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형세다. 코로나 19 백신이 접종되면서 팬데믹의 긴 터널에 출구가 보이는 듯싶더니, 이번에는 국제적인 곡물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 ‘애그플레이션’과 식량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어디쯤 와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연간 곡물 수요량 2000만톤 중 70% 이상인 1600만톤 이상을 수입하는 세계 5대 식량수입국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급률은 사료용을 제외한 식량자급률은 45.8%,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에 불과하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네덜란드, 이스라엘만 한국보다 낮을 뿐이다.

자급률이란 한 나라의 국내 농업생산이 국내 식량 소비를 어느 정도 충당하는지 공급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식량위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급률은 그 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곡물자급률은 1980년 56%에서 2019년 21%로, 식량자급률은 69.6%에서 45.8%로 감소했다. 쌀을 제외한 기초 곡물의 자급률은 밀 0.5%, 옥수수 0.7%, 콩 6.6%에 불과하다. 100%대를 유지하던 쌀 자급률도 2010년 104.5%에서 2019년 92.1%로 12.4% 포인트 감소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11일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식량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로, 콩은 45%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시점에서 대통령이 식량안보를 강조한 것은 시의 적절한 일이고, 농림축산식품부는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노력을 탐탁찮게 여기는 시각이 존재한다. 농산업계 일각에서는 ‘세계식량안보지수(Global Food Security Index(GFSI)’를 인용해 자급률 정책에 회의적인 논지를 편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그룹이 매년 발표하는 이 지수의 2019년 기준 113개 국가 중 1위는 싱가포르이고, 우리나라는 29위다. 땅도 거의 없는 나라인 싱가포르가 1위이고, 우리나라도 농업 규모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다.

농경지가 거의 없는 싱가포르가 왜 1위인지 살펴보고, 과도한 정책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식량안보는 전쟁이나 기후위기를 대비해서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고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식량안보는 농경지가 많거나 자급률을 높인다고 지켜지지 않으며, 자급률을 높인다고 쌀처럼 밀과 콩에도 보조금을 주면 결국은 국민 부담”이라는 논리를 편다.

문제는 이 지수 자체가 국내 생산을 통한 먹거리의 자급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농산물의 자유무역을 통한 식량 조달이라는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지수라는 점이다. 이 지수는 각국의 경제적 부담능력, 공급능력, 식품 품질과 안전 등 3개 부문을 평가한다. 세부항목 중에는 ‘농산물 수입관세율’ 같은 것이 있고, 여기서 우리나라는 매우 낮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L박사는 “GFSI라는 것은 식량자급보다는 교역을 통한 접근성 중심이어서 농산물 수입국이 아니라 수출국 입장에서 작성되는 지수”라면서 “우리나라 같은 수입국 입장에서는 해외 조달보다는 국내 자급률 향상을 중심으로 식량안보를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농협경제연구소의 C 박사도 “싱가포르가 이 지수에 의한 순위가 1위이긴 하지만, 도시국가임에도 현재 10%인 식량자급률을 30%까지 올리겠다는 자체 식량생산 가속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해외조달보다 식량자급률 제고, 이를 위한 농지 확보를 우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식량안보지수란 것을 이해하려면 이것이 왜 만들어졌는지 그 배경을 볼 필요가 있다. 이코노미스트 그룹의 식량안보지수는 다름 아닌 초국적자본 ‘듀폰’의 위임으로 발표되는 것이다. 듀폰은 몬산토, 신젠타 같이 대표적인 바이오메이저로서, ADM, 카길, 드레퓌스, 붕게 등 곡물메이저와 함께 세계 농업시장을 지배하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라고 불리는 초국적 자본이다.

GMO를 포함한 종자와 농화학, 곡물시장을 장악한 이들 초국적 농식품복합체들은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이 식량위기에서 인류를 구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식량안보론을 전파해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무역기구(WTO)의 식량안보 개념도 이런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국의 식량자급을 중심으로 하는 본래의 의미에서 자유무역을 통한 식량 조달이라는 개념으로 변질된 것이다. 듀폰의 위임으로 발표되는 세계식량안보지수는 신자유주의적 식량안보론의 대표적 케이스다.

무역을 통한 식량조달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식량안보론은 지난 2007년~2012년까지 지속된 애그플레이션에 의한 식량위기에서 허구임이 증명된 바 있다. 당시 식량위기는 육류 소비 증가와 바이오연료 개발 등으로 수요는 증가한 반면 라니냐 등 기후재해로 곡물 수출국의 생산량이 급감, 수출제한 조치가 잇따르면서 촉발됐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곡물 투기 수요까지 가세, 식량위기를 부채질했다.

2010년 이후 아랍권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재스민 혁명’도 시작은 식량부족 때문이었다. 무역을 통한 조달은 식량안보를 담보하지 못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서도 각국이 앞 다퉈 식량수출을 제한하면서, 무역을 통한 식량조달이란 논리는 한계가 있음이 다시 증명됐다.

이렇게 식량안보 개념이 변질되면서 최근에는 식량안보(food security)라는 개념 대신 식량주권(food sovereignty) 개념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국가 존립의 기반인 식량 문제를 초국적 자본에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국민과 국가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차고 넘치는 교훈이 있는데도 국민의 식량을 해외에서 잘 조달하면 식량안보가 달성된다고 할 것인가? 곡물의 70% 이상을 수입하는 나라가 식량위기에 대비해 식량자급에 투자하는 게 과도하다는 말은, 전쟁에 대비해 국방 예산을 확보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식량안보지수 1위라는 것만 부각할 게 아니라 그런 싱가포르조차 식량자급률을 높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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