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규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부장

[한국농어민신문] 

기후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폭염, 가뭄, 폭우 및 열대 태풍 등 복합적인 극한의 기상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2021년 8월 발표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아시아 지역 전체로 폭염이 증가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평균 강수량과 폭우 발생 빈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토연구원에서는 기후변화 영향으로 우리나라 미래의 강수량 및 유출량이 계절적 패턴 변화가 심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물 부족을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변화는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특히 농업에서 물의 영향은 절대적인 부분으로 안정적인 농업생산을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물관리가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우리 농업도 디지털농업으로 변화해 가고 있다. 시설농업의 디지털화는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노지농업의 디지털화는 시작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기후변화에 영향이 큰 물관리 기술은 경험에 의존하던 농업에서 벗어나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 물관리 기술을 시스템화하고 자동화해 잦아지고 있는 가뭄과 강우조건에서 안정적인 농업생산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겠다.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노지 디지털농업의 정밀물관리에 대한 기반기술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자동물관리시스템 개발에 힘쓰고 있다. 자동물관리시스템을 농사 현장에 적용하기 위해 최적량의 관개수를 자동공급이 가능한 ‘지중점적 자동관개 제어기술’을 개발했다. 또한 땅속에 물이 고여 작물에 습해 발생을 방지할 수 있는 ‘저비용 무굴착 땅속배수기술’을 개발했다. ‘지중점적 자동관개 제어기술’은 땅 속에 관을 묻고 작물이 필요로 하는 양만큼 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해 실시간 토양 속 수분 관리가 가능하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농업용수는 약 22% 절약이 가능하고, 콩 수량도 약 26% 증가했다. ‘저비용 무굴착 땅속배수기술’은 일반 트랙터에 매설기를 연결해 주행과 동시에 배수관과 왕겨를 땅속에 묻어 물을 빠지게 하는 기술로 기존에 땅을 파고 관을 묻는 굴착식 땅속배수에 비해 설치비용이 67%나 절감되고, 콩 수량도 27% 증가했다. 또한 쉽게 논밭 전환이 가능해 논에서도 밭작물 재배가 유리하고,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다시 논으로 사용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이 기술들은 현재 농촌진흥청에서 시행하는 신기술 시범사업을 통해 ‘지중점적 자동관개 제어기술’은 전국에 22개소, ‘저비용 무굴착 땅속배수기술’은 21개소에 설치돼 현장에 적용되고 있다.

두 가지 기술의 장점을 모아 비용을 더욱 절감하고 효율적인 물주기와 물빼기가 동시에 가능한 ‘관·배수 통합 자동제어 물관리 기술’도 개발 중에 있다. 또한 지중점적관개시스템의 효율성을 고도화하기 위해 작물의 수분스트레스를 평가하고 관개스케줄링에 적용할 예정이다. 관개스케줄링이란 기상조건, 토양특성, 작물의 생육단계에 따라 관개 시기 및 관개량을 조절하는 것으로, 토양수분센서와 기상정보를 활용함으로써 재배환경의 디지털화가 가능해진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고 공급할 수 있는 ‘만석거’와 ‘축만제’와 같은 관개시설을 축조하여 활용했다. 이러한 시설은 매우 단순한 물관리 시설이었음에도 농업생산에 획기적 전환점이 됐다. 디지털농업시대에는 첨단기술을 이용한 맞춤형 정밀물관리 기술이 식량작물의 생산관리에 있어 전환점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량작물의 생산성 증대를 통한 식량자급률을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디지털 기반 정밀물관리 기술을 고도화시키고 농업현장에 보급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민·관 협업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