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어떻게 농사졌는지 모르겠어. 솔직히 말해 요즘은 사람이 농사짓나? 다 농기계가 사람을 대신하지. 언젠가는 농기계 혼자 움직이면서 일할 날이 올지도 몰라”라고 말하는 올해 나이 56세인 경기도 김포의 조성구 농민. 그가 태어난 곳은 수원이지만 드넓은 김포벌에 지난 67년 대농의 꿈을 안고 이주해 현재까지 벼농사를 짓고 있다. 지금은 논면적만 6만평이고 4조식 산물형 콤바인을 비롯해 65마력 트랙터, 6조식 승용이앙기, 곡물건조기 2대, 방제기 그리고 지게차까지 웬만한 농기계는 다가지고 있을 정도로 대농으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그는 한국농업기계화의 발전과정을 현장에서 피부로 함께 한 장본인인 셈이다. 4천평의 논을 마련해 처음 농사를 시작한 조씨는 30여년 전의 농촌 풍경을 회상하며 말한다. “그 시절에는 말이야 농기계가 어디 있어. 소가 곧 농기계야. 그것도 1백호가 넘는 집 중에서 몇몇 집만 가지고 있었어. 소가 모든 일을 다해줬으니 선망의 대상이었지” 그 당시만 해도 소는 논을 갈고 써레질 하고 수확한 곡물을 운반하는 등 요즘의 트랙터를 대신해 농사에는 없어서는 안될 재산목록 1호였다. 조씨는 또 “모심기 전에 지금의 로터리인 거스레와 곱슬레를 소에 매달아 논을 골랐지. 어디 지금처럼 논이 고르게 써레작업이 됐겠어. 그래도 온동네 일을 소 몇마리가 다해냈지”하며 너털웃음을 크게 짓는다. 그는 또 “가을 수확철이 되면 베어 논 벼를 마당에 있는 인력 탈곡기까지 날라다 주었다”며 소와 지내는 시간이 제일 많았다고 회상한다.우경이 시작된 이래 그 당시까지 사람의 힘 말고는 농사일을 돕는 것은 소가 전부였다. 물론 경운기가 생산되고 있었긴 하지만 경운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요즘 고급승용차를 사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소가 들판을 주름잡았던 60년대가 지나가고 70년대 들어서는 경운기가 농촌에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농업도 기계화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아마 72년으로 기억되는데 우리 동네에서 내가 처음으로 경운기를 보유하게 됐지. 지금은 경운기들이 디젤엔진을 쓰고 있지만 그때는 등유를 사용하는 엔진을 단 것이었고 모양도 참 투박했어”라며 그때의 경운기를 설명한다. 경운기는 하루에 일하는 양이 소가 하는 것 두배 이상을 해내면서 경운기를 가진 농민들은 자기 일을 끝내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척척해내게 된다. “경운기를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구입했는데 일 좀 도와달라는 사람들이 매일매일 찾아왔어”, “경운기는 말이야 논을 갈고 써레질하고, 양수기만 부착하면 물도 퍼주고 방제작업도 하고 또한 가을에는 탈곡작업도 해주는 팔방미인이었지 뭐”, “그것 뿐인줄 알아? 장에 가거나 어디 멀리 외출할 일이 생기면 자가용 역할도 해줬어. 동네사람 모두 태우고…” 사실 그랬다. 경운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못하는 일이 없었다. 농업기계화의 견인차는 경운기였음이 분명하다. 70년대 후반에 걸쳐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 농촌도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된다. 80년대 전에는 모내기와 벼 베는 작업을 전부 인력에 의존해 왔는데 이시기에 들어서 이앙기와 바인더 그리고 이보다 좀 늦게 콤바인이 등장하게 된 것. 조씨는 “지금은 모심기부터 수확까지 한두 사람이면 가능하지만 이앙기와 콤바인이 있기 전에는 모내기하는 날이면 한 30명이 논에 들어가 몇날 며칠을 하곤 했지. 한 동네가 모내기가 끝나려면 한달하고도 보름이나 걸렸어”라며 이앙기가 도입되기 전의 상황을 설명한다. “하지만 말이야 이앙기가 들어오고 나서부턴 이런 광경이 사라졌지. 이앙기 한 대가 30명의 몫을 해내고도 시간이 남아 더하니까. 요즘은 1주일이면 모내기가 다 끝나.” 이것뿐만 아니라 이앙기와 함께 바인더라는 벼를 베고 묶어주기만 하는 수확용 기계가 잠시 등장했다가 사라지게 된다. 탈곡기능이 없는 절름발이 수확용기계였기 때문에. 그러나 벼 베는 것부터 탈곡까지 해서 포대에 담아주는 콤바인은 다르다. 똑같은 형태에서 몸집이 커지고 기능이 다양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콤바인 보급이 확대되면서 트랙터도 늘어나게 된다.금이야 4조식 콤바인에 그것도 포대에 담는 것과 산물형 등 여러 모델이 있지만 80년대 초만 해도 포대로 담는 2조식 혹은 3조식이 전부였어. 또 콤바인이 들어오면서 트랙터도 덩달아 늘더군. 요즘에는 웬만한 농민들은 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소유하고 있어” 조씨는 예전에 5년은 걸려야 할 수 있을 만한 양의 일을 각종 농기계의 보급과 성능이 좋아져 단 1년이면 충분한 것 같다고 한다. 이처럼 소에서 시작해 트랙터, 콤바인까지 수없이 많은 발전을 거듭해 온 농업기계화는 부족한 농촌인력을 채워주는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난 요즘 발에 흙 안 묻히고 일해. 시원한 에어콘 틀고 음악을 들으면서 일하지. 옛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야. 앞으로 30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또 어떤 기발한 농기계가 나올지도 궁금하고”라며 지난가을 벼 수확작업에 고생한 콤바인과 트랙터가 대견한 듯 다독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흙내음이 물씬 풍긴다. 정문기·이병성 기자
이병성leebs@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