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요구되면서 국내 식품업계에서도 ‘소비기한’을 도입, 식품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다만 온도에 민감한 우유, 치즈 등은 소비자 보관 과정에서 식품 안전성에 문제가 될 수 있어 가공식품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32% 식품 생산·음식쓰레기가 원인

유통기한보다 긴 ‘소비기한’ OECD 37개국 등 이미 도입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30일~31일 P4G 서울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식품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도록 제도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연구결과에 따르면, 2018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는 식품 생산, 6%는 음식쓰레기가 원인이다. 이에 EU, 일본 등 OECD 37개국은 물론 동남아·아프리카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식품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소비기한을 도입했다. 

국내에서는 1985년부터 식품 유통기한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유통기한은 제품의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유통·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인 반면, 소비기한은 규정된 보관 조건에서 소비하면 안전에 이상이 없는 기한으로 유통기한보다 길다. 그간 식품산업계에선 식품 폐기량이 줄어드는 만큼 산업이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비기한 제도 도입에 소극적 자세를 취해 왔지만,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소비기한으로 기울어진 현재, 식품업계도 제도 도입을 위한 준비에 나서는 움직임이다.

 

김치·장류 등 발효식품업계 “소비 확대·재고관리도 용이”

이런 가운데 전통식품업계에서는 소비기한 도입으로 소비자가 식품을 섭취할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면, 국내산을 원료로 한 고품질의 전통식품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광범 한국전통가공식품협회장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먹어도 문제가 없는 식품을 쉽게 버리곤 한다. 하지만 소비기한이 도입돼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식품을 섭취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 입장에서 이왕 사는 거 가격이 좀 높더라도 국내산 원료를 사용한 전통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발효식품의 특징을 고려한 식품 소비가 수월해지고, 식품 재고 관리도 용이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이하연 대한민국김치협회장은 “발효식품인 김치는 유통기한이 지나도 김치는 상하는 게 아니고 발효가 되는 김치 본연의 특징이 있다”며 “소비기한이 표시된다면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김치를 버리는 경우를 방지하고, 업체 입장에서 재고 관리도 한층 용이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만, 식품 보관 온도에 대한 소비자 교육 등이 보완돼야 한다는 지적. 이하연 회장은 “김치는 보관 기간보다 온도가 더 중요하다.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쉽게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며 “김치는 한겨울 땅속 온도와 같은 섭씨 7도 내외에서 숙성시키면 더욱 맛이 좋아지며, 산소를 차단하고 늘 일정한 온도로 보관한다면 수개월간 그 맛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보관 온도에 대한 소비자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기후변화를 둘러싼 ‘2050 탄소중립’ 이행이 사회적인 화두로 대두되는 지금이 로컬푸드, 친환경가공식품, 제철 음식 등의 중요성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경진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 사무국장은 “식품원료를 수입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탄소가 발생되고 있다. 국내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환경을 고려한 로컬푸드, 친환경가공식품, 제철 음식 등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우유·치즈 등은 보관온도 민감 단계적 도입 필요 의견도

전문가들은 소비기한 제도는 이미 세계적인 기류이기에 도입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국내 냉장 유통 시스템을 고려해 식품 변질의 우려가 적은 가공식품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박미성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 식량자급률이 낮은데도 많은 양의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식량 안보와 탄소 중립을 위해서라도 소비기한 도입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온도에 민감한 우유, 치즈 등의 경우에는 제품 변질로 인한 안전성의 문제를 낙농·유업계에서 우려하고 있다. 온도에 크게 영향이 없는 가공식품 먼저 시행하고 이후 우유 등 품목을 점차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식품 변질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소비기한 도입 후 식품변질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원인이 제조업체의 문제인지, 유통 과정의 문제인지 소비자의 온도 관리의 문제인지 불명확할 가능성이 높아 소비자 입장에선 손해배상을 받는 게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며 “냉장온도와 상관없는 제품부터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행해서 표기를 하거나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제도를 시행해야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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