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안형준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새롭게 바뀐 김치의 중국어 표기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글이 게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새롭게 바뀐 김치의 중국어 표기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글이 게시됐다.

문체부·농식품부, 외국어 번역·표기법 개정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철회 청원' 등장
“김치는 고유명사신사대주의적 발상” 지적

정부가 공공영역에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기(辛奇)로 변경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가 이미 세계 각국에 ‘김치’가 고유 명사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만 야기한다며 전면적인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2일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기로 바꾼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발표를 철회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게시됐다. 청원 작성자는 김병기 전북대학교 명예교수로, 17일 기준 청원에 약 1만1700명이 참여했다. 

문체부와 농식품부는 지난해 말 김치가 ‘파오차이’로 번역되고 중국의 문화공정 등의 논란이 일자 문화의 고유성을 살려 번역하고 표기하기 위해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기(중국어 발음 신치)’로 변경하는 것 등의 내용을 담은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개정안’을 마련하고 7월 22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김병기 교수는 정부의 이번 개정안 시행과 관련해 지금까지 김치로 해외에 홍보를 해온 상황에서 공공영역의 중국어 표기가 ‘신기’로 바뀌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김치의 고유성을 퇴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더불어 한자의 경우 한·중·일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문자로, 각 나라마다 독자적인 발음이 존재하는데 이를 따르지 않고 ‘신기’로 변경한 것은 중국만을 의식한 전형적인 졸속 조치라는 주장이다. 

이에 김병기 교수는 문체부가 시행한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개정안’이 전면 철회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중국에서 ‘한궈 파오차이’라는 용어를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파오차이와 김치를 구분하고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굳이 ‘신기’라는 기괴한 말을 만들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과거에 서울의 중국문자 표기를 수이(首爾)로 표기해 중국에 제공하자 서울은 ‘수이시’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됐다”라며 “김치를 신기로 바꾸는 것은 이 같은 허무맹랑한 실수를 다시 범하는 처사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리의 고유 명사 김치를 버리고 ‘신기’라는 말을 지어 중국에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스스로 버리는 어리석은 처사이자 망국적인 신사대주의적 발상이다”라며 “문체부의 이번 조치는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는 충분한 기관 간 협의와 전문가 검토를 거쳐 개정안을 만들고 시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으며, 이번 개정안 시행은 불필요한 오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김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식품인데 문화공정 등으로 인해 외교적으로 민감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라며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관계 기관과 전문가들 간 충분한 협의를 거쳐 국내 공공영역에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신기’라고 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기라는 표기는 국가와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수출업체는 중국의 규정에 따라 표기를 사용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안형준 기자 ahn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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