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소비기한’으로 식품 폐기물 감축
위생·안전 측면서 위험성 크지 않아
초신선 마케팅에 흔들리지 말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3년 새해부터 식품에 표시되는 ‘유통기한’을, 소비자가 실제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을 의미하는 ‘소비기한’으로 바뀐다고 발표했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유통기한은 제조업자가 유통 중 안전성과 품질을 보장할 수 있는 기간으로 품질변화 시점을 기준으로 60~70% 앞선 기간으로 설정하고, 소비기한은 80~90% 앞선 수준에서 설정한다. 예컨대 제조일로부터 제품의 안전과 품질이 보장되는 기간을 10일로 가정했을 경우 유통기한은 6~7일 정도가 되는 반면, 소비기한은 8~9일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즉 소비기한이 도입되면 제품을 유통하거나 구매 후 보관하는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하게 된 배경은 음식 폐기물의 발생을 줄임으로서 환경오염 발생과 그로 인한 경제가치의 손실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다만, 늘 그렇듯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 득과 실이 다른 측이 생길 수도 있는 것처럼 소비기한 제도의 도입 역시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우유는 낙농업계의 상황 및 우유 냉장 유통의 환경 등을 고려해서 소비기한 적용을 10년간 유예하기로 결정됐지만, 10년간 얼마나 상황이 개선될지 아직 미지수다.

우유 가격과 관련해서 소비자들은 우유 가격 상승에 대한 불만이 있고 싼 가격에 우유를 사 먹을 수 있도록 제도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낙농업계 또한 사료비를 비롯한 생산단가는 계속해서 상승하기 때문에 우유 값의 상승을 업계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젖소의 사료는 수입 원료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수입처인 미국의 최근 옥수수 작황이 나빠졌고, 코로나19 사태로 물류비와 운송비가 동반 상승하고 있어 원유가격 상승에도 불구하고 생산비 증가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양측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출산율이 전 세계 꼴찌에 이르는 현재 분유 소비량과 학교 급식으로 소비되는 우유의 양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커피·아이스크림·치즈 등 유가공품 제조는 수입산을 선호하는 상황이 국내산 원유 자급률과 경쟁력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소비기한 도입은 우유의 보관기간을 늘리는 효과로 인해 낙농가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음식 폐기물은 우유와 같은 단일식품 보다는 혼합 조리해 섭취하고 남은 음식물이 더 많기 때문에 낙농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제한적일 것으로 예측된다. 계란의 경우 원칙적으로 냉장이 아닌 실온 보관이 가능한 품목으로 보관 방법에 따라 유통기한이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두 달 이상도 가능한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계란은 소비기한 도입에 상대적으로는 자유로운 축산물 품목일 것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와 식약처가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하는 가장 주요한 취지는 이용이 가능한 식품의 폐기 비율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고 그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최근에 축산물 유통업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초신선 축산물 마케팅은 정부가 추진하는 소비기한 도입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마케팅 포인트라 생각된다. 앞서 언급한 계란과 우유는 정해진 유통기한 또는 소비기한 내에 있다면 소비자가 느끼는 품질과 맛의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신선육의 경우 정해진 유통기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만, 숙성된 고기가 갓 도축한 고기에 비해 품질이 결코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깊은 풍미를 가지는 좋은 보관 방법일 뿐만 아니라 섭취가 가능한 축산물이 신선하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되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는 방식이다. 신선한 축산물이 더 좋은 축산물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비자들은 맛과 풍미의 측면에서 뚜렷한 이점이 없는 초신선 축산물에 더 비싼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을 뿐더러, 이는 소비기한을 도입하는 정부의 정책적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정부나 식약처 또한 단순히 생산일자가 짧다는 이유로 비싼 가격을 책정하는 초신선 축산물 유통업체가 있다면 소비자를 보호하고 유통구조의 혼란을 예방하는 측면에서 계도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냉장유통·배달 시스템 등 관련 산업 인프라가 부족했고, 가정에서 냉장보관 등 식품의 취급에 대한 인식도 부족했기 때문에 유통기간을 매우 보수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옳은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함께 유통 관련된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러 소비기한 제도가 도입돼도 위생이나 안전 측면에서 위험성이 증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소득과 인건비가 높은 선진국에서 자국산 제품의 가격이 수입산에 비해 비싼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상황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와 소비자들이 국내산 농산물 시장을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최근 몇 년간 일본과의 반도체 분쟁 또는 중국산 요소수의 독과점으로 인한 피해에서 보듯이 이전까지 사소하게만 생각했던 소재들도 우리가 대응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 얼마든지 우리 산업에 비수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한 바 있다. 보통 시장에서 한 소재를 70% 이상 점유하고 있다면 독과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주요 농업과 축산업은 생명산업으로써 우리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최소 30% 이상의 자급률을 지켜야 한다. 그러므로 소비기한 도입이 축산업뿐만 아니라 농업의 국제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제도로 향해 가서는 곤란할 것이다.

소비기한 제도가 안정되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안전한 식품소재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산업체와 정부가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 또한 숫자에 현혹되거나 과도한 마케팅에 현혹돼 비싼 값을 지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고, 소비기한 제도가 정착됨으로 인해 버려지는 식품 폐기물이 줄어들고 그로 인한 환경오염 또한 방지될 수 있도록 소비기한 제도에 대한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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