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현우 기자] 

시범사업 추진 부대
식자재 경쟁입찰 공고에
수입 농축산물 대거 포함
특정업체 제품 명시하기도

개편안 원점 재검토 여론

일부 군부대가 군 급식 식재료 조달체계를 경쟁체제로 전환한 후 특정 수입 국가·특정 대기업 제품을 세부적으로 명시, 군납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 현행 군 급식 식재료 조달체계를 경쟁체계로 개편할 경우 저가의 수입 농축산물과 대기업 식재료가 대거 군 급식 식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이와 관련 군인권센터는 특정업체(H사)를 식자재 공급 업체로 낙찰하기 위해 해당 업체의 공급 물품 목록을 인용해 입찰 공고를 냈다며 대기업과의 유착 정황을 포착했다고 24일 발표하고 경쟁 조달 시스템에 대한 원점 재검토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다.

국방부는 지난 7월 군 급식시스템을 다수의 공급자들이 참여하는 경쟁체계로 전환한다고 밝힌 후 육군 3개 대대와 해·공군 부대 등에 각기 다른 방식의 조달체계를 적용해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범사업 부대 중 한 곳인 육군 32사단의 A예하대대는 학교급식시스템상 eaT시스템을 이용한 경쟁조달방식을 적용했다. 또 다른 부대인 1사단 B예하대대는 식단을 먼저 편성하고 소요되는 식자재들을 일반경쟁 입찰로 납품받는 방식으로 시행했다.

두 부대는 9월 8일부터 10월 8일까지 1개월 동안 식재료를 공급할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지난 8월 13일부터 19일까지 식재료 구매 전자입찰 공고를 게시했다. 두 부대에서 공고한 전체 품목의 기초가격은 각각 1억4343만1230원으로, 납품대상은 농축수산물·가공식품 등 총 477개다.

문제는 입찰공고 상 현품설명서에 특정 국가, 특정 업체의 제품이 세세하게 명시됐다는 점이다. 실제 A예하대대가 공고한 현품설명서를 보면 돈육의 경우 사용용도에 따라 스페인(목심 냉동 스테이크용·삼겹살 냉동 수육용), 미국(삼겹살 냉동 수육용), 프랑스(슬라이스) 등 특정 국가를 세세하게 명시했다. 마늘쫑·시금치·청양고추·다진마늘·배추·얼갈이(중국)·주꾸미(베트남) 등 농산물·수산물도 수입 국가를 표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공식품은 제조업체를 명시한 경우도 있었다. 치킨강정가라아게는 브라질산·냉동·1㎏(22~32gX30~50개입)의 규격으로 C업체에서, 고춧가루는 중국·중품·세분·1㎏/봉의 규격으로 D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을 요구하는 식이다.

이에 농업계에서는 경쟁체제 전환 시 우려했던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국방부를 향한 비판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특정 업체, 특정 수입 국가를 콕 찍어서 표시한 것을 보면 특정 회사만 납품할 수 있는 제품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 공고문을 통해 국방부가 수입산 식재료를 사용하겠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고문을 보면 상품 등급이 없다. 품질보단 가격만 신경 쓰겠다는 의미다. 국방을 책임지는 군 장병들의 건강은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군인권센터는 24일 ‘국방부 군 급식 조달 체계 개편 시범사업, 대기업 유착 정황 포착’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군납 비리 정황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군인권센터는 “식단을 짜놓고 재료를 납품할 업체를 경쟁 입찰하면서 식자재 세부규격과 원산지, 생산업체를 일일이 세부적으로 명시한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입찰공고에 응찰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업체는 식자재 납품 업체인 대기업 H사다. 입찰공고에 올라온 식자재 품목 중 다수는 H사에서만 취급하는 것들이 있어 애초부터 H사를 식자재 공급 업체로 낙찰하기 위해 H사의 공급 물품 목록을 따다 공고를 낸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군인권센터는 “국방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경쟁 조달 방식은 군납비리 위험성이 상존한다”며 “국방부는 경쟁 조달을 통해 장병 건강과 선호도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대기업만 배를 불리고 장병들은 비리로 점철된 저렴한 냉동 수입산 음식을 먹는 방향으로 퇴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국방부는 경쟁 조달만 하면 급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해왔다”며 “국방부와 관계 부처는 고집을 꺾고 경쟁 조달 시스템에 대한 원점 재검토에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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