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농촌진흥청 농업환경부장

[한국농어민신문] 

농가 도움 없인 데이터 수집 어려워
기술개발 전 과정 수요자가 참여·협업
고객 맞춤형 기술개발 연구 이뤄져야

고객이 원하는 기술(Tailored solution)을 개발하라는 말을 늘 듣는 연구자의 머릿속은 복잡하다. 최근 세계의 곡창지대가 전쟁으로 묶이면서 국내에서도 식량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양파 가격 등락에 따른 농가의 고민이나 소비자의 장바구니 걱정이 보도된다. 어떻게 하면 필요한 양이 필요한 시기에 공급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하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가격으로 판매할 양의 농작물을 잘 생산할 것인가? 그러나 이 단순한 질문에는 너무도 복잡한 과정과 수많은 단계의 문제를 풀기 위한 기술이 관여한다. 그 과정에서 농업인이나 관련된 사람마다 필요한 기술과 요구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 고객이 누구이며, 무엇이 고객이 원하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 요즘은 농업기술이 필요한 고객이 농업인만이 아니라 산업체, 의료기관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어느 고객의 어떤 요구에 맞추어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고객이라도 사정에 따라 혹은 상황변화에 따라 요구가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연구자는 어떻게 언제 어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단 말인가? 연구는 대개 짧아도 2~3년은 걸려야 결과가 나오는데, 그때에도 지금의 고객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 연구 결과 혹은 기술, 상품, 서비스를 원할까?

또 다른 문제는 고객이 원하는 요구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다. 유명한 커피브랜드 업체는 자사의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고객의 요구는 ‘낭만과 즐거움의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또 어떤 가구업체는 매장에서 고객이 자유롭게 공간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도록 운영한다. 이러한 변화는 고객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찾아서 즐기고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데 더 충실함으로써, 고객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소통하고 있다는 신뢰를 쌓아가면서 기업과 함께 발전하는 파트너’라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면 농업기술은 어떨까? 농업기술 역시 수요자의 본질적인 요구는 문제해결 경험과 성취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유기농업의 4대 원칙(생태, 건강, 배려, 공정) 실현방안 모색을 위한 현장 순회토론회를 마치고, 한 신규 연구자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유기농업의 가치 인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고, 사회 속에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렇게 느낀 점들을 어떻게 연구에 반영해야 할지 사실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또 수요자의 아이디어와 연구과제 제안을 받거나, 해결이 필요한 문제를 확인하지만 그 결과를 연구과제로 다 반영하기도 어렵고 어떤 내용은 매우 복합적이어서 하나의 과제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 어디에서 시작해야 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말한 커피브랜드 업체는 매장의 점장과 지배인,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청취했다. 그리고 그들이 자부심을 느끼면서 기업의 가치와 자부심을 고객과 공유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책을 실행한 결과, 기업 매출이 성장했다. 한 전자제품 생산업체는 고객이 제품을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확인하는 항목을 관찰하고 체크한다. 홍채의 움직임을 통한 디지털 데이터 수집이다.

농촌진흥청의 농업기상 조기경보 시스템도 대표적인 예이다. 농장주가 같더라도 보유한 농장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경우 농장마다 기상조건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농장이 위치한 고도, 지형지물에 따른 기온과 강수 등의 패턴을 분석하여 농장별 기상을 알려준다. 이 과정에서 농가의 협조가 없다면 데이터 수집은 물론 서비스의 정확도 향상도 어렵다. 자그마한 실험공간이라 할지라도, 농가에서 자신의 농지를 연구자에게 할애하여 기상관측이 가능하도록 돕고, 기상정보에 따라 경험한 결과를 다시 연구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면 예측한 값과 실제 값의 차이를 정밀하게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이들 농가에서 이상기상이 발생할 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지방농촌진흥기관과 협력체계 역시 중요하다. 농업기술에서 고객과 접점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방농촌진흥기관 종사자나 관계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객의 생활방식과 행동 패턴을 이해하고 고객에게 이익이 되는 관점에서 유용한 정보를 연구자에게 제공한다. 더 나아가서는 고객 자신이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면서 기술의 방향이나 완성도를 높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객 맞춤형 기술개발을 위해서는 과제 기획부터 기술개발 전 과정에 수요자가 참여함으로써, 개발된 기술이 문제해결에 기여해야 한다. 현장의 다양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례가 데이터로 수집되고, 그 자료를 분석해서 정책, 제도, 생산방식, 서비스 전달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요자가 필요한 때 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객 참여방식과 협업체계, 필요한 활동에 적절하게 집행될 수 있는 예산구조 개편과 배정, 참여한 수요자와 연구자의 노력에 대한 적절한 지원(시간, 평가시스템 등) 등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여 실제로 이행되는 연구생태계로 전환을 적극 검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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