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업인 겸업을 허하라 <상>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마을기업사무장, 학교급식종사자, 농업인센터사무원 등을 겸업하는 소위 ‘N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 여성농업인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농사만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워 또 다른 일을 찾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여성농업인이 겸업으로 인해 국민연금법상 사업장가입자이거나, 국민건강보험법상 직장가입자인 경우 농업경영체 등록에서 탈락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 이유는 여성농업인 대부분이 농업경영체  등록제도상 경영주가 아닌 경영주의 가족원인 농업종사자(공동경영주 포함)에 해당되는데, 이 경우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가입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에 2회에 걸쳐 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성농업인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개선방안을 살펴본다.

2020년 기준 여성농 116만명
농업외 소득활동 참가율 ‘32.1%’ 
국민연금·고용보험 가입 이유
‘공동경영주’ 등록 불가 잇따라
행복바우처 등 각종 지원 소외 


2020년 기준 국내 농업인구는 231만명, 이 중 여성농업인은 절반이 넘는 116만명이다. 농가소득 중 농업외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36.9%(통계청, 2020년). 실제 영농현장에서 여성농업인은 겸업을 필수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2018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서 여성농업인의 농업생산 이외 소득활동 참가율은 32.1%, 향후 농외 소득활동 의향 역시 평균 62.5%로 70세 이상을 제외하고 모든 연령층에서 70% 이상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여성농업인이 농외 소득활동을 하는 이유는 추가소득 마련 38.5%, 생활비부족 14.6% 등 경제적인 이유가 절반이 넘는다. 농외 소득활동으로 얻는 월평균 소득은 20만원 미만 8.6%, 20~70만원 미만 48.5%, 70만원 이상 42.9%이다.

농촌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명의로 토지를 소유하거나 농산물을 출하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여성농업인은 대부분 1년에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한 사실로 ‘농업인’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한 절차인 ‘농업인확인서 발급규정’에 따르면, 1년에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한 경우 경영주의 가족원인 농업종사자(공동경영주 포함)는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등의 가입자가 아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여성농업인이 겸업으로 인해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을 경우, 공동경영주 등록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기존 등록자여도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반면 경영주는 농업 이외의 겸업을 해도 농업인 기준(경작면적 1000㎡ 이상, 영농종사 90일 이상, 농산물 판매액 120만원 이상)에 부합하면 농업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충남 부여에 사는 박은희 씨(59)는 1998년 귀농해 남편과 함께 쪽파와 콩 농사를 짓고 있다. 면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실무사로 일하고 있는 그의 연봉은 약 2500만원. 무기 계약직인 그는 일 년에 약 270일정도 근무한다. 그는 농지원부와 농업경영체에 공동경영주로 등록돼 있었고, 농협 대의원으로도 활동했었다. 하지만 그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라는 이유로 지난해 3월 공동경영주 등록이 취소됐고, 올 초 농협조합원 자격도 상실했다. ‘4대 보험 가입자는 농민으로 바라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박씨는 “오후 4시면 학교에서 퇴근해 농사를 짓고 있는데 내가 왜 농민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규정이 그러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최근 농촌에서 요양보호사 등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농업인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이들은 겸업소득을 포기하거나 농업인 자격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경남 고성에서 수도작을 하는 한 여성농업인은 지난해 여성농업인 행복바우처를 신청할 수 없었다. 농촌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그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공동경영주 자격을 잃었기 때문이다. “농사로 먹고살기 어려워서 요양보호사 일을 했다”는 그의 한달 월급은 70만원에서 80만원 사이. 시간제노동자인 그는 일이 없을 땐 수입도 없다. 매달 고정적인 수입은 아니지만, 월 60시간 이상 근무하기 때문에 4대 보험 가입은 불가피하다. 농업은 계절적 실업이 존재하므로 겸업이 필수라는 게 그의 생각이지만, 월 70만원을 포기하던지 농업인 자격을 포기해야 한다. 

전남 고흥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일하는 이해승 씨는 공동경영주 등록 자체를 못했다. 그는 농촌을 떠나본 적도 없었지만 전업으로 농사만 지을 상황이 안 돼 겸업을 하게 됐다. 2014년부터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일을 했던 그는 국민연금법상 사업장가입자로 당시 공동경영주 등록 자체를 못했다. 

공동경영주 자격 유지해도
농민수당 등 받는데 제한
이농·탈농 현상 지속될 우려 


일각에선 공동경영주 자격을 유지해도 농민수당 등 농어민공익수당이 제한되기 때문에 여성농업인의 이농·탈농 현상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충북 진천에서 수박 농사를 지으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는 이해자 씨(56)도 비슷한 상황이다. 1992년 남편과 함께 귀농한 그는 수박 시설하우스 10동을 농사짓고 있다. 하우스 1동당 순이익은 약 70만원. 그는 수박 농사만으론 부부와 아들 셋인 5인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5년 전부터 하루 4~5시간씩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하고 있다. 주로 차로 장애 아이의 등·하교를 도와주거나 집에서 돌봐주는 일을 한다. 그는 월 100~120시간을 일하며 70~80만원을 번다. 그 역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로 농업경영체에서 경영주외 농업인 자격을 상실했다.

이씨는 “여성이 공동경영주에 등록돼 있어도 경영주와 같은 지위나 권리도 없고, 농민수당 등 농어민공익수당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농업인 자격 유지를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런 이유로 40~60대 여성농업인들, 30대 이하의 귀농여성 등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