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고성진 기자] 

18일 아침, 태백 매봉산에서 고랭지배추 출하 작업이 한창이다. 궂은 비가 내리면서 자욱하게 깔린 안개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배추망에 배추를 담고 있다. 
18일 아침, 태백 매봉산에서 고랭지배추 출하 작업이 한창이다. 궂은 비가 내리면서 자욱하게 깔린 안개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배추망에 배추를 담고 있다. 

강원도 일대 고랭지배추 출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50일이 넘는 장마로 인해 생산량이 줄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작황은 평년 이상을 회복할 것으로 관측된다. 작황이 나아졌지만, 산지 표정은 밝지 않다. 인건비와 자재 등 투입 생산비는 지난해보다 더 늘었는데, 시세 전망을 낙관할 수 없어서다. 8월 말과 9월 초가 출하 물량이 크게 늘어나는 시기인데, 소비 심리는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바짝’ 얼어붙어 있어 최대 성수기인 추석을 앞두고 시세 하락폭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고랭지배추 주산지인 태백 매봉산·귀네미, 강릉 안반데기 일대를 찾아 현장 상황을 살펴봤다.

 ◆산지 상황은 

올해 장마영향 크지 않아
생육 전반적 양호하지만
매봉산 일대 ‘황화병’ 습격
최근 2주 새 폭염·비 ‘변수’
생산량 평년수준 웃돌 듯

올해 고랭지배추 작황은 평년 수준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산지에서는 지난해보다 투입한 생산비는 더 많지만, 시세 전망이 좋지 않아 걱정스런 표정이 감지되고 있다. 사진은 17일 찾은 안반데기 일대의 배추밭.
올해 고랭지배추 작황은 평년 수준을 웃돌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산지에서는 지난해보다 투입한 생산비는 더 많지만, 시세 전망이 좋지 않아 걱정스런 표정이 감지되고 있다. 사진은 17일 찾은 안반데기 일대의 배추밭.

이달 중순부터 매봉산과 안반데기 일대의 물량들이 출하되기 시작했다. 주산지에서 만난 고랭지배추 생산·유통 관계자들은 올해 작황이 평균적으로 호조를 띠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지난해 물량이 없어 시세가 좋았던 탓에 올해 재배 면적이 많이 늘어난 데다 장마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작황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이 일대에 비가 열흘간 지속되면서 생육 막바지 품위와 출하 작업에 지장을 미치고 있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출하 작업이 한창인 매봉산 일대가 폭염에 이어 최근까지 이어진 비로 인한 ‘꿀통’·‘황화병’ 피해가 커 산지에서 버려지는 물량들이 많은 상황이다. ‘꿀통’은 배추가 속에 물을 머금고 있다가 햇볕을 많이 받게 될 경우 속이 녹아버리는 현상이다. ‘황화병’도 배추 전체가 누렇게 변하는 바이러스성 병해다.  

이정만 태백매봉산마을 촌장은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2주 전까지만 해도 매봉산 작황이 좋았는데, 최근 10~20일 사이에 폭염에 이어 비가 지속되면서 배추가 많이 망가졌다”고 전했다. 산지를 둘러본 17~19일도 내내 비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매봉산에서 배추 재배·유통을 하는 노성상 씨는 “최근 비가 열흘간 내리면서 바이러스성 병인 ‘황화병’과 ‘꿀통’, 연작 피해 등으로 20~30% 물량들이 포전에서 버려져 수급 조절이 자동적으로 돼 버린 상황”이라며 “하지만 올해 물량은 평년에 비해 5~10% 많다고 본다. 소폭이지만 생산 자체는 과잉”이라고 말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매봉산 전체 재배 면적은 91ha(약 27만평) 정도다. 

강릉 안반데기 일대의 상황은 이보다는 양호했지만, 향후 피해 확산 가능성을 지켜보고 있다. 안반데기는 국내 단일 단지로는 고랭지배추 면적이 가장 넓은 곳(약 45만평)이다. 

지난 15일부터 안반데기 물량을 시작으로 9월 초까지 출하 작업을 진행하는 강릉농협 고랭지채소사업소의 김규현 소장은 “지역별로 다르지만 평년 출하 물량은 재배 물량의 80% 정도 되는데, 병충해 등으로 감모율이 20% 정도 나온다”라며 “올해는 ‘꿀통’ 물량들이 많아지고 있고 시세가 받쳐주지 못하면 출하 포기 물량들이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산지유통인인 김성규 한국농업유통법인강원연합회장은 “고랭지배추 재배면적은 평년보다 20% 이상 늘어난 것 같고, 8월 말과 9월 초순을 겨냥한 물량들이 많다”면서 “하지만 실제 출하량으로 이어질지는 기상 상황 등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꿀통’ 물량들이 20~30% 정도 나타나면서 출하되지 못하고 산지에서 버려지고 있다”고 했다.

일부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생산 물량은 평년보다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산지 관계자들의 예상에 앞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8월 중하순 출하물량이 평년 대비 9%, 지난해 대비 15% 각각 증가할 것이라고 13일 관측 속보를 통해 발표했다. 앞선 자료에서는 9월 출하 물량도 평년보다 4.9%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산지에서는 인건비와 자재비 등이 지난해보다 비싸져 지출 부담이 큰데, 이를 만회할 시세가 나오지 못할까 걱정스러운 분위기다.

노성상 씨는 “작업비(인건비)가 차량 1대당 65만~70만원이다. 차로 온 인력들이 서로 나누는 방식인데, 지난해는 50만원 했다. 30~40% 이상 오른 셈”이라며 “배추 망도 지난해 500장당 8만5000원이었는데, 올해는 9만원으로 올랐다. 생산비는 지난해보다 더 많이 들어갔는데, 시세 전망이 좋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시세 전망은 

17일 강릉 안반데기 일대의 배추밭. 
17일 강릉 안반데기 일대의 배추밭. 

재배면적 증가로 과잉 우려
추석 대목장 시세 전망 흐림
코로나로 김치 소비 줄면서
배추 수요 절벽반등세 감감

정부는 물가안정만 내세워
현장 농가 “해도 너무해” 불만

aT 도매유통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 거래된 고랭지배추의 초도 물량은 최근 3년간 올해가 가장 적은 상황이다. 7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한 달간 약 5238톤. 같은 기간 2020년 6441톤, 2019년 7525톤보다 적다. 기후 변화와 시세 추이에 따라 출하시기를 늦추는 경향이 있어 앞으로 나올 출하 물량들이 더 많다는 얘기다. 7월 중하순부터 9월 추석 이후까지 출하되는 고랭지배추의 평년 생산량이 약 39만톤 정도(2020년 36만톤)인 것을 감안하면, 올해 ‘시세장’은 이제 막이 오른 셈이다.

18일 가락동 도매시장에서 특품 10㎏ 기준 최고 1만3200원 경매가가 찍히기도 했지만, 이는 비 때문에 출하 작업이 미뤄지며 물량 부족으로 나타난 일시적인 현상으로 전반적인 시세 흐름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처지고 있다. 도매시장으로 출하하는 산지 농민들은 상품 10㎏ 기준 최소 8000~9000원 정도의 시세가 나와야 생산비를 건질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20일 가락시장 경매가는 상품 평균 6512원으로, 전년 1만7953원·전일 8380원보다 낮다.

시세 반등을 바라는 산지의 기대가 크지만, 부정적인 요인이 도드라지는 상황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대표적으로 ‘과잉 우려’가 있다. 지난해 고랭지 일대에 눈에 띄지 않았던, 이른바 ‘평바닥’ 배추 물량까지 보이는 등 재배 면적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점이 지목되고 있다.

18~19일 산지에서 동행한 오현석 대아청과 영업1팀장(경매사)은 “지난해 태백 고랭지 일대에 보이지 않던 ‘평바닥’ 배추가 심어진 곳들이 제법 많다. 작황 역시 평년보다 좋아 출하 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대 성수기인 추석 대목장을 앞두고 시세 전망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18일 아침, 매봉산 고랭지배추 출하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이 끝난 포전에 '황화병', '꿀통' 피해를 입은 배추 물량이 버려져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18일 아침, 매봉산 고랭지배추 출하작업이 한창이다. 작업이 끝난 포전에 '황화병', '꿀통' 피해를 입은 배추 물량이 버려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수요 절벽’ 현상도 시세 전망을 어둡게 보는 이유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수도권, 비수도권은 3단계)가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모임과 회식, 나들이 등이 축소되고 올해 추석에도 이동제한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수요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는 분석이다.

김명배 대아청과 기획팀장은 “거리두기 4단계가 장기화되면서 모임과 회식 등이 줄어 김치 소비와 배추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올 추석도 방역 차원의 이동제한 규제에 따라 김장 수요가 크게 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여기에 더해 최근 중국산 ‘알몸’ 배추 사태 여파로 중국산은 물론 국내산 배추김치 소비도 줄어드는 등 악재가 겹쳤다”고 우려했다.

오현석 팀장은 “가락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배추 물량이 추석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1일 300~400톤 정도다. 그런데 현재 350톤 물량도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며 “추석을 앞둔 9월 시세가 중요한데, 생각하기는 싫지만 최악의 경우 10㎏ 상품 기준 5000~6000원선을 지지하기 어려울 수 있을 정도의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굳은 표정으로 얘기했다. 
 

추석 ‘물가 안정’ 규제“왜 농산물만”

18일 매봉산 정상, 바람의 언덕 인근 배추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18일 매봉산 바람의 언덕 인근 배추밭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하 작업을 하고 있다. 

19일 강릉 안반데기 마을에서 만난 배추 농가들은 최근 추석을 앞두고 정부 당국이 팔을 걷어붙이고 ‘물가 안정’을 강제하고 나선 데 대한 반감과 울분이 컸다.

이곳에서 배추를 재배하는 김시갑 강원지역 무·배추 공동출하회연합회장(전국배추생산자회 수석부회장)은 “요즘 농민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 라면 등 공산품 가격 인상은 규제하지 않으면서 유독 농산물에 대해서만 정부가 강제적으로 수급과 가격에 관여하는 것인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기획재정부가 앞장서 물가를 단속하고 있는데, 도대체 농림축산식품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농민을 위하지 않는 농식품부는 해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시갑 회장은 “생산이 안정돼야 수급이 안정되는 것이지 생산 부분에 대한 투자나 관심 없이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오른 농산물 가격을 낮추겠다고 혈안이 돼서는 안 된다”면서 “2010년 배추 파동 이후 정부가 생산 현장 상황에 맞지 않게 인위적으로 수급에 개입하면서 배추 시세를 소비자 위주의 중저가에 맞춰 생산 농가들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다. 차라리 정부가 농산물 가격 관리에서 손을 떼야 자동적으로 수급 조절이 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부터 유독 ‘금대파’, ‘금시금치’, ‘금상추’, ‘금사과’ 등 농산물 가격 상승만을 자극적으로 부각시키는 언론들의 보도 ‘행렬’에 대해서도 분통이다. 

한 농민은 “여름에 시금치 가격이 비싸다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는데, 시금치 재배가 여름에 쉽지 않고 일부 지역에서만 이뤄지니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인데, 이런 내용을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고 자극적으로만 다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추 가격이 올라가면, ‘상추에 고기를 싸 먹는 것이 아니라 고기에 상추를 싸 먹는다’는 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농산물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오히려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폐해를 낳고 있다”면서 “농민들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려고 생산 물량 중 일부만 출하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태백·강릉=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강원 고랭지배추 시장성 현장평가

강원도농업기술원이 18일 태백 귀네미 시험포장 재배지에서 강원 고랭지배추 시장성 현장평가회를 열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이 18일 태백 귀네미 시험포장 재배지에서 강원 고랭지배추 시장성 현장평가회를 열었다. 

강원도농업기술원이 18일 태백 귀네미 시험포장 재배지에서 강원 고랭지배추 시장성 현장평가회를 열었다.

이 자리는 고랭지 주요 배추품종(10개)의 시장성에 대해 유통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시장에서 요구하는 고랭지배추 품종 연구를 파악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가락동도매시장법인 대아청과, 서울청과 및 원주 합동청과 관계자, 재배농업인, 관련 공무원들이 참석해 품종의 시장성 평가와 함께 고랭지배추의 생산 기반과 소비 확대 방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최종태 강원도농업기술원 원장은 “앞으로도 고랭지배추의 안정생산과 시장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태백=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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