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지역재단 지역순환경제센터장

[한국농어민신문] 

주민자치적 해법 필요한 ‘공공서비스’
만족도 떨어지는 행정주도 벗어나
제공방식, 유지·관리까지 민관협력 필요

“농촌주민들이 왜 면 소재지 문화복지시설을 활용하지 않는지 아세요?” 얼마 전 ◯◯군 마을대학에서 받은 질문이다. “요즘같은 가을걷이 시기에 갈무리하고 집에 들어가 씻고 저녁 먹고 나면 몇 시인 줄 압니까?” “그 시간에 면 소재지로 나가는 버스는 있습니까?” 농촌 중심지활성화사업 또는 기초생활거점육성사업 추진지역 배후마을 주민들이 면 소재지에 건립되는 시설물에 관심도 없고 활용할 생각도 없는 이유이다. 

2020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중점 추진하고 있는 농촌협약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자체별로 농촌지역의 365생활권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365생활권이란 무엇인가? 30분 내 기초생활서비스 지원, 60분 내 복합서비스 접근 보장, 5분 내 응급상황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여 낙후된 농촌지역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자체 스스로 농촌공간에 대한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중앙정부가 함께 지원하는 방식이라 하니, 지자체마다 앞 다투어 용역사를 선정하여 농촌협약 대상지역으로 선정되기 위해 농촌생활권 활성화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농촌생활권 활성화계획이라는 것이 기존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시군 단위 거점이 되는 읍과 비교적 규모가 큰 면지역을 거점지역으로 하여 주변 면지역 주민들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기초생활서비스를 집중시킨다는 것이 기본적인 접근방식이다. 즉, 기존 읍면 소재지 마을이 중심지이고, 그 외 마을이 배후마을이던 것이 이제 시군 단위 읍(또는 거점면)이 중심지가 되고 주변 면 지역이 배후마을이 되는 방식이다. 

한 지자체 농촌생활권 활성화계획 수립과정에 참여한 주민들이 모든 읍면별로 계획을 수립하면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해 했지만, 용역사의 답변은 모든 읍면별로 시설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고, 읍과 또 다른 중거점 면을 선정하여 2개 생활권으로 분리하여 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지만, 그 경우 선정 가능성이 낮아진다고 답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 농촌협약 설명자료에 따르면, 생활권 내 상위 중심지-하위 중심지-배후마을 간 생활서비스 공급·전달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필수 정책과제로 하므로 단일 생활권을 대상으로 수립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한 주민은 “기초생활서비스가 읍을 중심으로 집중되다 보니, 읍면 간 불균형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행정과 용역사에서는 읍 지역에 기초생활인프라를 확충하고, 배후지역 주민들의 이용편의를 위해 순회버스를 운영하겠다고 하지만, 그 또한 유용성이 의문이다. 우선 순회버스는 유료인지 무료인지, 유료이건 무료이건 농어촌 버스 적자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유지·관리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 순회버스 운행시간은 몇 시까지인지 사업 종료 후 과연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리너 오스트롬은 ‘정부개입이 공공서비스 확대 또는 개선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의 정책이나 규제는 획일적이어서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질 수밖에 없고, 현지 주민들의 협조를 얻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인력과 예산 제약으로 공유재를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스트롬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과도한 정부의 역할이 시민들을 공유재에 대한 권리와 사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하도록 확산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스트롬은 지역사회 공유재의 특성은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주민 스스로 자율적으로 관리하게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권고한다. 그 핵심은 공유재 이용자들이 이용방법과 유지·관리까지 현지 사정을 고려하여 현지 주민들이 참여하여 완전히 합의에 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리적 범위가 작고 공동체 구성원이 자주 바뀌지 않아 지역주체가 비교적 명확한 농촌사회에서 주민들의 기초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공공서비스’는 주민자치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공공서비스 공급자인 행정주도로는 비용만 많이 들고(행정에서 직접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없으니 용역사를 선정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방식으로 비용은 발생하지만 주민 만족도는 떨어지고 그 성과와 경험이 지역에 남지 않는 악순환), 수요자인 주민들을 만족시킬 수도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행정과 주민이 협력을 통해 공공서비스 내용과 제공방식, 유지·관리까지 ‘공동생산·공동실행’의 관점에서 민관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목욕탕, 미용실, 이발소, 식당, 편의점, 카페, 파출소, 약국, 병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등 도시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기초생활시설이 농촌에서는 시장에서도 공공에서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농촌 활성화를 위해 많은 정책이 발굴되었고 투입된 예산도 적지 않지만 왜 농촌주민 생활여건은 개선되지 않는지, 경제적 효율성을 따져 ‘선택과 집중’을 택한다고 해서 과연 농촌재생이 가능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곱씹어 보아야 한다. 농촌재생 제도와 예산보다 정책 철학과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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