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농업·농촌 사회에서 성별 역할분리가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농업·농촌 변화와 성인지적 정책방향’에서다. 이에 농업·농촌의 불평등한 현실을 개선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농업 정책 전반에 걸쳐 성인지적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남성농업인 60.3%가
“아내가 가사 맡아야” 인식
비농업인보다 비율 높아

농사일서도 역할 구분 뚜렷
농기계 다루는 일은 남성이
그 외 보조작업은 여성이 담당

가사·돌봄 등도 여성 역할로
마을 운영 과정서도 나타나

농업·농촌의 성불평등 실태=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농업인의 성역할 인식을 조사하기 위해 생활시간조사(통계청·2020)를 재분석한 결과,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이라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고착화 된 것으로 조사됐다. 부부간 가사 분담에 대한 태도조사에서 남성농업인의 60.3%가 ‘아내가 전적으로 또는 주로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남성비농업인은 53.1%로 나타났다. 

가사노동은 성별 역할 분리가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으로, 농업인은 가정관리시간에서도 큰 격차를 보였다. 기혼 취업자의 1일 평균 가정관리시간(85분)과 비교해 남성농업인은 하루 평균 37.2분을 가정관리에 쓰는 데 썼지만, 여성농업인은 201.9분에 달했다. 농사일에서도 성별 역할 분리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농기계 작업은 남성이, 그 외에 작업은 여성이 맡아서 하고 있었으며, 여성농업인은 중요한 기계를 다루는 남성의 보조자로 인식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지위와 권한은 제한적이다. 농업의 기반이 되는 토지 소유권, 조합원 자격 등 농업경영과 관련된 모든 권한과 상속은 주로 남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남성과 여성이 모두 농업의 주종사자인 농가 중 97.2%는 남성이 경영주이며, 여성 경영주는 2.8%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준 농협 여성조합원의 비율은 33%, 여성임원 비율은 8.6%에 그쳤다.

가사와 돌봄을 여성의 역할로 고정하는 성별 분업 구조는 마을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마을에서 성별 역할 분리와 위상의 격차는 ‘부녀회’의 역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부녀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마을 행사에서 음식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남성이 마을 회의에서 가구를 대표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동안 여성은 부녀회의 이름으로 ‘음식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농가의 일상생활, 생산자 지위와 관련된 제도, 생산자 단체 활동, 마을 운영 등 농업·농촌에서 성별 역할 구분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었고, 이로 인한 여성과 남성의 지위와 권한의 격차도 뚜렷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동시간, 성별 지위와 권한 등 전반에 걸쳐 성별 격차가 큰 상황에서 이미 한계 상황에 직면한 여성농업인은 노동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산면적축소, 탈농 등을 시도하고 있다”며 “최근 농업의 핵심연령층(40~60대)이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크게 감소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성농정책, 고착화된 역할 수행에만 중점 문제”

노동부담 경감 등 도움되지만
근본적 성불평등 개선 안돼
양성평등으로 인식 변화 관건

▲정책 제언=수십 년간 뿌리 깊게 형성된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서는 인식 변화가 관건이다. 이에 김이선 연구위원은 양성평등 문제를 농업·농촌의 핵심 의제로 채택하고, 양성평등 증진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개발·추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농촌의 공익성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재구성해,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농업농촌의 성불평등 해소 및 양성평등 증진’을 농촌 정책의 기본방향으로 명시하고, 제3조(정의) 6대 공익기능에 ‘양성평등 실현을 위한 농촌사회 개선’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가 추진하는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지역별·산업별 성평등격차’를 정책의제로 채택, 국가성평등지표에 지역별(동부·읍면부), 산업별 성평등 격차를 포함할 것도 주문했다.

무엇보다 현재 경영주와 공동경영주로 구분하는 기존의 제도를 부부가 함께 농업경영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부부 공동경영주’ 제도로 전환하고, 농협, 협동조합, 생산자조직, 농산물 인증제도 등 농업 전반에 걸친 제도와 조직 차원에서 경영주 또는 농가 대표 관련 사항을 점검할 필요성도 제안했다.

특히 지난해 6월 ‘여성농어업인 육성법’ 개정으로 ‘농어촌 지역의 양성평등 확대’가 정책 목적으로 공식화됐고, 오는 6월부터 해당 법령이 시행된다. 이로 인해 농촌사회의 양성평등 증진을 위한 조치가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마을, 농협, 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도 강조됐다.

구체적으로는 농업기술원과 농업기술센터, 농협 및 관련 교육 시설 등에 양성평등교육 실시를 권고하고, 교육 시행 여부 점검, 교육의 양적·질적 성과 평가 실시가 요구됐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