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량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혁신성장정책연구본부 본부장

[한국농어민신문]

농경지 기준 디지털 플랫폼 구축
다양한 농업관련 정보 쌓아야
빅데이터 축적, 고민 해결 도움 기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국은 제조업에 앞서 농업의 압축성장에 성공한 나라이다. 쌀 편중 농업구조와 과투입 농업의 후유증을 남기기는 했지만 한국만큼 농업의 압축성장에 성공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농업의 압축성장은 제조업 압축성장이 밑거름이 됐다.

우리 농업의 압축성장을 이끈 기저력은 농업 EER(지도·교육·연구) 체계의 확립과 경지정리사업이었다. 경지정리사업을 통해 유효농지의 규모를 확대하고 한계농지의 생산성을 끌어올렸으며 농지의 법적관계를 명확히 해 합리적 농업경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70년대 초반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 밀어붙인 경지정리사업은 국토의 지력증진, 농업기계화 촉진, 농업인의 증산 동기부여 등 이후 거의 모든 농업정책과 농업발전의 밑바탕이 됐다. 신이 버린 땅에서 인간이 빚은 농업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농업혁신도 그 시작은 방조제와 경지정리에서 출발했다. 1920년부터 1927년까지 총 2차에 걸쳐 32㎞의 방조제를 완공하여 에이셜호라는 담수호와 5개의 간척지를 조성하여 23만 ㏊의 경지를 확보하였고 꾸준한 경지정리를 추진해 오늘날의 규모화와 집적화까지 연결했다. 

20세기의 경지정리가 농경지를 교환, 변형하고 개간·배수·관개 등의 설비를 개량하는 물리적 사업이었다면 21세기의 경지정리는 전체 농경지와 농업 관련 정보를 디지털 플랫폼으로 엮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이 돼야 한다. 

농경지를 기준으로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고 플랫폼 위에는 레이어(계층) 방식으로 토양분석정보, 소유경작정보 등 기본정보를 시작으로 생육, 기상, 병해충, 출하, 작목이력, 직불금, 농업통계 등의 관련 정보를 하나씩 쌓아올릴 수 있다. 빅데이터가 축적될수록 농업인은 농업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직불금과 친환경 보조금 등 농업행정 업무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여 농업현장의 고질적 난제 해결에도 유용하다.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무인 방제와 같은 신규 농업서비스 사업모델 창출도 가능해 질 것이고 농업·농촌 분야 통계의 신뢰향상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공공부문에서 디지털 경지정리를 통해 디지털 농업 플랫폼을 확립해 줘야 그 위에 민간부분의 다양한 스마트 농업 혁신모델의 효과적인 통합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지금도 농식품부와 농진청을 중심으로 팜맵(농경지 전자지도)이라는 디지털 경지정리와 유사한 작업이 부분적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규모적으로 미흡한 실정이다. 

디지털 경지정리는 우리 농업의 구조적 약점을 보완하고 미래 농업의 스마트 혁신을 준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다. 비용측면에서도 20세기 물리적 경지정리의 10분의 1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자정부와 전국민 건강보험, 이 두 가지는 오늘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국의 월드베스트 정책상품이지만, 그 작은 시작은 50년 전이었다. 50년 후 우리 농업이 세계 최고수준의 스마트 농업이 되기를 바란다면 출발선은 디지털 경지정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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