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식/농부. 마음치유 농장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스스로 본이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독립운동이라 강조한
도산 안창호 ‘무실역행’ 되새겨

<도산 안창호 평전> 이태복, 동녘, 2019, 개정판, 2만2000원.

지난 3월 20일. 평화통일 강연회가 줌(zoom 온라인 영상 프로그램)으로 열렸다. 민주평화통일 샌프란시스코 협의회가 주관했다. 타국에 사는 동포들이 고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강연회에 나도 참석하면서 최근 두 달째 탐독하고 있는 책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도산 안창호다. 그도 ‘해외 동포’였다.

안창호는 여러 면에서 요즘 재조명된다. 그는 말했다. “오렌지 하나도 정성스럽게 따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랏일이다.”라고(<도산 안창호 평전> 105쪽). 기도시간에 성직자에게서나 들을 이야기를 오렌지 농장 노동판에서 이제 29살의 청년 독립운동가가 했으니 그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상상이 된다.

도산은 ‘무실역행’이라 표현된 실천을 강조한다. 스스로 본이 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독립운동이며 큰 설득력을 지닌다고 역설한다. 말과 행동에서 거짓이 없고 허례와 명분에 얽매이지 말며 성실하게 온 힘을 다해 실천하라면서 그 스스로 본이 되었던 안창호. 외국 농장 노동자지만 오렌지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딸 때 독립에 우호적 여론을 만든다는 이치를 실행했던 사람이다. 일상 하나하나가 독립운동이었던 셈이다.

반국가단체 수괴로 사형을 구형받았던 저자 이태복이 감옥 안에서 쓰기 시작한 책이라 더 이채롭다. 저자는 도산의 금전과 이성에 대한 청교도적 맑음, 동지들이나 그의 비판자들을 대하는 공평무사, 끊임없는 자기 수양, 좌우로 갈라진 독립운동 진영의 대동단결을 강조하는 일관성을 주목한다. 어떤 독립운동가와도 구별되는 모습이다.

조선이 무너지기 직전인 1908년에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결행한다. 어린애를 구하려고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가는 집 안으로 뛰어드는 형국이다. 극악한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 지하조직과 공개조직을 동시에 만들어서 공개조직에서 1년여 단련된 청년들을 비밀조직인 신민회로 영입(?)하는 조직가의 면모는 도산을 새로이 보게 한다.

66살의 노회한 일제 통감 이등방문과 면담 자리에서 보인 도산의 기개는 감동이다. 서양의 아시아 침공을 막기 위해 조선과 청나라를 현대 문명국가로 만들어주겠다는 이등방문의 주장에 “조선은 조선인의 손으로 문명국가를 만들게 놔둬라.”라고 일갈했다.

대동강 변 작은 섬에서 태어난 도산이 10대에 한양으로 올라와서 구국운동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 해외 활동과 흥사단의 창단. 그 과정에서 대중연설, 토론회, 체육활동 등 지·덕·체를 아우르는 도산의 전 생애가 담겨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

도산의 숭고한 사상 기반 된 ‘생활철학’

<애기애타-안창호의 삶과 사상> 박재순, 홍성사, 2020, 1만8000원.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저자, 가톨릭대 명예교수 박재순은 인간 안창호의 사상을 독립협회, 3.1만세 혁명운동의 흐름뿐 아니라 6.10항쟁, 촛불 혁명의 연장선에서 파악하고 있다. 이승훈, 유영모, 함석헌의 정신적 계보로 파악하기도 한다.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저자는 안창호를 동서고금의 큰 스승들과도 비교하고 있다. 안창호를 통해 세계사상사의 흐름을 보게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더 중요한 지점이 있다. ‘삶’이다. 한 사람의 사상과 철학은 그의 삶이 보인 궤적과 떼어놓을 수 없다. 자신의 주장과 사상에서 괴리된 삶의 선택을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애기애타...>는 도산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도 그의 ’생활‘철학을 집중해서 살피는 책이다.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를 중심으로 사상과 철학을 들여다보고 있어서 도산 안창호의 책 답다고 하겠다.

대법원장 김병로는 이렇게 증언했다. 상해 임정 시절에 도산은 주방부터 들어가서 밥상 차릴 반찬부터 챙기더라고. 주머니를 털어 임정 요인의 밥상부터 대접하는 도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51쪽). 혹독한 감옥 생활로 운명하던 1938년 3월. 도산은 “미안하다”고 했다. 동포를 일제 치하에 두고 떠나는 자신을 “죄인”이라고 했다. 해외에서는 청소나 잡일을 도우며 동포사회를 단합해 냈고, 엄동설한 감옥에서 발가벗겨진 채 소방호스 물 사격을 받을 때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버텼다. 그런 악질 일본 경찰 ‘사이가’에게서도 본받을 장점을 발견하기도 했다(함께 수감 되었던 장리욱의 술회). 초인적인 성자의 모습이다. 한 사람의 숭고한 사상이 어떤 삶에 기반 하는지를 알게하는 책이다.

<한국독립운동의 혁명영수 안창호> 장석홍, 역사공간, 2016, 1만3000원.

<한국독립운동의...>는 도산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평가를 바로 잡아 진정한 민족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임을 밝히고 있는 책이다. ‘한국 혁명영수’라고 하는 표현은 상해 임시정부에서 도산이 운명했을 때 한 추도사에 나오는 말이다.

흔히 도산을 계몽주의자, 독립전쟁보다는 실력양성의 준비론자, 정치 사회적 문제보다 개인의 윤리와 도덕을 앞세운 지도자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여러 자료를 토대로 저자 장석홍은 강조한다. 때론 생소하기까지 할 정도다. 3.1만세 혁명운동 이듬해인 1920년을 ‘독립전쟁의 해’로 선포하고 만주의 무장 독립투쟁 단체의 통합에 온 힘을 쏟은 이가 도산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민족이 단정코 실행할 6 대사’라는 도산의 발표문과 ‘혈전독립전쟁 단행’의 선언을 소개하는 대목이다(109-117쪽).

허울뿐인 대한제국을 부정하고 수구파인 유림들의 한계를 바로 보면서 민족, 교육, 경제, 정치의 평등을 강조한 ‘민주 공화국’을 제창한 도산은 어찌 보면 독립 뒤의 조선이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는지까지 내다봤다고 할 수 있겠다. 해방 직후에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하는지를 놓고 동족끼리 전쟁까지 치른 것을 돌아볼 때 민 주체의 공화국을 1907년에 주창했다는 것은 도산의 새로운 면모임에 틀림없다.

개인의 역할이 공공의 이해와 부합되는 ‘대공주의’는 평화와 통일을 과제로 안고 있는 한민족이 민족의 상처와 갈등을 치유하고 화합해 가야 하는 오늘에도 유용한 도산 사상이다. 흥사단과 이상촌 운동은 도산의 더 넓은 지도자로서의 품새를 엿보게 한다(152-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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