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소장(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한국농어민신문] 

자치적 성격-행정기구 성격 동시에 가져
이장 역할 중요하지만 권한·책임 불명확
마을 민주주의 강화 방향으로 개혁해야

농촌에서 마을 이장은 매우 친숙한 사람이고 정겨운 호칭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이장의 수고를 존중하여 2004년 이후 인상되지 않았던 수당을 100% 인상하자는 공약이 제시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이장·통장 제도 운영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 마련 및 현장행정 활동 지원을 위한 기본수당 인상”이란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장이 농촌 마을공동체 활동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그 역할은 초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앞으로 훨씬 더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모두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 몇 가지 짚어보고자 한다.

일단 호칭 자체에서 어폐가 있다. 마을의 주민총회를 통해 선출한 행정리(行政里)의 장이면서 동시에 읍·면장이 ‘임명’한 사람이 이장(里長)이다. 행정의 필요로 설치된 행정리가 아니라 주민들의 자치조직이 마을회(혹은 새마을회, 마을자치회)라 한다면 대표는 당연히 호칭은 ‘회장(會長)’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을공동체 깊숙이 행정제도가 개입하면서 자치공동체라는 정체성도 많이 훼손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비판은 가까운 일본에서도 있었다. 일본은 전후에 기존의 촌락공동체를 일본 제국주의를 지탱한 풀뿌리 기반으로 보고, 근대적으로 재구성해야 할 성격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공동체란 용어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고, 그 대신에 ‘커뮤니티’란 영어를 가타카나로 표기하여 부른다. 또 행정이 임명하는 구장(區長) 제도를 대부분 폐기하고 자치회 성격을 강화하였다. 우리도 농촌 마을 내부에 봉건적 가치가 여전히 강력하다는 점을 고려하고, 또 이장 제도의 역사적 기원이나 근거를 살펴보면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이장은 제도적 측면에서 일제 강점기의 구장(區長) 전후로 그 성격이 크게 구분된다. 일제는 식민지 통치수단의 하나로 1914년에 군면(郡面) 통폐합을 시도하여 전국을 13도, 12부, 220군, 2,522면으로 개편하였다. 1917년에는 면제(面制) 개정을 통해 ‘면’에 공법인 자격을 부여하고 이장 제도를 폐지하고 임명직 구장 제도로 개편하였다. 그 이전에는 리(里)가 공유재산도 소유하고 주민 직선으로 대표를 뽑는 자치기구 성격이 강했다. 결국, 일제 강점기의 구장은 면장과 면사무소, 순사로 이어지는 행정체계의 말단에서 주민을 강력하게 통제하던 역할을 담당했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마을(리)이 자치기구로 발전할 수 있는 경로를 모색하고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그 경로가 차단되고 일제 수탈을 위한 최일선 행정기구로 전락한 셈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되어 1949년에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다. 이 당시의 이장은 법률에 “주민이 직접 선거한다”, “임기는 2년으로 한다”고만 규정하여 행정 하위기구로 보지 않고 자치적 지위가 인정되었다. 하지만 1961년 집권한 군사정부는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1988년까지 유지)을 통해 읍·면 자치를 중단시키고, “이장은 읍·면장이 임명한다”(제9조 제2항)고 규정하여 행정의 말단 성격이 강조되었다.

그 이후로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지방자치법을 전면 개정(1988년)하게 되었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 지위는 읍·면으로 부활하지 못하고 군(郡)이 그대로 계승하게 되었다. 또 ‘이장의 주민 직접 선출’ 규정도 부활시키지 못하고, ‘이장의 읍·면장 임명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현재의 이장 제도는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81조 제2항에 규정한 “이장은 주민의 신망이 두터운 사람 중에서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읍장·면장이 임명한다”에 근거하고 있다. 세부 운영은 법령의 위임규정에 따라 지자체의 “이(통)장 임명에 관한 규칙”으로 정해진다. 지자체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른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장의 자격은 대개 마을에 ‘2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실제 거주하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지자체에 따라 ‘마을에 고정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만 25세 이상’과 같은 규정을 추가하기도 하고, 거주기간을 1년으로 단축한 사례도 있다.

둘째, 이장의 추천과 임명 절차는 대개 ‘마을총회에서 선출’하여 ‘개발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읍·면장이 임명’한다. 여기에 공개모집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기도 하고, ‘개발위원회 추천’ 규정을 삭제하거나 2명 이상을 읍·면장에게 추천하는 사례도 있다.

셋째, 이장 임기는 3년이 가장 많은데, 2년으로 규정한 지자체도 있다. ‘연임 제한’ 규정을 둔 지자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이장의 해임은 대부분 읍·면장의 직권으로 가능한데, 이런 경우라도 마을에 통지하여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두는 경우가 많다. 시군에 따라 주민등록을 이전하였을 때나 주민 과반수 이상(혹은 2/3 이상)이 교체를 요구할 때, 주민을 선동하여 시정업무추진을 방해하였을 때 등 해임 근거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지자체도 있다.

다섯째, 이장의 복무는 지방공무원법 규정을 준용하고, 국가기관 또는 공공단체 등의 직원이나 상임 임원을 겸직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이장은 주민 직선으로 선출하는 자치적 성격과 행정이 임명하는 행정기구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이런 이중성은 행정이 이장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각종 혜택을 주기 시작한 시점이 1961년 군사정부가 들어선 직후부터라는 점과 겹쳐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여지가 많다. 정부의 예산편성지침과 지자체 규칙에 따라 1986년경부터 1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고, 2004년에는 100% 인상하여 현재의 20만원이 되었다. 현재 월정수당 20만원 이외에 연 2회 상여금 100%(40만원), 회의수당 2만원 등이 있어 연봉으로 보자면 328만원이라 계산할 수 있다. 이외에도 월 통신요금 지급, 잡부금 면제, 상해보험 가입, 기타 필요 물품 지원, 국내외 연수, 그리고 자녀 장학금 등의 혜택이 있다.

이렇게 길게 이장 제도를 살펴보는 것은 농촌 사회에서 이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권한과 책임의 범위가 불명확하고, 성격도 모호한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또 행정이 이장 제도를 매개로 지나치게 마을 깊숙이 개입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 이장 선거를 둘러싼 갈등 사례도 자주 들리고, 최근에는 귀농귀촌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합의(마을자치규약)가 요구되기도 한다. 여기에 행정이 임명하는 방식의 이장 제도를 당연시하면서 마을의 공동체성도 자치적 기능도 약해진다.

오히려 초고령화가 심각해질수록, 주민 구성이 다양해질수록 민주적인 운영을 통해 여러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장 제도는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장 수당을 단순히 100% 인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농촌의 마을민주주의와 민관협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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