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코로나 이후 세계적인 에너지, 원자재, 곡물 값 상승으로 불안감이 높아지더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 발 식량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일부 나라는 밀가루가 상점에서 사라지고 빵 가격이 폭등하는 등 식량난이 현실화됐다. 게다가 식량 생산재인 비료가격도 급등하고 있어 식량난을 심화시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낌새가 좋지 않다. 이미 가공식품 가격이 오르고 있고, 외식물가가 24년 만에 최대 폭으로 뛰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서는 국제 곡물가격 상승에 즉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식품제조업과 배합사료에 사용하는 곡물 대부분이 수입산이기 때문에, 국제 곡물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가공식품, 외식업, 배합사료, 축산물의 생산활동과 가격에 충격이 그대로 전이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우크라 사태 영향으로 국내 가공식품 소비자 물가는 3.4~6.8%, 외식 소비자 물가는 0.6~1.2%, 배합사료 생산자물가는 5.3~10.6%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이 낮고, 그나마 매년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나 감염병, 국제정세 급변 같은 사태가 일어날 경우 식량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저 수준이다.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의 경우 2019년 45.8%,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에 그친다. 곡물 자급률은 1990년 43.1%에서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곡물 자급률로 봤을 때 쌀은 92.1%지만, 밀은 0.5%, 콩은 6.6%, 옥수수는 0.7%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2019년 기준 국내 곡물 수요량의 76.6%를 수입에 의존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용도별로는 67.6%가 사료용, 32.2%가 식용 및 가공용이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경각심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라면, 빵 값이 오르고, 외식물가가 상승한다는 얘기, 사료 값 인상 압력이 커진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대다수가 식량안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곡물 수급안정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것은 쌀의 높은 자급률로 인한 착시현상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곡물 수급안정 사업・정책 분석’ 보고서를 낸 국회 예산정책처의 변재연 예산분석관은 “식생활 습관의 변화 등에 따라 주식으로서 쌀의 위상은 감소했지만, 쌀의 높은 자급률로 인한 착시현상 때문에 우리나라의 곡물 수급안정에 대한 인식은 높지 못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변 박사는 “보고서가 나온 지난해 10월에 비해 지금은 우크라 사태 등으로 위기가 더 악화되고 있다”면서 ”주력 소비품목 생산 확대, 수입국 다변화, 사료곡물 공공비축 검토, 식량자급률 산정시 적정농지면적 명시, 식량안보 전담부서 설립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식량위기는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는 위협이다. 1991년 러시아의 전신인 소비에트연방이 붕괴한 배경 중 하나도 식량 부족에 따른 경제난이었고, 가뭄과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일어난 2007~2008년 식량 위기 때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서 폭동이 발생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IMF(국제통화기금) 경제난이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몇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쌀만은 자급했기에 비참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돈을 주고도 식량을 조달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식량안보를 얘기하면 안정적인 교역조건 확보니 해외농업개발이니 해서 해외조달을 띄우는 논리가 있지만, 이 역시 전쟁이나 기후재난 앞에는 무용지물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안정적인 조달도 중요하지만, 식량안보의 요체는 농지를 지키고,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게 우선이다. 차제에 정부는 식량안보를 국가안보 수준으로 격상하는 방향으로 식량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쌀의 자급을 유지하고, 보리, 밀, 콩, 감자, 고구마 같은 밭작물의 생산을 늘려야 한다. 물론 식생활 개선과 소비대책도 있어야 현실성이 담보된다. 쌀을 자급해야 하는 이유는 주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쌀은 국제시장의 교역량이 매우 적은 ‘얇은 시장(Thin Market)’이라 문제가 생기면 조달이 어려운 품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자원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하고,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분단국가다. 만일 국민의 식량에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경제성장과 한류의 번영도 국가안보와 식량안보의 뒷밭침이 없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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