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관료와 정치인을 비롯한 가진 자들의 투기 의혹이 연일 불거지고, 투기를 부르는 농지제도와 무책임한 관리의 문제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LH만의 비리가 아니라 헌법상 경자유전의 원칙을 무시하고 투기를 조장해온 제도와 행정, 사회적 적폐의 단면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LH 직원 땅 투기 문제 핵심은 허술한 농지취득 및 농지관리 실태입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진행 중이다. 청원인은 최근 벌어진 광명.시흥지구 내 98%이상의 농지에 LH공사 직원들이 투기한 결과를 보면서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청원은 이 문제의 핵심이 결국 “농민이 아닌 자가 어떻게 농지를 취득해서 농사를 경작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는지”라고 지목했다. 즉, 농지취득, 경작사실확인서, 농업경영계획서 등이 도대체 어떻게 비농민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기보다는 ‘비농민의 농지소유와 농지이용 문제’에 방점을 찍고 전수실태조사와 함께 법률과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이다.

농지제도 문란은 농지개혁 이후 역대 정부 이래 계속돼 온 적폐다. 이번 LH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에 반해 아무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농지제도를 개악해 온데서 비롯된 필연적 결과이다. 당장 LH 직원들의 농지 투기에 대한 조사와 책임 규명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투기의 온상을 만들어 주고 있는 농지제도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 단지 선거판의 정치적 쟁점으로 이용하거나 면피에 급급하다가, 연루된 일부에게만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넘어가려 말고, 차제에 농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문제가 불거지자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LH 투기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농지에 대한 투기를 방지하기 위해 농지취득 사전, 사후 관리를 철저하고 엄격하게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내용은 농업경영계획서에 대한 철저한 심사와 함께 투기우려지역은 신설되는 지자체 농지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등 농지취득심사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또 지역농업인, 주민, 시민사회단체가 참여, 투기우려지역의 농지취득, 신규 농지취득, 농업법인 취득 등을 심의하는 방향으로 농지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신규취득 농지에 대한 이용실태 조사 의무화, 불법행위 처벌 강화 등 농지관리 시스템을 보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농지에 대한 투기를 근절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LH 의혹에 대한 정부 조사는 공공기관 직원이나 3기 신도시 지역으로 조사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농지 투기와 불법, 편법 소유가 전국의 농지를 대상으로 번져 있는데, 처음부터 일부만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식으로 실태를 밝혀낼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농지법도 겨우 투기지역에 대한 심사 강화나, 신규 취득농지에 대한 조사 정도를 가지고는 농지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경실련이 한농연, 전농과 두 차례 공동 조사 발표한 결과, 고위공직자의 38.6%, 국회의원의 25.3%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었고, 상당한 투기 의심사례도 발견됐다. 문제의 해결은 실태파악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당장 전국의 농지 소유와 이용실태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

농지는 농민의 삶을 위한 생산수단이자 국민의 식량과 생태환경을 위해 보전해야 할 공공재다. 헌법에는 농사짓는 농민만이 농지를 소유하게 돼 있다. 그럼에도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을 허물고 사태를 이 지경에까지 오게 한 장본인은 바로 투기세력이다. 헌법을 지켜야 할 관료들과 국회의원들은 농지법을 개정할 때마다 농지의 타용도 전용과 비농민의 소유, 점유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급기야는 아무나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농지법을 개정했고, 스스로 투기세력이 되어 부를 축적해 왔다. 이번 LH 사태와 고위 공직자들의 농지 투기 의혹은 바로 그 결과다.

오래된 적폐의 청산은 국민적 지지와 정권 차원의 결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 부동산 투기근절, 투기세력에 대한 응징을 요구하는 국민적 요구는 그 어느 때 보다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부패 구조를 엄중히 인식한다고 했다. “공직자들의 부동산 부패를 막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동산 부패의 사슬을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 제2의 농지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바로 농지 전수실태조사이고, 경자유전의 원칙과 농지농용, 임차농민을 보호하는 내용의 농지관계법과 제도의 전면적 개혁이다. 농지 문제 해결은 선거가 끝나면 흐지부지할 면피용 레토릭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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