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지난 7월2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우리나라의 지위를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에서 그룹 B(선진국)로 변경했다. UNCTAD는 개도국의 산업화와 국제무역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UN 산하 정부간기구로, 무역 및 개발에 관한 정책 연구, 개도국 기술지원 등을 기능으로 한다. UNCTAD가 1964년 설립된 이후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외형적으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면서 예견된 일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0위이고,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다. 영국에서 개최된 선진 7개국 정상회담(G7)에 초청됐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가운데 BTS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코로나 펜데믹 사태 속에서도 K 방역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경제도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UN 기구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그만큼 높아진 국격을 반영한 일이다. 지정학적으로 초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분단국으로 변변한 자원도 없는 나라가 이만큼 온 것은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이룬 성과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의 축하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뭔가 개운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들의 삶이 과연 선진국 수준인가? 경제가 성장해서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농민 입장에서는 선진국을 자임하는 정부 행보를 수긍하기 어렵다. 현재 도시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율이 62%에 불과할 만큼 도농격차가 벌어져 있다. WTO 출범 이후 농업소득은 겨우 연간 1000만원대에서 횡보하면서 실질적으로는 감소했다. 낮은 식량자급률을 비롯해 농업을 선진국 수준이라 말할 수 없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한국은 그동안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농업분야의 경우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 왔지만, 트럼프의 압력에 따라 2019년 10월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WTO에서 농업분야 개도국 포기는 향후 농업을 대외적으로 지켜줄 최후 수단을 스스로 폐기한 것이다. WTO 협정에서 개도국은 선진국보다 농산물 관세를 덜 감축하거나 관세감축 면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차기 WTO 협상에서 선진국 입장이 되면 농산물의 관세를 대폭 깎아야 하고, 농업보조금도 줄여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개도국 지위 포기는 농촌소멸 위기를 가속화 시킬 것이다.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GDP나 국민소득 같은 경제력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삶의 질, 복지, 생활수준, 행복지수, 균형발전 등이 같이 따라줘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성장에 올인한 결과 소득은 3만 달러를 넘었지만, 국민들은 소득에 비해 행복하지 못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낮은 행복지수를 반증한다. 

이런 현상은 경제 성장 외에 다른 중요한 가치를 간과한 데서 나온 결과다. 성장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해체시킨 결과다. 코로나 팬데믹은 성장과 개발주의로 인한 수도권 집중, 환경파괴, 농촌파괴에 대한 경고다.

이제 성찰해야 한다. 이제는 성장의 노예가 되어 경쟁만 하고 살 것이 아니라 상생하며 행복한 사회로 거듭나야 한다. 환경을 살리고, 농촌을 살리고,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경제성장에 취해 1996년 OECD에 가입하고 성급하게 선진국 행세를 하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은 경험도 있다.

그동안의 경제 성장은 바로 농업, 농촌, 농민의 희생 위에서 이룬 것이다. 제대로 된 선진국 치고 자국 농민을 보호하고, 아름다운 농촌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없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자임하려면 더 이상 농민소외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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