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태안에 사는 50대 여성농업인입니다. 조카가 보내준 옥수수 상자 속 신문을 보고 우연히 공모전 소식을 접하게 됐어요.” -권○○ 씨

“지역농협에 갔더니 담당자가 공모전에 응모하라고 권해줘 망설이고 있었는데, 며칠 뒤 큰딸도 같은 공모전을 도전해 보라고 해 용기를 내봅니다.” -김○○ 씨

“농사일로 정말 바쁜 와중에도 지난 23년간의 농사 이야기를 쓰면서 제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됐습니다. 제 경험을 통해 많은 여성농업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여성 농업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김○○ 씨

“충북 음성군에 살고 있는 47세입니다. 공모전 공고를 보고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생각해 보니 쉽지 않았던 농촌에서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서 얘기를 한 번 해보려고요.” -정○○ 씨

“우연히 공모전을 보게 되었고, 저를 키우기 위해 농촌에서 홀로 농사를 지으셨던 할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 손녀 김○○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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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한국농어민신문사와 농협중앙회가 주관한 ‘제5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이 여성농업인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마무리됐다. 여성농업인 저마다의 사연 속 ‘별별 이야기’가 생활수기 속에 수놓아졌다.

지난 6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공모 원고를 접수한 결과 총 85편이 접수됐고, 예선 심사를 통해 65편이 본선 심사 대상에 올랐다. 이후 반숙자 수필가를 심사위원장으로 김계순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장, 김현수 작가, 이수안 수필가, 우미옥 농식품부 농촌여성정책팀 사무관 등 5명으로 꾸려진 심사위원단은 △스토리 △문학성 △감동 △농업연관성을 기준으로 본선 진출 작품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다. 또 9월 24일에는 심사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최고 점수를 받은 작품을 대상으로, 차등 점수를 받은 작품을 우수상과 장려상으로 선정해 9월 30일 본지 홈페이지를 통해 당선자가 발표됐다.

‘여성농민의 꿈을 응원해줘’
충남 부여 신지연 씨 ‘대상’
심사위원 만장일치 선정


대상에는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충남 부여의 신지연 씨(‘여성농민의 꿈을 응원해줘’)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신지연 씨의 작품에 대해 마을 최초의 여성 이장이 된 사연과 두 번의 귀농, 남편을 떠나보낸 아픔 등의 시련을 토종밀과 토종벼농사로 극복하고 유기농 채소 등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여성농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았다고 평가했다.

우수상은 △김기령(충남 천안) △김미(전남 무안) △백연자(경북 문경) △이상분(경기 평택) △최윤진(전남 나주) 등 5명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고, 장려상은 △강미령(경북 상주) △김미경(세종특별자치시) △김소연(경기 이천) △김예슬(충남 예산) △김이순(경남 거창) △반윤숙(경북 포항) △안재은(충북 청주) △양영숙(경기 안성) △유현주(전남 담양) △이선자(제주 한림) △이성희(충남 금산) △장서현(충남 천안) △장순덕(경남 함안) △현자(충남 홍성) 등 14명이 선정됐다.

 

수상자 인터뷰

제5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받은 여성농업인들. 왼쪽 이상분 씨(우수상)·가운데 김미 씨(우수상)·오른쪽 신지연 씨(대상). 
제5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받은 여성농업인들. 왼쪽 이상분 씨(우수상)·가운데 김미 씨(우수상)·오른쪽 신지연 씨(대상). 

지난 10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 인근 스튜디오에서 ‘제5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 대상 수상자와 우수상 수상자 중 김미, 이상분 씨를 만났다. 사뭇 긴장된 표정의 수상자들은 진솔하고 담담하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혼자 농사짓는 여성농업인과
농촌의 미래 함께 꾸려갈 것”

 ▲대상 신지연 =충남 부여에서 유기농 양상추와 유기농 브로콜리, 토종밀과 토종벼 농사를 짓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여성농민입니다. 공모전이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직접 글을 써서 공모해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러다 최근 한 여성연구원에서 여성농업인에 대한 사례를 발표하게 됐어요.

발표를 하면서 ‘이게 단순히 개인적인 사례가 아니라 여성농민들이 대체적으로 겪고 있는 사례인데, 한번쯤은 이것에 대해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모전에 출품할 생활수기를 쓰면서 ‘기왕 하는 거 상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지만 대상을 수상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막상 대상에 선정됐다고 했을 때는 사실 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너무 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거 같아서요. 나의 이야기가 전 국민에게 다 공개될 텐데 요새 말로 ‘현타 온다’고 할까요? 여성농민으로서 한 사례를 알리고자 한 건데 막상 또 개인적인 부분이 모두 드러나니까 굉장히 부끄럽더라고요.

수상 소감이라고 한다면, 저는 지금까지 총 두 번의 귀농을 했어요. 서울토박이였던 저는 처음에는 남편 고향인 전남 구례로 귀농했고, 두 번째는 아무 연고가 없는 곳 충남 부여에 귀농을 했어요. 어려운 걸로 따지자면 연고가 없었던 부여에서의 삶이 더 힘들었는데, 한편으로는 스스로 개척해 나갔다는 자부심이 커요.

예전에는 저처럼 혼자 귀농해서 농사짓는 여성농민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때는 농사지으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지금은 여성 혼자서 또는 여성 몇몇이서 공동체를 만들어 귀농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이분들과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요. 또한 함께 농촌의 미래도 꾸려나가 보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농촌 이야기,
나 그리고 이웃의 모습 담아”

 ▲우수상 김미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는 농촌이 참 좋았어요. 바닷가 마을에서 살았는데 파도소리가 항상 들렸고, 산도 있어서 소나무도 울창했어요. 들판엔 유채꽃이 융단처럼 펼쳐져 있는 걸 보며 자란 저는 어려서부터 '절대 농촌을 떠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결혼할 때도 반드시 농촌에 사는 사람이어야 했어요. 다만, 제가 살던 곳은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학교 다닐 때도 한 시간씩 걸어 다녔는데, 가능하면 교통이 편리한 읍내 쪽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마을 언니가 제게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에 출품해보라고 권유를 해서 도전하게 됐어요. 잘 쓸 자신은 없었지만, ‘내가 얼마나 농촌을 사랑하는데’라는 생각에 내 이야기 그리고 우리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수상까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 늴리리, 짱뚱어, 삐쭉새, 뗑깡쟁이, 윤형사 등 미처 말하지 못한 모든 분들과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밥만 하는 삶도 귀 기울여줘
내 이야기할 수 있어 고마워”

 ▲우수상 이상분 =여성농업인 생활수기 공모전에 출품을 하면서도 이 상이 제 몫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남들처럼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그냥 농촌에 시집와서 목장일하면서 방앗간 정미소 일하고, 임부들 밥 챙겨준 게 전부였거든요.

하루 종일 밥하고 나르던 기억밖에 없는데, 그렇게 부엌데기로 밥만 하는 삶을 살았는데, '누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모전을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심사위원 총평
“온몸 내던져 쓴 땀의 기록에 숙연”

▲반숙자 심사위원장=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이 65편, 403쪽의 분량이 두둑하다. 외면의 화려함보다 귀농·귀촌의 현실에서 겪은 일들을 솔직하고 간절하게 표현해 여성농민의 수기를 읽을 때는 허투루 읽지 못한다. 한 편 한편에서 손끝으로 쓴 글이 아니라 온몸을 내던져 쓴 땀 흘린 기록이어서 숙연해지고 감동으로 마음의 박수를 보내며 같이 웃고 같이 아파하며 읽기 때문이다.

올해의 특징으로는 우리 농촌에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귀농·귀촌인이 증가하면서 1차 농업에서 3차, 4차 농업으로 전환되는 작품이 많았다. 연령대도 젊은 층이 많아지고 영농의 현장에서 겪는 애환이 가감 없이 표출돼 농촌의 의식변화를 주도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여성농민이 겪는 불평등과 농촌에 정착하기 어려운 점이 공감의 폭을 넓혔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삶의 체온을 전하는 작품들은 글로서 치유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귀농·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정착해서 살아가는 분들에게도 좌표가 될 만한 글이 많아서 희망을 보았다.

▲김현수 위원=농업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농대에 진학하고, 토종벼 농사를 지어 씨를 이어가고, 마을 최초의 여성이장으로 마을 살림을 이끌어가는 신지연 씨의 ‘여성농민의 꿈을 응원해줘’는 미래의 농촌을 가슴 뛰며 꿈꾸게 했다.

백연자 씨의 ‘과수원 선생님’은 사과밭 한 고랑에 애육원 어린이들을 초대해 함께 나누겠다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꿈을 실현해가는 이야기다. 사과밭이 생존과 생명의 밭에서 나눔과 모심의 밭으로 우뚝 서는 과정을 다정한 문체가 맛깔스럽게 살려내고 있었다.

주옥같은 작품들을 다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여성의 이야기는  주목받기 힘들다. 그래서 여성은 매번 처음부터 말해야 하며, 잃어버린 서사를 다시 복원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농촌 여성의 삶을 기록하는 생활수기 공모전 ‘별별 이야기’가 소중한 이유다. 여성들이 더 많이 쓰고 말하기를 바란다.

▲김계순 위원=많은 작품에서 농사에 대한 열정과 인간애, 또는 친환경 농사에 대한 의지를 보았다. 수해로 쓰러진 하우스를 바라보는 절망 속에서도 꿋꿋이 일어서는 농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화합으로 이끄는 노력, 농사의 길을 함께 걸어왔고 또 걸어갈 동반자를 잃고도 다시 일어서는 모습…. 이런 내용의 글은 땀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농부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감동이 아닐까 싶다.

▲이수안 위원=이번 심사에서 이목을 끈 작품을 쓴 두 주인공은 수십 년간 농업현장을 지켜온 여성이다. 이상분 씨의 ‘나는 마님이로소이다’는 셋째 며느리가 고향을 지키면서 부엌에서 느끼는 여성 심리를 잘 파헤친 글이다. 김미 씨의 ‘어울려 피는 꽃’은 6·25 동란 때 잉태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주민들 간의 갈등을 차근차근 해소해 가는 글이다. 두 작품은 농업 연관성이 낮기는 했지만, 마치 독립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문학성이 탁월했다.

▲우미옥 위원=여성농업인이 고군분투 끝에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모습이 담긴 수기를 읽으며 여성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가슴 뭉클하도록 실감나게 느꼈다. 특히 올해 공모전에서는 청년여성농업인들의 수기가 많았고, 이들의 농촌 정착기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청년여성농업인들과 함께 밝혀가는 우리 농업·농촌의 밝은 미래가 기대된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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