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소장(마을연구소 일소공도)

[한국농어민신문] 

농촌정책 혁신 위해 연수기관 절실
광역단위, 공공적 형태로 운영
민간단체 주도 심화연수 이뤄져야

세상이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배우지 않고서는 문제 해결의 힘은 생기지 않는다. 그야말로 평생학습이 필요하다. 가볍고 초보적인 성격의 교육 프로그램은 넘쳐나고, 조금만 발품 팔면 이런저런 교양 강좌를 듣는 것도 쉬워졌다. 이제는 유튜브 검색만 해도 많은 정보들이 넘쳐난다. 농사도 유튜브로 배워 짓는다는 사람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농촌에서는 배움의 기회가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세상이 돌아가는 동향을 알고 싶고, 농촌사회의 변화를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는 이런 배움이 더욱 절실하다.

대학원 석·박사과정을 마쳐도 농촌 현장과 정책을 ‘몸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규모 국도비 정책사업이 여전히 시행되고 있지만, 이를 현장에서 집행할 수 있는 훈련된 사무국장급이 없다는 현실이 절박하게 다가온다. 행정에서도 역량 있는 임기제공무원을 채용하고 싶어도 인적 자원이 부족하거나 수준이 미달된다는 불만이 계속 제기된다.

충남만 하더라도 농촌 마을만들기와 도시재생, 사회적경제 영역의 중간지원조직과 신활력플러스추진단 등에서 상근자가 200명이 넘는다. 지역복지와 평생교육, 마을교육공동체, 주민자치, 공익활동 등 다른 정책 영역으로 확장하면 훨씬 더 많다. 앞으로 농촌협약지원센터도 설치해야 하고, 내년 선거 이후에 나타날 신규 수요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많은 활동가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수요는 크게 늘고 있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농촌 현장에 살면서도 배움과 성장의 기회는 계속 제공되어야 하고, 새로운 전문인력을 수혈하고자 해도 훈련받을 기회가 필요하다.

최근의 농촌정책은 누가 보더라도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하다. 담당 공무원도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라 하소연하고, 활동가들도 이해하기 버거워한다. 전문가도 본인 분야만 파악하고 다른 흐름은 놓치기 일쑤다. 농촌사회 자체가 주민들의 일터이자 삶터이기에 복잡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현장에 적합한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하자면 나름대로 전문성이 필요하다. 농촌 현장을 바라보는 관점도 현실을 분석하는 힘도 나름대로 훈련받아야 가능하다. 선배들의 경험도 배워야 하고, 본인이 실천했던 경험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자극을 계속 받아야 한다. 그래야 농촌 현장이 주도하는 정책도 가능하고, 실질적인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전문적인 학습 기회를 체계적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물론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은 현실과 맞지 않다. 연구자도 공무원도 활동가도 서로 대등하게 서로 배우고 토론하는 방식이 좋다. 그래서 기본 형식은 아무래도 안정성과 지속성을 위해 전문연수원 방식이 맞다. 대상자는 현장 활동가를 중심으로 담당 공무원과 중간지원조직 상근자, 마을사무장, 석박사과정 학생 등이 될 것이다. 특히 중간지원조직 상근자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서로 만나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정책을 토론하며 문제해결 역량을 키우자면 이런 전문연수원 방식을 기획해야 한다. 운영방식으로는 크게 광역 단위로 하드웨어 기반의 전문연수원을 설치하는 방식, 민간단체가 전문 분야별로 소규모 프로그램 사업을 연중 안정되게 시행할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 이 두 가지가 우선 검토될 수 있다.

첫 번째인 광역 단위 전문연수원은 숙박시설을 기반으로 하고 보다 공공적인 형태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광역의 농촌정책 재단법인이 있다면 그 산하에 인력연수원 형태로 설치할 수 있고, 기존의 공무원교육원을 개혁하여 민간도 교육받을 수 있도록 인재개발원 형태의 별도 재단법인으로 독립시키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 재원은 광역과 시군 지자체, 그리고 민간에서 공동 출연하는 방식이 이상적이다. 특히 농협이나 당사자협의체, 출향인 등의 민간 출연도 이루어지면 민관협치 방식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 작년 9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민간단체가 주도해 활동가 심화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자격 요건으로는 농촌정책의 전문성과 상근 역량, 프로그램 운영 경험, 연수공간 확보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연수 및 숙박시설은 기존에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으로 갖춘 공간(특히 권역센터)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아무래도 공모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을 텐데 3년에서 5년간 연속 지원하는 방식으로 시설 리모델링비까지 포함하여 지원해야 할 것이다. 심화연수 프로그램 예시를 들자면, 민관협치형 정책 시스템 구축, 마을조사 방법론, 농촌마을미디어의 개발과 운영, 농촌건축과 공간디자인 설계, 중간지원조직의 통합형 설치, 사회적농업의 지역 네트워크, 읍면 주민자치회 운영과 자치계획 수립, 농업·농촌의 6차산업화 등 매우 다양하다. 운영방식은 2박3일 혹은 1주일 연속 진행, 주말 1박2일의 10주 연속 진행, 6개월간 과제중심형 진행 등 다양할 수 있다.

이런 두 가지 방식은 상호보완적일 수 있고, 이와 전혀 다른 대안도 당연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더 세련된 기획과 토론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현장 활동가의 성장과 신규 유입을 촉진하고 농촌정책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전문연수기관이 시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간지원조직 상근자와 행정의 임기제공무원, 민간단체 사무국, 컨설팅기관, 사회적경제 창업조직 등의 신규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래야 농촌 현장 가까이에서 역량 있는 활동가가 더욱 성장하고 정책의 질도 높일 수 있다. 각종 정책사업의 실효성도 확보하고, 예산 낭비라는 따가운 비판도 극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청년 중심으로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하여 ‘돌아오고 싶은 농촌’, ‘새로운 실험과 혁신이 일어나는 농촌’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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