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집단실종, 왜?

[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벌을 깨울 봄철, 꿀벌 집단 실종 피해가 양봉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당진의 양봉 농가들이 피해현황을 살펴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이다.
벌을 깨울 봄철, 꿀벌 집단 실종 피해가 양봉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은 당진의 양봉 농가들이 피해현황을 살펴보며 망연자실하고 있는 모습이다.

매년 이 시기에 양봉농가들은 월동에 들어간 벌을 깨우는 봄 벌 깨우기를 진행한다. 겨우내 쉬었던 꿀벌들이 활동을 재개할 수 있도록 꽃이 피는 시점에 앞서 농가들이 벌을 깨우는 것이다. 하지만 남부지방과 충청 일부지역을 중심으로 벌통에 있어야 할 벌들이 사라졌다. 최근 봄 벌 깨우기를 하려고 벌통을 열어본 농가들은 빈 벌통을 보고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농가들은 수년 동안 꿀 수확량 감소로 힘들었던 만큼 올해 풍년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지만 빈 벌통을 마주하면서 망연자실하고 있다.

집단 실종된 꿀벌들, 왜?

말벌류 등 천적 적기방제 미흡해 폐사
9~10월 저온·11~12월 고온 등
이상기후로 발육 부진·봉군약화 추정

농촌진흥청은 이번 월동 꿀벌 피해 원인에 대해 꿀벌응애류와 말벌류에 의한 폐사, 이상기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지난 13일 밝혔다. 농진청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피해 봉군에서 응애가 관찰됐다. 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는 천적으로, 농가들은 통상 겨울에 접어들면 월동에 들어가는 꿀벌들의 특성 등을 감안해 월동 전에 응애를 처리하는 방제 작업을 실시한다.

이와 관련 농진청은 농가들이 발견하기 어려워 응애류 발생을 인지하지 못했고 적기 방제가 미흡해 월동 일벌 양성시기에 응애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월동 꿀벌의 약군화를 초래했다고 발표했다. 약군화는 벌통(봉군) 내 일벌 구성이 정상보다 적은 것을 의미한다.

농진청은 또 말벌류 중 등검은말벌의 일벌 포획력이 탁월해 지난해 10월까지 꿀벌들에게 피해를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지난해 9~10월 저온현상으로 꿀벌의 발육이 원활하지 못했으며 11~12월에는 고온으로 꽃이 이른 시기에 개화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봉군이 약화된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약해진 벌들이 화분 채집 등 외부활동으로 체력을 소진했지만 외부 기온이 낮아지며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꿀벌들의 집단 실종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월동기간 동안 벌들은 공 모양으로 밀집된 형태를 유지한다. 강한 봉군에서는 벌들이 단단하게 밀집해 외부환경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지만 약한 봉군들은 외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충남 A지역 농업기술센터의 B지도사는 “응애는 벌에 기생하면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월동 전과 본격적으로 꿀벌들이 채밀(꿀 수집)하기 전에 농가들은 응애 방제 작업을 진행한다. 그럼에도 응애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며 “이처럼 벌에 기생하는 응애가 벌에 상처를 내지만 농가들이 봤을 땐 멀쩡할 만큼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 상처 입은 벌이 약해진 가운데 꿀을 수집하기 위해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등 봉군이 약해지면서 이 같은 현상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피해 규모는?

78억 마리 소멸 추정
양봉협회 회원 18% 피해
전남지역은 74%가 사라져
파악 중인 규모까지 합쳐지면
피해농가 확산 불보듯

한국양봉협회가 회원 농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월동봉군 소멸피해 전국 피해현황’(3월 2일 기준)에 따르면 회원농가 2만3697곳 중 17.6%인 4173농장에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했다. 군수로 계산하면 사육군수 227만6593개 벌통 중 39만517개(17.2%) 벌통에서 벌이 사라졌다. 벌통 하나당 평균 2만 마리의 벌이 있는 것으로 계산하면 약 78억 마리의 벌이 봄을 앞두고 소멸된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남 양봉농가 1831곳 중 무려 74.3%인 1360곳에서 피해가 발생했고 대전(31.3%)과 경북(26.6%), 광주(25.3%), 전북(22.1%)에서도 많은 벌이 사라지거나 폐사했다.

문제는 해당 통계는 추정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3월은 월동 중인 벌들을 깨우는 시기인 것은 물론 아직 피해 현황을 파악 중인 지역도 있다. 또 양봉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농가 중에서도 피해를 입은 농가가 적지 않은 만큼 이 같은 통계까지 포함한다면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양봉협회는 제주지역 피해농가 36곳, 피해군수 4210군으로 발표했지만 제주도가 지난 2월 28일 발표한 ‘제주, 꿀벌 집단실종 피해 관련 동향 보고’에 따르면 제주지역 피해농가는 457호·7만4216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농장 내 일부 봉군에서 집단 실종 현상이 나타났다면 신속하게 응애 관련 방제작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른 봉군까지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B지도사는 “벌들이 사라진 벌통이나 그곳에 남은 일부 벌들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농장 내 다른 벌통에서 응애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벌통을 소각하거나 방제처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도 한숨 쉬는 양봉농가들

봄 벌 깨우기 나섰던 농가
“왜 이런 일 생겼나” 망연자실
봉군 비용 두 배로 뛰면서
재입식도 쉽지 않아 막막

최근 수년 동안 꿀 수확량 감소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양봉농가들은 올해 풍년을 기대하며 봄 벌 깨우기를 시작했지만 꿀벌 집단실종 피해로 망연자실한 상황이다.

소유한 봉군의 80%에서 이 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충남 당진의 정만식 씨는 “벌통을 쳐다보기도 싫다. 다시 벌을 키워도 이 같은 일이 또 생길 수 있다는 생각하니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원인이라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상당한 피해를 입은 농가들은 다시 재기하기 위해 벌을 구매해야 하지만 봉군당 15만원 수준이었던 가격이 25만~30만원까지 두 배 정도 오르면서 재입식 비용이 부담스럽다.

벌통의 30% 정도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는 양우석 한농연제주도연합회 수석부회장은 “올해처럼 이렇게 심한 피해가 발생한 적이 없다”며 “집단실종 피해를 입은 농가들은 벌을 재입식하기 위한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여기에 인건비를 비롯한 각종 경비도 적지 않게 소요된다”고 말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피해 농가의 경영 안정을 위해 농업경영회생자금과 농축산경영자금 등 지원사업을 안내하고 있다. 농업경영회생자금은 경영 위기의 준전업농 이상 또는 농업용 부채가 있는 경영체, 개인에게 20억원(고정금리 1%) 이내의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농축산경영자금은 소규모 축산농업인, 재해 피해를 입은 농축산업인에게 농가당 1000만원(금리 연 2.5%) 이내를 지원한다. 농식품부는 또 꿀벌 피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가축방역대응지원사업을 활용해 꿀벌 구제 약품을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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