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전 이사장

[한국농어민신문] 

쌀 공급-수요 불일치로 비롯된 쌀문제
‘농민·논밭’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 
근본적 대책 마련의 시작이 아닐까

지난 16일 한국농어민신문 등이 주관했던 ‘쌀산업 진단과 양곡정책 재정립을 위한 정책토론회’ 관련 기사들을 읽었다. 여러 생각이 들고나는데 명확한 건 없고, 다만 약간의 의문과 포착되는 몇 가지만 있다. 

쌀을 둘러싼 문제들은, 더욱 자주 깊게 논의해야 하는 농업의 핵심 의제다. 어찌 6월이라고 문제가 없으랴마는, 어떤 긴급한 사안인지 궁금했다. 동시에 10여년 전 춘천산 친환경쌀이 학교에 공급되기 시작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농민들과 춘천의 생산량과 생산단가를 맞춰보고, 유통망마다 천차만별인 소비자가격도 확인하면서, 농민과 RPC 사이를 오가며 벼수매가와 쌀공급가를 조정했다. 주로 벼 수확기에 벌어졌던 일이었고, 6월쯤에는 춘천산 쌀이 부족해서 타지역에서 들여오는 쌀가격을 조정하는 일도 생겼다. 결국 공급과 수요의 문제였는데, 이번 토론회 내용도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 문제로 보였다. 

토론회 제목에 쓰여있는 ‘쌀산업’. 농민들 입장에서는 잘 쓰지 않아서인지 낯선 느낌의 단어다. 사실 생산은 일정한 시기가 있어 벼를 넘기면 일단락되지만, 쌀의 유통과 소비는 일년내내 쉼 없이 진행된다. 농민은 생산의 역할이지만, 유통·소비와 같이 길을 걷는다. 그 지난한 길을 거시적으로 통틀어 쌀산업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산업이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쌀 공급과 수요의 불일치라는 문제적 사태를 다룬 토론회. 최근 공급은 과잉 상태이고 수요는 감소하는 추세다. 농민들로서는 가을 벼값이 걱정되고, 유통은 당장의 경영이 어렵고, 정부는 언제나 그랬듯 느긋하다는 것이 팩트이자 토론회의 문제인식이었다. 그렇다면 일개 소비자인 나의 체감과 실상은 다르다. 춘천만 해도 외곽 아파트가 들어서며 논밭이 줄어드는 양상이 확연하다. 산업단지다 태양광이다 구조조정이다 뭐다, 전국적으로 논이 점점 사라지고 공급이 부족할까를 걱정했었다. 그런데 공급은 과잉이고 정부는 쌀 재배면적을 감축시키려 한다. 그래도 괜찮을까? 지난해 풍년과 정책변화 등등이 겹친 ‘일시적’ 결과로 보이는데, 쌀 생산을, 공급을 계속 줄여도 괜찮을까?

토론회는 쌀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어떻게든 소비를 진작시켜야만 한다는 과제를 내놓았다. 그게 생각처럼 될까? 소비의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지만 확고하다. 반짝할 수는 있어도 잠깐이다. 소비 부문에 개입하는 정책이란 언제나 뒷북이고 실효성이 의심되기 일쑤다. 그래서 쌀 공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시장에 개입해 공급을 조정하겠다는, 경제학원론의 방법을 취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게 최선인가?

‘근본적 쌀 수급대책 급선무’는 이번 토론회를 전했던 한국농어민신문 1면 기사의 제목이다. 한국농어민신문 헤드라인에 유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도대체 근본적 대책이란 것이 어떤 성격의 대책이어야 하는가, 속으로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 농정은 주곡인 쌀 수급(생산·유통·소비)에 관한 상시적인 정책과 상당한 예산을 투여해 왔다. 그런데 어째서 시급한 지경에 이르렀는가? 정부 정책이 늘 엉터리였고 반농민적이었기 때문이었나? 격앙된 시위 현장에서 규탄할 때라면 몰라도,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정에서 근본적 대책이란 도대체 어떻게 작동되는 것일까? 

옛날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근본적 대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한국농어민신문 기사 중에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농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이번 정부대책을 즉각 철회하고 보다 근본적인 쌀산업종합대책을 촉구했다.”(2001년) “올해 쌀 예상생산량이 역대 최저수준인 것으로 예상되자 농가소득안정과 자급률 확대 등 근본 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2012년)

그렇다. 농민과 소비자들은 이전에도 근본적 대책을 요구했었다. 오늘까지도 근본적 대책은 어떤 열망의 표현일 뿐, 그 실체는 가물하고 요원하다. 그러니 근본적 대책의 실마리라도 확실히 잡을 수 있다면 큰 진척이 되지 않을까? 다음 기회에 길게 쓰기로 하고 포착한 바를 짧게 전한다면.

근본을 따진다는 것은 선후본말(先後本末)의 순서를 따지는 것. 중요도를 따지는 게 아니다. 문제가 아무리 뒤엉켜있어도 일의 순서를 짚는 것이 근본책이다. 그렇기에 공급과 수요를 추산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하더라도 근본책이라 할 수 없다. 농사짓는 사람과 농사지을 땅이 순서상으로 먼저 아니겠나? 경제도 소비자도 다 중요하지만, 모름지기 근본책은 농민과 논밭을 맨 앞에 두어야 하지 않겠나? 쌀산업 의제에 농민과 논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나? 한 번도 근본 대책이란 것을 접하지 못한 까닭이 여기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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