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관태 기자] 

“서울시공사 이행명령 부당”
도매법인 5개 사 소송 제기

법원 “경매사 역할 큰 제한 없고
농안법 위반 사항도 아니다”
1·2심 모두 ‘원고 패소’ 판결

‘순기능 위축’ 등 우려 불구
도매법인, 상고 포기 결정
공사와의 관계 변화 기류 관측 


가락시장 경매 시 중도매인 등 응찰자 정보를 가리는 문제를 놓고 이어져온 법정 공방이 일단락됐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이하 도매법인) 5개사(대아청과·동화청과·서울청과·중앙청과·한국청과)가 응찰자 정보를 가리라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이하 서울시공사)의 이행명령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는데, 1·2심 판결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고, 도매법인 측이 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다. 이에 앞으로는 가락시장 경매에선 경매사가 응찰자 정보를 확인 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응찰자 가리기 법정 공방은 왜 일어났고,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예상되는지 짚어봤다.  
 

응찰자 가리기 소송전 왜?

서울시공사는 2020년 9월부터 경매사가 경매 시 사용하는 노트북에서 응찰자 정보를 가리도록 하는 ‘청과부류 경매 진행 방법 개선 조치 명령’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쉽게 말해 경매사는 경매과정에서 응찰된 가격만 볼 수 있을 뿐 누가 얼마에 응찰했는지를 볼 수 없게 한 것이다. 서울시공사는 당시 해당 명령을 시행하면서 특정 응찰자에 대한 편중 낙찰 등의 의혹을 해소함으로써 경매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도매법인 경매사들은 ‘서울시공사의 조치는 자동으로 표시된 최고가에 단순히 확인 버튼만 누르라는 의미’라며 반발했다. 경매에 참여하는 중도매인들은 각각이 가진 거래처에 따라 구매 능력이나 취급품위, 납품처 등이 다 다른데 응찰자를 가리면 경매사가 이러한 정보들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으로, 경매사의 역할을 잘못 해석한 것임은 물론 경매제의 순기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목소릴 냈다. 

여기에 도매법인들은 응찰자 가리기 문제가 매매 방법에 관한 사항으로, 농안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업무규정을 변경해야 하는데 그런 절차가 없어 농안법 위반이라는 입장이었다. 이에 2020년 말 도매법인 5개 사가 해당 조치 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서울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응찰자 가리기 문제없다

해당 소송에서 법원은 1·2심 판결 모두 원고(도매법인)들의 주장을 기각했다. 경매 시 응찰자 정보를 가리는 것이 경매사 역할 수행에 큰 제약을 준다고 볼 수 없고, 농안법 위반 사항도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은 판결문에서 “경매사의 역할에 원고들이 주장하는 업무수행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경매사가 응찰자의 정보를 반드시 알아야만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특히 응찰자 정보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예외적으로 1회에 한해 ESC 기능(취소버튼)을 활용함으로써 이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존재 한다”고 했다. 

또 이번 판결에는 농협 가락공판장의 사례도 큰 영향을 미쳤다. 가락공판장의 경우 도매법인 5개 사와 달리 응찰자 정보 가리기를 시행하고 있으며, 법원은 가락공판장의 응찰자 정보 가리기 시행 전과 시행 후를 비교했을 때 재경매 건수는 줄고, 평균 낙찰가격은 증가했다는 점을 판결문에 적었다. 

이 부분에 대해 도매법인들은 응찰자 가리기를 하지 않은 도매법인도 재경매율이 감소하고, 평균 낙찰가격이 높아졌다면서, 가락공판장의 평균 낙찰가격이 상승한 것은 응찰자 가리기와 상관없이 도매시장법인에 반입된 농산물 물량이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송 결과에 대해 한 도매법인 관계자는 “경매사의 역할은 출하자를 대신해 중도매인에게 최대한 좋은 가격을 받아내는 것인데, 법원 판결은 출하자와 중도매인 중간에서 제시된 가격만 결정하라는 의미로, 이런 부분에서 법원의 오해가 있다”고 말했다. 
 

일단락 된 소송전

5월 말 나온 2심 판결을 두고 도매법인들은 최근까지 대법원 상고 여부를 놓고 고심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상고를 이어가지 않기로 하면서 소송전은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향후 가락시장 경매에서는 응찰자 정보 없이 경매가 이뤄질 전망이다. 서경남 서울시공사 유통총괄팀장은 지난 15일 “공식적으로 상고 여부가 결정이 나면 이후 공사 내부적으로 조치 명령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 것인지를 결정할 예정”이라며 “아직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가락시장에서 응찰자 정보를 가린 경매가 전면 시행될 경우 나타날 변화도 관심이다. 현재 응찰자 정보 가리기를 시행하고 있는 농협가락공판장 관계자는 “지금까지 눈에 띄는 부작용은 없지만 현장 경매사들과 중도매인 사이에서는 불편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격을 제시한 중도매인 모두 각각의 성향이 있고, 계량화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와 정보로 이들의 가격 결정을 유도하는 것인데 이런 부분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는 경매사가 점점 드라이한 역할만 하게 될 수 있고, 이런 부분이 경매사 공영제 얘기와도 연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매법인들이 상고를 포기한 결정에 대해 가락시장 안팎에선 최근 서울시공사와 도매법인 간 관계에 있어 변화의 기류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시공사와 도매법인 간 소송이 20여건에 이르는 등 대립 양상을 띠다, 올해 초 문영표 서울시공사 사장이 취임한 이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 

문영표 사장도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소송이 21개 정도 된다. 대세에 지장이 없는 부분들은 서로 좀 합의해서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가야 한다”며 “이렇게 서로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안 된다. 서로 만날 때 마나 이야길 하고 있고 감정적 부분들을 누그러뜨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가락시장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공사와 법인이 소송으로 대립하는 양상이었다면 최근에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며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관계 개선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고, 이런 부분이 다 고려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관태 기자 kimkt@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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