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모 / 전북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농어민신문] 

‘농산촌을 접자’라는 철수론 담고
급진적 제도 리셋, 더 나아가 포기론까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 냉철히 따져봐야

인구감소가 지방소멸을 재촉할 것이라는 걱정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른바 일본의 ‘마쓰다 보고서’에 근거한 ‘지방 소멸론’이다. 우리나라(한국고용정보원)도 이 방식으로 매년 소멸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방식은 간단하다. 65세 이상의 인구와 30세 미만 가임여성 비율로 지수를 판정한다. 이 방식대로 하면 2020년 전국의 115개 시‧군‧구가 위기 지역이다. 지금대로라면 농산촌 지역이 기능을 상실할 것이라는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일본의 의식 있는 연구자들은 마쓰다 보고서가 여러 불온한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폐한 농산촌 지역 여건에도 불구하고 국가 재정이 제한되어 있으니, 농산촌 지역에서 철수하거나, 기업 등이 농업에 진출하고 지역을 개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목적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위기를 이윤의 기회로 포착하는 ‘재난 자본주의’의 그림자를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오다기리 토쿠미 교수는 ‘농산촌은 소멸하지 않는다’는 책에서 일본 정부와 재계가 2013년부터 ‘물 흐르듯 전개’해온 정책화 과정에 다음과 같은 의심을 갖고 비판하고 있다.

첫째, 지방 소멸론은 소멸을 필연으로 보고, 농산촌을 ‘접을’ 필요가 있다는 ‘농산촌 철수론’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지방소멸 위험을 말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정책을 고착화한다는 것이다. 투자를 집중해야 할 지방거점도시 이외의 농산촌 지역에게는 가히 ‘철퇴의 권고’라 할 수 있다. 이는 ‘농산촌 불필요론’보다 한참을 더 나간 것이다. 소멸해가는 지역을 국토의 가장자리부터 접자는 정책을 제기하는 것일지 모른다.

둘째, ‘농산촌 철수론’은 과격한 방식인 ‘제도 리셋’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개성을 살린 자립 가능한 지방을 만든다’는 미명하에 도시권 및 지방권의 행정체계, 의회제도, 시민사회의 거버넌스 형태 등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껏 유지해온 참여 민주주의 과정과 단절되거나 무관한 상황이 연출되기 십상일 것이다. 지방소멸이라는 충격에 통폐합하고 제도를 급진적으로 리셋하는 ‘마법의 지팡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셋째, 지방소멸 위기로 지목된 지역에는 ‘어떻게 해도 없어진다면 포기하자’는 ‘농산촌 포기론’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많은 지역에서 지역 만들기나 귀농‧귀촌 등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부침을 반복하고 있다. ‘군수님, 우리 지역이 없어진다고 말하면, 저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부모님으로부터 어쩔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어느 중학생의 자조섞인 물음은 부작용이 지역에 소용돌이 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넷째,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목으로 거점도시를 ‘인구 댐’으로 만들고, ‘압축도시(콤팩트시티)’로 축소‧정리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농산촌 철수론과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고 생활권으로 묶어 내는 도시-농산촌 연계는 주요 고려사항이 아니다. 무엇보다 압축도시는 재정 효율화를 명분으로 ‘주변부’를 잘라 버리려는 것이다. 유럽의 콤팩트시티는 도시 내부의 재생전략인 점을 고려할 때, 주의 깊게 논의하고 대응해야 한다.

‘지방소멸’로 불리는 위기감이 ‘농산촌 철수론, 농산촌 포기론, 제도 리셋론’ 등과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인지 우리는 좀 더 냉철해져야 한다. 과연 지역은 ‘소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 농산촌으로의 인구 이동이 사회적인 큰 흐름이 되고 있다. 당장 눈에 띄는 활력의 양적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청년들이 농산촌으로 이주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 ‘사회혁신’의 마중물이 되고 있다. 우리는 홍성군 장곡면과 함양군 서하 농촌유토피아 사례 등에서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지역 만들기의 강력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적 방식의 농업후계자를 넘어, 농산촌을 지켜가는 ‘농촌후계자’를 본다. 농산촌 지역을 지키는 절박한 주체이다.

다시 ‘지방 소멸론’으로 돌아가자. 지역을 지키며 농산촌 마을을 유지해온 주민들을 도시로 이주시키는 것이 답일까? 이는 농산촌이 ‘일상적’으로 담당해온 일과 활동을 상실하는 것을 뜻한다. 도시 내에는 더 큰 의료‧복지와 돌봄 비용은 물론 사회적 배제와 같은 사회문제가 커질 것이다.

백번을 양보하여 재정 효율성 논리를 따른다 해도 ‘농산촌 철수’가 저비용인지 반드시 실증된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인구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의 덫에서 헤매고 있는건 아닌지 물어야 한다. ‘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농산촌에서 철수한다,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도시에 집중한다’는 조건 반사적인 논의와 대책은 곤란하다. ‘농산촌 소멸’이라는 ‘의도’를 의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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