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포천 꿀 생산 지역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이 민관합동조사를 실시하는 가운데 최용수 농촌진흥청 연구관(왼쪽)을 비롯한 조사자들이 철원의 양봉장에서 꿀벌의 발육 상황, 수집한 꿀의 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다.
농촌진흥청과 농림축산검역본부 등이 민관합동조사를 실시하는 가운데 최용수 농촌진흥청 연구관(왼쪽)을 비롯한 조사자들이 철원의 양봉장에서 꿀벌의 발육 상황, 수집한 꿀의 상태 등을 확인하고 있다.

남부·중부·북부지역 골고루
평년작 대비 30~40% 더 수확
몇 년 만에 ‘최악의 흉작’ 벗어나

작년 가을~올 봄 벌 30~40% 폐사 
남은 벌들도 약해져 꿀 잘 못 떠
이른 고온·큰 일교차도 ‘악재’

기후변화 따른 피해 대책 마련
벌 질병 재해보험 도입 등 시급


“올해 꽃에 꿀이 많은데 그 꿀을 채밀할 벌이 없다. 그래서 양봉농가들은 풍요 속의 빈곤인 상황에 직면했다.”

최근 남부와 중부지방을 거쳐 북부 지역에서 이동양봉을 하는 농가들의 꿀 생산이 진행된 가운데 지난달 25일 경기 포천에서 만난 윤화현 한국양봉협회 회장은 올해 꿀 작황을 묻는 질문에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표현했다.

올해 꿀 작황은 풍년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이만영 양봉생태과장은 “통상 이동양봉은 40~50㎏ 이상, 고정양봉은 24~28㎏ 이상 생산하면 풍작이라고 한다. 남부·중부·북부 순서로 진행한 조사 결과, 3개 권역에서 골고루 꿀이 생산됐다. 평년작 대비 30~40% 정도 더 수확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꿀 생산량을 풍작으로 평가했다.

강원 철원에서 현장 조사를 실시한 최용수 농촌진흥청 연구관도 “작년과 재작년 보다 꿀 생산량이 많다. 통상 100군에 14드럼의 꿀이 생산되면 평년작인데 이곳은 벌써 10드럼을 수확했고 앞으로 8드럼 정도 더 생산할 만큼 풍년을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꿀 생산량은 몇 년 만에 찾아온 풍년이 될 전망이지만 겨우내 꿀벌집단실종 사태 여파로 농가들은 웃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윤화현 한국양봉협회 회장(왼쪽)과 류재광 한국양봉협회 충남도지회장이 자신의 양봉장에 있는 벌통을 보여주고 있다.

양봉농가들도 올해 꿀 생산량이 늘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포천에서 이동양봉을 하고 있는 윤화현 회장은 “작년과 재작년엔 흉작이었지만 올해는 (꿀 생산량이) 좋다”고 말했고 철원에서 만난 류재광 한국양봉협회 충남도지회장도 “작년엔 6드럼 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이미 20드럼을 수확했고 앞으로 1~2드럼은 더 가능할 만큼 생산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벌꿀 생산량은 평년작의 1/3 수준인 2만5000톤(한국양봉협회)에 그쳤고 2020년 생산량도 1만435톤으로 역대 최악의 흉작을 기록하는 등 최근 5년 동안 꿀 생산량은 좋지 않았다. 올해 꿀 생산량은 몇 년 만에 풍작을 맞았지만 양봉농가들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겨우내 꿀벌 집단실종 피해가 발생하면서 벌통에 꿀을 생산할 수 있는 벌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양봉협회가 자체 조사를 실시한 결과, 2만4000여 회원 농가 중 4521농가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약 42만군·84억 마리의 벌이 소멸됐다. 2년 연속 벌꿀 생산량 감소로 꿀벌 먹이가 부족해 면역력이 저하됐고 지난해 가을철 발생한 저온현상으로 꿀벌 발육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11~12월 고온으로 꽃이 이른 시기에 개화하는 등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이 주요인인 것으로 정부 기관은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월동 꿀벌의 약군화가 초래돼 벌이 소멸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윤화현 회장은 “작년 가을부터 올 봄까지 전국적으로 벌의 30~40%가 폐사했다. 폐사율이 50% 이상인 농가들도 있다. 벌통 한 곳에 5만 마리의 벌이 있어야 하지만 1만~2만 마리밖에 없는 벌통도 있다. 그런 벌통은 벌이 약해졌기 때문에 꿀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꿀 생산량은 대풍인데 이를 가져올 벌이 없다”고 설명했다.

꿀 생산량이 풍년인 올해가 흉작 또는 평년작이었던 예년 보다 반갑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벌들의 집단 실종사태로 농가들은 벌 구입에 계획 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하면서 마냥 즐겁진 않다.

문경과 아산, 연천 등을 거쳐 철원에서 이동양봉을 하고 있는 류재광 씨는 “지난겨울 300군이 월동에 들어갔는데 150군 정도가 죽었다. 남은 벌들도 약해졌다. 그래서 2000만 원 정도를 투자해 70~80군의 벌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최근 5년 동안 흉작과 평년작으로 경영에 어려움에 처한 농가들은 올해 풍년에 따른 소득 향상을 기대했지만 꿀벌 집단 실종 여파로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서 충분한 소득이 발생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일찌감치 찾아온 고온 날씨와 큰 일교차도 꿀 생산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윤화현 회장은 “기온이 높으면 꽃이 일찍 져서 꿀 수확기간이 짧아진다. 낮 최고기온은 25~26℃ 수준이 적당하지만 오늘(5월 24일)도 28℃가 넘는 등 낮 기온이 너무 오르고 일교차도 크다. 그래서 농가들 입장에선 평년작의 70% 수준으로 생산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에 양봉농가들은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양봉협회는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 대책 마련, 양봉농가에 대한 경영자금 지원, 생태보전직불금 신설, 유통질서 확립을 위한 벌꿀 등급제도 조기 마련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윤화현 회장은 “양봉업에 종사 중인 농가들은 3만 농가에 달하지만 질병 관련 연구 인력은 두 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양봉산업의 가치 등을 감안해 양봉 질병 관련 연구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며 “기후변화에 따른 벌꿀 흉작과 봉군 소멸피해에 대한 자연재해를 인정해주고 꿀벌 질병 관련 재해보험 상품을 운용하는 등 양봉농가에 대한 경영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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