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대한민국의 곡물자급률은 2020년 19.3%까지 떨어졌다. OECD 국가중에 최하위이다. 수치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주변을 돌아보라. 3면이 바다이고 위로는 북한이다. 식량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대책이 없다. ‘식량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식량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ㅣ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국가는 공권력을 가진 주체이다. 그리고 국가의 1차적인 존재이유는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정부를 바꾸는 일도 정당화된다. 역사상 수많은 혁명들이 그런 것이다.

기후위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세계 식량수급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한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식량수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곧바로 국민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 된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국민의 먹는 것부터 챙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세계 여러나라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자기 나라의 식량이 부족할 것같으면, 식량을 수출하던 국가는 식량수출을 중단한다. 다른 무엇보다 자기 나라 국민들이 먹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식량 자국 우선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자국민이 먹을 게 부족한데, ‘무역의 자유’ 따위는 신경쓸 여유가 없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밀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세계 밀생산량 2위 국가인 인도가 밀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폭염으로 인해 밀 생산량이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밀 뿐만 아니다. 불안은 연쇄반응을 낳고 있다. 세계 최대의 해바라기씨유 수출국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인해 해바라기씨유를 수출할 수 없게 되자, ‘식용유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팜유 수요가 늘어나면서 팜유 가격이 급등했다. 그러자 세계 최대의 팜유 수출국인 인도네시아는 4월 28일 팜유 수출을 금지시켰다. 수출가격이 오르면서 인도네시아 국내가격도 폭등했고, 품귀현상까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가 곧 수출금지조치를 해제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식량수급시스템의 불안이 어떻게 연쇄효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곡물자급률은 2020년 19.3%까지 떨어졌다. OECD 국가중에 최하위이다. 수치만이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 주변을 돌아보라. 3면이 바다이고 위로는 북한이다. 식량수급에 차질이 생길 경우 대책이 없다. ‘식량 자국 우선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식량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게다가 올 봄만 해도 가뭄이 심각한 상황이고, 영농비용 부담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이대로라면 곡물자급률, 식량자급률은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오를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정부는 무대책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유사시에 해외에 진출해있는 국내기업들로 하여금 해외농장에서 생산한 식량을 반입한다는 계획이지만, 그게 가능하겠는가? 어느 국가가 자국민이 먹을 것도 부족한데 외국기업이 식량을 반출하도록 놔두겠는가? 그랬다가는 그 국가의 정부는 국민들에 의해 쫓겨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전쟁아닌 전쟁’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먹을 게 모자라는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도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관료들은 이런 심각한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제2차 추가경정예산안을 보면, 농림축산식품부예산은 오히려 1.3% 삭감되어 2,132억원이 줄었다. 내용을 봐도 매우 나쁘다. 무기질 비료가격 안정지원사업을 한다면서 비료가격 상승분의 10%만 국가가 부담하고 60%를 농협에 떠넘겼다.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예비심사보고서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곡물가격 인상, 코로나19로 인한 농업인력 수급불안 등으로 노무비와 재료비 급증의 위기에 처한 농업분야는 직접적인 피해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농업분야 종사자들의 상대적 발탁감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 심의과정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검토가 있어야 할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지적이 최종 예산에 반영될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지금 대한민국은 현상유지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존을 위해서는 식량위기에 대한 긴급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전시상황에 준해서 모든 재원을 농업과 농촌을 살리고, 농민을 지원하며, 바닥에 떨어진 자급률을 높이는데 투입해도 지나치지 않을 상황이다.

위기가 닥친 후에는 이미 늦는다. 최소한의 지혜가 있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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