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코로나 19 난리 속에서도 추석은 지나갔다. 어떤 이들은 귀성을 포기했지만, 어떤 이들은 조심스레 고향을 다녀왔으리라.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은 이들은 자신이 자라난 농촌 풍경과 추억을 눈과 마음에 담고 왔을 터다.

추석은 한해 농사의 결과인 추수에 감사하는, 가장 풍성한 명절이지만, 우리 사회 변화에 따라 이래저래 의미가 퇴색되거나, 문화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그래도 추석은, 우리에게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일깨우고, 명절을 쇠는 과정에서 자기 주변과 삶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농촌에서 자라났고, 농촌이 길러낸 세대들은 농촌생활과 문화를 자연스레 공감하는 ‘농촌감수성’을 체화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제약이 있지만, 명절 때마다 고향 농촌을 찾고, 차례를 지내면서 농촌, 농민, 농업의 현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부모님이 농사짓고 소를 길러 학교에 보내 주신 덕에 도회지에서 정착했고, 농촌의 희생으로 나라가 성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농촌과 농민들에게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다는 채무의식도 공유하고 있다.

농촌 감수성이란 농촌 사회, 농업의 가치에 대해 느끼는 성질이나 성향으로 말할 수 있겠다. 이런 농촌감수성이 사회적으로 풍부하다면, 농촌의 형편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특히 농정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이들이 농촌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농민의 삶에 대해 배려했다면, 농촌의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나라 농업관련 기관, 단체를 들여다보면, 과연 ‘농촌감수성’을 가지고 정책을 다루거나, 농민적 관점에서 농정을 고민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물론 지금은 세월이 흘렀고, 시대가 변했다. 3농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 농촌에 대한 2020년 국민 의식 조사결과’를 보면, 농업 농촌에 대한 애착심이 많다는 도시민은 2018년 52.2%에서 2020년 31.4%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기관, 연구기관, 관련단체 종사자들도 이제 농촌이 아닌 도시 출신이 주류다. 농촌감수성이 예전보다 떨어 질수 밖에 없다. 사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이들이 대세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 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현실과 농정에 대해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던 이들은 현직에 몇 남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농촌 감수성’은 농정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다. 농업, 농촌, 농민의 가치, 그 문화를 잘 이해해야만 현장에 부합하는 농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갈수록 농업의 가치, 그리고 농촌 현실과 괴리된 농정이 심화되고 있다. 농민들이 요구하는 수많은 정책이 있지만, 그것은 요구일 뿐, 결국 구체적인 정책은 여전히 관료들과 소수의 전문가들끼리 만들면서, 농민이 소외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농민 중심의 농정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많은 정책들이 이전의 성장주의, 개발주의 농정을 답습하고, 농민과 농촌사회의 지속성보다는 산업으로서의 농업, 시장으로서의 농업에 중심을 두고 있다. 농촌감수성은 배제된 채,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 농민이 아닌 기업과 도시자본을 위한 농정이 반복된다. 어떤 것은 과연 이게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인지, 산업자원부의 정책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농민에 대한 배려를 찾을 수가 없다.

가끔씩 놀라는 것은, 관료들과 연구자들이 중요한 현안에 대해 입장을 말 할 때 하나 같이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는 것이다. 공직자나 연구자들이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마치 그것이 내 일이 아닌 양, 기존 정해진 입장이나 계량적인 데이터만 제시 할 뿐, 적극적인 입장을 내지 않는다. 필요한 자료는 내놓고, 불리한 검증은 피한다. 여기서 농민에 대한 배려나 농촌감수성은 찾을 길이 없다.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예전처럼 관료들이 농민단체와 갑론을박하면서 나름 소통하던 장면은 보기 드물다. 협치의 기본은 소통이지만, 코로나 19 팬데믹을 핑계로 소통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이들에게 높은 수준의 농촌감수성은 현실적으로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농림축산식품부와 산하기관, 연구기관 종사자들에게 농민은 궁극적으로 정책고객이고 농촌은 그 현장이다. 농업, 농촌, 농민이 없다면 이들의 존재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한 번 쯤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농촌 현장을 이해하려 하고, 현장 고객인 농민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기만 해도 농정은 훨씬 더 농민과 국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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