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진 중앙대 교수

[한국농어민신문] 

자연의 희생으로 얻어지는 먹거리
텃밭, 귀농 낭만에 들뜨기보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더 멀어져야

최근 종영한 지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농촌 드라마가 케이블 채널에서 다시 방영되고 있고, 드라마들의 그 뒷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방영되는 등 조용히 인기몰이 중이다. 푸근한 고향의 상징으로 진한 향수와 감동을 전하겠다는 기획의도에 맞게 우리 농촌의 푸근한 인심과 가족 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드라마라는 평가가 현재까지도 지배적이다. 최근에도 각종 기사나 SNS 등에서 칭찬 일색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농촌 드라마는 방영초기 1980년 즈음에는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90년대로 넘어오면서 나와 같은 시골 출신들은 이 같은 내용의 드라마를 싫어했다. 90년대 들어 농촌의 주거환경이 대폭 개선됐고 기계화가 상당히 진행됐지만 농촌 드라마의 배경은 70~80년대 농촌을 벗어나지 못한 듯 했고 소박한 이웃은 가난한 이웃으로 비춰지기에 농촌 총각들이 결혼을 못하는데 이런 드라마들이 가장 크게 기여한다는 불만이 동네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던 기억이 있다. 2021년 현재 시점에서 도시인들 또는 농촌 출신들이 보면 낭만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귀농생활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란 나는 경운기를 타고 땡볕에서 농사짓는 것이 무슨 향수이고 달콤한 추억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기억도 있다. 물론 도시 생활이 농촌 생활에 비해 더 나았다고 보는 것도 무리는 있겠지만, 아마도 필자의 농촌생활은 부모님의 고단한 삶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귀농·귀촌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들 중에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 생활을 떠나 한가로운 시골생활을 꿈꾸는 사람과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사람 또는 자연에서 경제활동을 원하는 사람 등 이유와 목적은 다양하다. 그러나 귀농생활도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 흐름이고, 욕망이 살아 있다면 만족도 쉽지 않다. 귀농 후 쉽게 돈을 벌었다는 말을 가끔씩 듣지만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도시가 농촌보다 상대적으로 더 풍족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론적으로 보면 씨만 뿌리면 자연이 알아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 돈이 되어줄 것 같지만, 그 열매는 농사꾼의 마모된 연골과 흘린 땀방울을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땡볕에서 땀을 흘려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농약 없이는 제대로 된 고추 하나, 깻잎 하나 수확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을 밭일을 해봐야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도시가 생겨났다. 즉, 도시를 떠나면 그 편리함도 멀어진다. 시골 생활을 하면 생활비와 교육비가 줄고 옷을 잘 입을 필요성도 줄어들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돈이 적게 든다는데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바꿔 말하면 살 것도 못 사고, 다양한 교육의 기회도 줄어들고 멋 부릴 기회도 줄어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나의 욕망을 채우면 하나의 욕망을 포기하는 것, 이를 기회비용이라고도 하는데, 도시를 버리고 자연을 선택할 때 가장 큰 기회비용은 자연의 희생이 될 수도 있다. 텃밭 조금 일궈서 먹거리 챙긴다고 농업인을 자처하는 이들이 많고, 이들을 보고 또 다른 이들은 귀농·귀촌 생활을 꿈꾼다. 결정적으로 자연에서 먹거리를 얻는 것을 자연을 사랑하는 행위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먹거리를 재배하는 그 땅은 원래 천연 동·식물과 자연의 소유였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고 생각한다. 또한 귀농활동의 낭만이 자칫 자연을 착취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동·식물의 낙원은 비무장 지대 딱 한 곳이다. 이곳이 낙원이 된 이유는 인간의 손길에서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자연의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을 비무장 지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농업도 기계화가 완전히 정착돼 과거에 비해 그렇게 고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또한 농업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생명산업으로 그 가치와 역할을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농업은 미래 인류의 가장 주요한 먹거리 산업으로 각광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농업에 관해 우려스러운 것은 귀농·귀촌 생활이 유행되면서 농업을 단지 낭만의 도구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땅을 가꾸고 작물을 재배하고 거기에서 생산된 것으로 먹거리를 만드는 것이 낭만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또한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고자 하는 것을 비난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도시생활 보다 오히려 시골생활이 훨씬 더 자연에 많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도시의 시설물은 쉽게 짓고 쉽게 허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은 회복하는데 훨씬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영구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마트에서 채소를 사먹지 않고 텃밭에서 생산하는 것을 대단한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잘못된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마트에서 채소를 사먹고 그 텃밭을 자연의 것으로 그대로 두었다면 그것이 더 자랑이 돼야 하는 세상도 이제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도시농업이나 도시 녹화 등을 통해 도시가 자연과 농업에 가깝게 다가가는 것과는 또 다른 성질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연을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탐욕으로 비하할 생각은 없다. 또한 집약농업이건 텃밭 가꾸기든 인간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방식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농업이건 그 크기가 얼마이건 간에 인간의 편리함과 풍족함을 위해 자연의 희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무엇이 됐건 우리가 자연에 가까이 다가가는 낭만에 앞서 그것이 자연에게 어떤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해보고 그것이 자랑인지 올바른 길인지 되묻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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