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기자] 

식약처 내년 1월부터 적용 계획

“햇물량-저장후 출하 나뉘는
농산물 유통시스템 이해 못해”
산지·시장서 성토 이어져 


내년부터 포장·유통되는 농산물에 생산연도를 표시하도록 농산물 표시기준을 강화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해 산지와 시장에서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작목 특성별로 햇물량과 저장 후 출하가 나뉘는 농산물 생산·저장·유통 시스템을 이해 못 하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고시한 ‘식품등의 표시기준 일부개정’을 통해 내년 1월부터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 등 ‘자연상태 식품’ 관련 한글 표시 기준이 강화된다. 기존엔 비닐랩 포장 등 내용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투명 포장 상품은 한글 표시를 생략할 수 있었지만 이번 개정 조치로 인해 내년 1월부턴 투명 포장이라 해도 직거래로 유통하지 않으면 ‘한글 표시’를 해야 한다.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농·임·수산물 중 직거래는 13%에 불과해 대부분의 농·임·수산물이 이번 개정 조치에 해당한다. 한글 표시 사항으론 내용물의 명칭 또는 제품명, 업소명(생산자, 생산자단체 등), 생산연도 등을 넣어야 해 산지나 포장 업계에서 표시사항 게재를 위한 포장 설비를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이에 따른 추가 공간이나 비용 등이 요구되고 이는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식약처는 이번 개정에서 기존 제조연월일(포장일 또는 생산연도)로만 표시해도 되는 사항도 생산연도나 생산연월일을 표시토록 강제했다. 이와 관련 식약처가 저장 품목 등 농산물 생산, 유통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 정책을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산 농산물은 저장 농산물을 제외하곤 대부분 당해 연도에 생산, 판매한다. 특히 쌈채류, 과채류, 버섯류 등의 다수 작목은 저장 기간이 매우 짧아 생산연도 표시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무, 배추, 감자, 사과, 배 등의 주요 작목은 저장 가능 품목인데, 이 중 사과를 예로 들면 사과는 가을철에 생산해 저장에 들어간 뒤 그다음 해 여름까지 출하가 이뤄진다. 즉 지금처럼 포장일만 적시하는 게 작목 특성상 더 합리적이고 소비력을 살리는 데에도 부합하다는 게 산지 주장이다. 일각에선 수입농산물은 생산연도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 수입산과 국내산의 역차별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한다.

식약처는 또 이번에 생산연도를 표시토록 하면서 지난해산과 올해산을 혼합해서 팔 수 없게 했다. 2021년 12월 31일 수확한 감귤과 2022년 1월 1일 수확한 감귤을 혼합해서 포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샐러드, 밀키트 등의 상품도 생산연도가 다르면 혼합 판매하지 못하게 된다. 저장과 햇물량의 혼합 판매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식약처는 농산물 유통 과정에서의 규제 강화를 추진하면서 산지는 물론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중수 농식품부 식생활소비급식진흥과 사무관은 “최근에서야 표시 기준 개정에 대한 내용을 인지하게 돼 파악 중이다. 농식품부에 알리지는 않아 식약처의 개정 취지를 잘 모르겠고, 왜 이렇게 개정을 했는지 의문스러운 면도 있다”며 “향후 산지, 유통업계 등의 현장 의견을 식약처에 전달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재은 식약처 식품표시광고정책과 연구관은 “일부 포장 제품에서 오래된 것들이 유통된다고 해 개정고시를 추진했다. 2019년 10월 행정예고를 했고 이때 특별한 의견이 들어온 게 없어 일련의 절차를 밟아 작년에 고시, 내년 1월부터 추진하려 했다”며 “고시가 돼서 어려운 면도 있지만 앞으로 현장에서 여러 의견을 준다면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식약처가 농산물 등을 ‘자연상태 식품’이란 애매모호한 단어로 포장해 식품 규제 안에 넣으려고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강용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장은 “농산물, 임산물, 수산물, 신선식품 등 산지와 소비지 모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어가 충분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연상태 식품’이란 애매모호한 말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며 “농가들은 조만간 식약처가 농산물도 가공식품처럼 유통기한을 넣으려고 하는 등 농산물을 가공품처럼 대하고 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농·임·축·수산물은 농식품부 산하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의 원산지 표시 관리에 관한 법률, 친환경농업육성법 등에 따라 관리되고 있어, 굳이 식약처와의 이원화로 행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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