래에 발생될 수 있는 식량 위기를 미리 준비하자는 다양한 우려의 메시지를 이해 못한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전쟁 같은 예측하기 힘든 변수를 빼면 적어도 선진국과 선행 개발도상국들은 식량 위기가 아니라 식량 배분의 위기라고 더 깊이 인식하는 것 또한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과거 인구 4000만 시절에 대한가족계획협회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 했고, 정부가 나서서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가 이제 와서 인구절벽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단순한 산술적 예측이 미래에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수차례 경험해 오지 않았던가. 향후 인구가 늘어날지 줄어들지 식량이 부족할지 남을지 예측하기 쉽지 않으므로 한쪽 방향으로만 극단적인 인식몰이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본다.

동물 복지와 인간 복지는 서로 상충될 수 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은 경제 발전과 상충될 수 있고, 질병 방역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상충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양보 없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식량 부족을 우려하기 전에 고른 분배와 적절한 활용을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다양한 각도로 문제를 보는 현명한 시각을 필요로 하는 요즘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