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미 농촌진흥청 농업환경부장

[한국농어민신문] 

국민과 함께 풀어야할 문제로 접근
주민과 함께 ‘리빙랩’ 방식으로 운영
다른 부처와 공동으로 협력, 대응을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 지향점이 과학기술진흥에서 국가·사회 현안문제 해결로 전환한다. 정부는 최근 미·중 기술패권 경쟁 등으로 경제, 사회, 외교 등 세계 질서 대전환이 예상된다면서 미래 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 기반 기술, 경제, 사회, 환경, 안보 혁신방안을 담은 제5차 과학기술기본계획(2023~2027)을 수립하고 있다. 국가혁신, 경제회복, 사회포용, 인류·국가 생존이라는 4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혁신정책에 과학기술을 핵심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기술의 진보 외에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기도 하고 사회를 바꾸는 힘이 있다. 이처럼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 개선·감소·해결에 기여하여 개인과 사회 차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연구·개발 활동을 사회문제해결 연구·개발(R&D)이라고 한다. 사회문제해결 연구·개발은 수요자(문제 당사자)와 전문가그룹이 함께 사업을 발굴하고, 문제를 정의하며, 과학기술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주민과 연구자가 전 과정에 참여한다.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도 국가와 지역이 공동으로 겪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사회 혁신에 기여하면서도, 사회적·공공적·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문제해결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이우성 등, 2020).

우리나라에서 이런 연구의 가장 깊은 역사는 바로 농업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 대부분이 굶주려야 했던 시절, 식량 자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품종을 개발하고, 농가가 새로운 품종을 도입해 재배할 수 있도록 전시포를 만들고, 마을마다 농업인들이 모여 워크숍을 하고, 새로운 품종과 기술을 도입해 적용해 보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다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그 열정적인 참여를 통해 통일벼 보급이 확대되고 수량이 증가한 쌀 생산체계가 완성됐다.

요즘도 협업농장과 함께 기술을 적용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클로렐라를 적용한 딸기 품질 향상과 농업인 조직화 사례를 보면, 기술에 확신을 가진 농업인과 경험이 없는 농업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수용해 품질을 향상시킬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리고 농촌진흥청 연구자와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농업인 교육과 클로렐라 사용기준을 함께 조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농가마다 기술수준 차이로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 있자, 사용량을 표준화하기 위한 기술이 필요하게 됐고, 연구자가 대량배양기를 설치하고 배양기술을 개발하도록 조합에서 공간을 기증했다. 이렇게 해서 농산물 품질 향상을 통해 시장가치를 높였고, 참여 농가도 골고루 높은 수입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과학기술은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2차 과학기술 기반 국민생활(사회)문제해결 종합계획(2018~2022)’에 제시된 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핵심 사회문제는 10영역 41과제다. 2022년도 연구·개발사업 투자계획(예산)에서도 국민과 공감하는 사회문제해결 연구·개발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선정된 문제에는 농업이 드러나 있지 않다.

따라서 농업계에서도 국민과 공감할 수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과 함께 풀어야 할 문제라는 인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첫째, 문제의 선정이다. 예를 들면, ①농업시스템 혁신을 통한 안정적 생산기반 구축 관점에서 데이터 기반 기상·토양·생육·양분·병해충 등의 합리적 관리, 디지털 자동제어를 통한 농업노동력 대체, 청년의 아이디어를 결합한 새로운 농업방식 등이다. ②농업·농촌 자원을 활용해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지원하고 지역사회를 활력화 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 치유와 돌봄 확대, 순환적 농업체계, 고령화에 따른 지역소멸 위험 대응 등이다. ③농업의 불안정성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관점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거리 줄이기(유통시장 혁신), 농산물 안전관리(식물과 가축질병 관리), 기후변화 대응 건강한 환경생태 유지(비료, 폐기물, 에너지 관리) 등이다.

둘째는 운영방식이다. 주민이 사는 공간(Livig)에서 주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리빙랩(Living Lab) 방식은 농업기술 실용화 과정에서 오래도록 체화된 방식이다. 기술수요자가 참여해 기획하고, 실행하며, 평가할 수 있는 장치들을 조금 더 강화하는 것이다. 기술을 안착하기 위한 방안은 좀 더 세밀하게 마련돼야 한다. 앞서의 클로렐라 적용기술은 다른 작물로,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고 있으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3년 정도의 지원이 아니라 5~10년 정도 기술이 안착되는 구조가 필요하고 농업인 등 사용자가 기술에 실패했을 때 보전해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부분까지는 충분히 논의되지 않는 듯 해 아쉬움이 크다.

셋째는 모든 경제·사회적 환경 속에 농업과 농촌과 농업인이 있다. 그러므로 최소한 41개 사회문제해결 연구·개발만이라도 농업과 농촌과 농업인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농업·농촌·농업인 인지적 사회문제 기획과 추진을 모니터링하고, 농업계뿐 아니라 다른 부처와 공동으로 사회문제 해결방안을 기획하고 협력적으로 풀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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