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성패 설명하기 어려운 농업 R&D
국민 공감대 얻고 지지 끌어내려면
우수사례 적극 제시하고 설명해야

누리호 발사 성공은 한국 항공우주 R&D에 한 획을 그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이 2010년 3월에 시작되었으니 사업개시 12년 만에 이룬 쾌거이고, 이로써 한국은 세계 7번째로 위성발사기술을 확보한 나라가 되었다. 초기에는 러시아 기술진으로부터 너희가 뭘 아느냐는 눈칫밥을 견뎌야 했지만 정부의 일관된 지원과 국민의 성원 그리고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국내 300여 기업체와 연구진의 노력으로 우리 힘으로 ‘우주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온 국민이 누리호의 성공을 기뻐하면서 항공우주 분야의 후속 R&D도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되었다.  

누리호 발사처럼 항공우주 R&D는 하나의 최종 결과물로 일반인도 성공과 실패를 명확히 판정할 수 있다. 누리호가 성공하면 성공이고, 발사체가 추락하거나 탑제체가 괘도에 안착하지 못하면 실패이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 중간은 없다. 하지만 성공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성공해야 성공이 되고, 실패는 단 하나라도 어긋나면 전체가 실패한 것이 된다는 엄혹함이 깔려있다. 그래서 연구진이 감당해야 할 압박의 무게는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일단 성공하면 전체를 구성하는 모든 세부내용은 설명이 된다. 설령 그것이 필요 없었거나 더 좋은 대안이 있었을 지라도 성공했으면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성공하면 그 단계에서 확보된 성과는 고정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단계로 넘어가면 된다. 

이런 점에서 농업 R&D와 항공우주 R&D는 크게 갈라진다. 농업 R&D는 하나의 최종 결과물로 성공과 실패를 판정하기 어렵다. 예로써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어 기존 품종을 일부 대체한다고 가정해 보면, 이를 0과 1의 성공과 실패로만 설명하기 어렵고 중간 어디쯤에 위치하게 된다. 크게 성공한 것일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바뀌면 성공의 효과가 재해석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생명체를 다루는 연구의 특성상 확보된 성과가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잦다. 한마디로 농업 R&D는 성패가 모호하고 성과가 고정되지 않으며 성과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 과학기술사에서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는 통일벼는 증산과 주곡자급이라는 시대적 목적 달성에 성공했지만 쓰러짐과 도열병이라는 취약점을 남겼고 전국 보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품종으로 대체됐다. 전 세계적인 녹색혁명을 촉발하고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던 반왜성 유전자 기반의 난쟁이 밀은 증산과 품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기적의 성과로 인정받았지만, 난쟁이 밀의 높은 생산성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비료와 농약의 사용량 증가가 불가피 했고, 이는 오늘날 고투입 농법으로 인한 농업 환경부하의 시작이 되었다.

항공우주 R&D가 이전단계의 성과를 고정하고 단계적으로 도약하는 모델이라면,  농업R&D는 이전 단계의 성과를 고정할 수 없고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진화시켜야 하는 모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농업 R&D는 결과물만큼이나 과정에 대한 설명이 중요하고 다음 연구를 위한 인프라와 시스템의 확보 유지가 중요하다. 그래야만 더 효율적으로 다음 연구를 반복할 수 있고 반복을 통해 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우주 R&D와 농업 R&D 양쪽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한 것은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성패를 설명하기 어려운 농업 R&D는 항공우주 R&D보다 일반 국민에게 성과를 이해시키고 지지를 얻기 위한 우수사례를 적극 제시하고 설명하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일반 국민에게 농업 R&D의 본질적 특성에 대해서 이해시키는 노력도 소중히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GSP나 바이오그린 21 사업처럼 장기간 추진됐던 국책연구사업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는 스타성과 우수사례 제시가 부족했던 것에 대해서는 반성과 대안마련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국가 R&D는 납세자의 이해와 지지 없이는 존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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