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이사

[한국농어민신문] 

장관의 ‘종합적 판단’이라는 정치적 수사
모면과 회피, 다 알면서도 속아줄 뿐
약속됐던 ‘쌀 시장격리’ 지키면 될 것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속 시원하게 농민들을 대변했던 적이 있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현재 장관도 마찬가지일 터. 나는 그의 이력도 성향도 캐릭터도 모른다. 좀 다르다는 소리도 기대를 걸어본다는 소문도 들어본 적 없었으니, 변방 주민으로서 굳이 장관의 발언에 귀 기울일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농어민신문을 펼쳐 보다, 오늘따라 한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시장격리라는 것은 가격이 급격히 떨어져서 쌀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는 시기에 하는 건데, 그런 상황인가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겠다.” 11월 3일 국회 농해수위 회의에서 나온 장관의 발언이다. 다른 기사를 더 찾아보았다. “금년 쌀 작황은 평년작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수요량을 넘어설 것으로 생각된다. 수급 상황을 보고 쌀값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등 종합적으로 판단해 검토하겠다.” 10월 5일 농식품부 국정감사 현장에서 나온 장관 답변이다.

지난 칼럼에서 나는 “농산물은 공공재인가?” 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정치인들이 농민들 비위 맞추느라 때때로 공공재 운운하는데, 정말이지 어림도 없는 헛웃음만 나는 소리라는 취지였다. 역시 이번에도 어김없이 입증되고 있으니, 공공(公共)의 상징이자 현실이자 근본인 쌀에서 실패 중이다.

벼의 일부만이라도 시장에서 격리해 소득과 가격 안정화를 꾀해본다는 정책. 복잡하기 짝이 없는 농정 중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간단명료한 공공정책에 속한다. 그런데 이조차 약속을 지키지 않는 판국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풍년의 역설. 천지자연의 선물과도 같은 풍년을 우리는 이렇게 왜곡시키고 있다. 이번 칼럼이 독자를 찾아가기까지 1주일이다. 부디 그 사이에 무슨 변화라도 있기를 바랄 뿐이다. 

쌀 시장격리 이슈가 갑자기 나의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다. 장관의 말을 읽다가 새삼스럽게 피식 웃게 만든 대목은 짧은 정치적 수사(修辭) 한 대목이었다. 장관의 독창적 식견이 아니라 너무도 익숙하고 진부한 수사였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겠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검토하겠다.”

‘종합적 판단’은 한국의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즐겨 쓰는 ‘정치적 수사’다. 외국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일까? 아마 그럴 것으로 짐작되지만 애써 확인하는 수고까지는 하기 싫다. 아무튼 어떤 사안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검토”하겠다는 답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실상 ‘모면과 회피’를 뜻한다. 속고 속이는 암묵적 교양이다.

해결책이 없는 문제는 없다. 세상 어떤 문제든 해결책은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유하자면, 당장 지혈부터 하는 응급처치일 수도 있고, 일단 안정시키는 대증요법일 때도 있다. 각종 검사를 수반하는 위험한 수술일 수도 있고, 먹거리와 약을 통한 장기적인 체질 개선일 수도 있다. 이번 쌀 시장격리의 경우는 응급처치와 대증요법 사이 어디 쯤에 해당될 것이다. 완전한 치료는 아니란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게라도 하기로 정치적으로 약속되었던 잠정적 해결책이다.

정치인(대통령부터 군의원까지)과 관료들(국무총리부터 9급 공무원까지)은 늘 말한다. 상황을 종합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릴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확실한 매뉴얼이 있는 경우라면 마냥 시간을 달라고는 못한다. 그 매뉴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미 과거에 ‘종합적 판단’의 시간을 지불했기 때문이다. 일단 매뉴얼을 따르면 욕은 안 먹는다. 그런데 쌀 시장격리 이슈는 그걸 안 한다. 

그 어떤 매뉴얼도 고정불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듬고 개선해야 마땅하다. 어떤 경우(농지문제처럼)는 그냥 붙들고만 있거나 방치만 하고 있어도 퇴행과 개악이 되기도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정치인과 관료들은 직위(임기)나 신분(고용)이 보장되는 대신, 정치적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서 변화를 모색해야 마땅하다. 만일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종합적 판단’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시간을 충분하게 써도 된다. 시민들은 기꺼이 기다려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다. 이도 저도 아닌 ‘모면과 회피’의 자세로 ‘종합적 판단’ 운운하는 정치인이나 관료들을 본다. 광화문에도 있고 세종시에도 있고 도청에도 있고 농업기술센터에도 있다. 당신은 이렇게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정말 심사숙고를 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일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다. 모면이고 회피라고 단정하며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말이다. 그런가? 과연 그럴까?

어떤 문제든 이해가 얽힌 당사자들은 본능적으로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거기에 그들과 얽히면서 실망했던 경험이 보태지면 거의 99.9%의 정확도로 꿰뚫어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종합적 판단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모면과 회피가 아닌 적이 없었다. 농정의 경우는 진짜 농민이라면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다만 알면서도 속을 뿐이다. 모르는 척 속아줄 뿐이다.

왜 모면이라 하는가? 왜 회피라고 하는가? 바르고 정의롭고 상식적이어서 마땅히 걸어야할 길이 하필 힘든 오르막길이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농업농촌은 아래로 곤두박질쳤으므로 힘겹게 올라가야 한다. 그게 싫은 것이다. 용기가 없는 것이다. 진실과 상식이 두려운 것이다. 다음 주자가 오르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교양있게 포장한 것이 바로 ‘종합적 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로 ‘종합적 판단’을 한다면 농민은 참고 기다려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도무지 주지 못하는 정치와 행정이다.

끝으로 한마디 한다. ‘종합적 판단’은 실로 농사꾼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농사짓는 하루와 사계절 내내 종합적인 판단과 판단의 연속이다. 경험과 내공이 쌓인 농사꾼의 손길과 걸음이 보여주는 ‘종합적 판단’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말이다. 물론 아무리 판단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괴로울 뿐이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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