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략기획경영본부장

[한국농어민신문] 

식량비축, 도시·실내농업 확대 등
코로나 이후 새 농업기술 도입 움직임
자국 내 식량자급 균형이 중요

코로나19 장기화는 전 세계적으로 농업과 식량의 중요성을 돌아보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도 외국인 농업노동자의 수급문제 등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국가 식량공급 시스템 자체에는 큰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조금만 시야를 밖으로 돌려보면 코로나19는 많은 나라들에게 자국의 농업시스템을 점검하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도입하려는 촉매가 됐다. 특히 자국 내 농업생산이 어려운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비축을 늘리거나 도시농업과 실내농업을 늘리는 움직임이 힘을 받고 있다.

고온의 사막기후인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들은 팬데믹 이전부터 안정적 식량 확보에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팬데믹의 장기화는 위기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식료품의 80% 이상을 수입하는 UAE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전략적 식량 비축분 확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해 식량위기 상황에서는 연방정부가 식량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갖도록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100만 톤 이상의 밀 전략 비축분을 확보한데 이어, 추가수입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첨단 농업기술활용을 통한 영토 내 농업생산기술 확보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UAE가 우리나라 원전을 수입하는 대가로 K-농업기술을 활용해 사막조건에서의 벼농사 기술개발과 주식인 대추야자 병해충 극복을 요청한 사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더해 UAE의 아부다비 투자국은 실내농장 개발을 위해 사막 한가운데서 축구장 13개 크기의 연구시설에 60명 이상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연구개발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농산물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홍콩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현지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촉진하려고 노력 중이다. 농지가 국토의 4.5%에 불과한 홍콩은 1980년대만 해도 자국농산물의 시장점유율이 30% 수준이었지만, 2017년에는 1.7%까지 떨어졌다. 자국 내 농업생산시스템이 거의 붕괴된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 장기화로 인한 식량위기감이 커진 홍콩은 현지 농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고, 중국 본토에서 생산하는 농산물보다 가격과 구매편의성은 크게 떨어지지만 현지 농산물을 요구하는 소비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콩은 도시농업에도 적극적이어서 오래된 공장건물을 개조해 만든 수직농장인 ‘Farm66’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농장에서는 첨단시설을 활용해 4명이 연간 200톤에 가까운 샐러드 채소를 생산한다. ‘Fam66’은 수직농법, 아쿠아포닉스, LED조명, 드론을 이용한 환경 모니터링과 제어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소규모 인력이 폐건물에서 최신식 도시농업을 실현하는 중이다.

식량의 90%를 수입하는 싱가포르도 2030년까지 소비량의 최대 30%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목표를 세웠다. 단기적으로는 현지 농산물 생산을 늘리기 위한 보조금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옥상농업 위주의 도시농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팬데믹 상황으로 식량공급이 차단되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생산을 늘리고 수입의존도를 완화하려는 것이다.

실내농업과 관련해서는 한국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데, 아파트 내부에 스마트팜을 설치하는 도시농업이 시도되는 중이다. 현대건설의 ‘H 클린팜(H CleanFarm)’은 빛, 온도, 습도 등 생육에 필요한 요소들이 인공적으로 제어되는 밀폐형 재배시스템으로, 단지 내에서 오염물질 없는 작물의 재배가 가능하다. 건강과 안전한 먹거리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을 겨냥한 미래 아파트의 나아갈 방향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이래로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삼포식 농업부터 최첨단 수직농장까지 농업을 향한 인간의 연구와 노력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며 계속해서 발전했다. 팬데믹은 지금의 기술수준과 경제성을 기준으로 농업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 식량안보를 위해서는 자국 밖 식량공급 만큼이나 자국 내 식량자급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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