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일죽면 일대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고진택 한농연 안성시연합회장이 수확을 못해 풀과 얼갈이가 뒤섞인 하우스 밭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고진택 한농연 안성시연합회장이 수확을 못해 풀과 얼갈이가 뒤섞인 하우스 밭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생육 좋고 시세 높은데
최악 인력난에 수확 포기
멀쩡한 밭 갈아엎기도
“차라리 씨 뿌리지 말 걸”

 

농민이 된 뒤 수없이 밭을 갈아엎어 봤다. 출하를 안 하는 게 나을 정도로 가격이 폭락하거나, 집중호우로 하우스가 잠겨서, 어느 해는 갑자기 병충해가 덮쳐 눈물을 머금고 밭을 갈아엎어야 했다. 하지만 30년 가까이 농민으로 살면서 이런 피눈물 나는 일을 겪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작물이 잘 자라고 시세도 고공행진’인데 작목을 폐기하는 상황에 처할 줄이야. 방송에선 연일 ‘최악의 실업난’이라고 하는데, 농촌은 지금 ‘최악의 인력난’에 신음하며 높은 시세에도 수확을 못하는 참담한 지경에 놓여있다. 

6일 찾은 국내 주요 시설채소 산지인 경기 안성시 일죽면 일대. 높은 시세와 양호한 생육이 맞물려 풍년가가 울려 퍼졌어야 할 이곳의 농민들은 “차라리 낮은 시세가 더 속 편할 것 같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이날 얼갈이채소 하우스에서 만난 고진택 한국농업경영인 안성시연합회장은 “지난달 얼갈이 4동과 고수 5동을 갈아엎었고, 어제도 3동을 그렇게 했다”며 “시세가 어느 해보다 잘 나오고 얼갈이 품위도 좋은데 작물을 수확 못해 갈아엎거나 저기 보이는 것처럼 풀이 무성히 자라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게 말이 되나, 지금 농촌의 인력난은 재앙 수준”이라고 전했다. 

실제 고 회장이 얼갈이 4동과 고수 5동의 하우스를 갈아엎었던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이들 품목 시세는 어느 해보다 좋았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지난달 얼갈이 평균 도매가는 6414원(4kg 상품)으로 최근 5년간 6월 평균 얼갈이 가격 4450원을 크게 웃돌았다. 7월 들어서도 이 같은 시세 차는 이어지고 있다. 얼갈이뿐만 아니라 고수, 상추, 로메인 등 다수의 시설채소가 비교적 양호한 가격대가 형성돼 있다.  

고 회장은 “얼갈이는 여름이 제철로 봄여름 얻은 소득으로 한 해 농사를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양호한 시세에도 수확을 못해 풀이 무성해지는 하우스를 볼 수 없어 밭을 갈아엎는 심정은 정말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곳의 시설채소 농가인 조주연 씨도 “3월에 인력 신청을 해 당연히 수확기인 6~7월이면 인력이 들어올 줄 알았다”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씨를 뿌리지 않는 게 나았을 뻔 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지금 생산량의 50%도 채 수확을 못한다. 여기에 박스값을 비롯해 자재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며 “타산이 맞지 않아 농사를 접어야 할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인력난은 ‘오늘’을 넘어 ‘내일’의 문제까지 불러올 수 있다고 농가들은 우려한다. 

고 회장은 “풀이 너무 많이 자라도 어떻게 할 수 없다. 저렇게 되면 풀이 씨를 뿌려 다음 작기엔 풀이 더 무성해질 수밖에 없고, 작목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된다”며 “악순환이 이어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농민들은 농촌 인력난 해결은 농민만을 위한 게 아니기에 범정부가 정말 나서야 할 때라고, 적어도 대책을 만들고 있다는 신호는 보내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 씨는 “지금 인력난으로 물량을 출하할 수 없어 몇몇 품목의 가격이 높은 상황이다. 그런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농산물 가격이 높다고만 떠들고 있다”며 “농촌 인력난을 해결하는 건 농민만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고 회장은 “내국인이라도 써야 해 고용센터에 신청을 하고 왔는데, 거기서 구하기 힘들 거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농장을 가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며 “정말 정부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귀농을 원하는 이들에게 농촌에서 일을 하면 교육비 명목으로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등 외국인에 의존할 게 아니라 내국인을 고용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적어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신호는 산지에 보내줘야 한다”고 밝혔다. 

김경욱·주현주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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