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금지 연장에 고향방문 자제·차례 축소…전통식품업체엔 더 가혹

[한국농어민신문 주현주 기자]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설 연휴까지 연장되자 사람들은 고향방문을 자제했고, 차례가 축소되면서 전통식품의 ‘대목 분위기’도 실종됐다. 일반 식품업계와 달리 전통식품업계에겐 설과 추석, 두 번의 명절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큰 대목이다. 떡·한과, 조청 등으로 대표되는 전통식품업체들은 이번처럼 한가로운 설 명절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으며, 자칫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져 전통식품 문화가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30년 된 떡집 가래떡 주문 ‘제로’
40년 전통 한과도 판로 다 막혀
엿·조청·참기름 등도 같은 상황

“전통식품 문화 사라질까 우려”

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은 떡국. 하지만 이규봉 ㈜웬떡 대표는 30년 ‘떡 쟁이’ 인생 처음으로 설날이 한가했다고 한다. 이규봉 대표는 “예년 같으면 설 명절 떡국에 쓰일 가래떡 주문이 넘쳤을 텐데, 지금은 주문이 제로다. 이참에 설 명절에 휴가라도 갈까 싶다(웃음)”고 말했다. 그는 “떡 산업에서 명절 수요 자체는 점점 기계로 떡을 뽑아내는 곳들로 대체되고 있다”며 “우리 같이 전통방식으로 떡을 찧는 ‘떡 쟁이’들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뜩 든다. 그래도 우리 떡이 맛있다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힘을 내고 있다. 추석 송편은 여전히 손으로 만든 걸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추석은 설보단 낫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규흔 신궁전통한과 대표는 한과를 만든 지 40년이 넘었다. 그가 만드는 한과는 국산 찹쌀 100%로 만든 유과와 약과, 보리강정과 사과정과 등 스무여 가지가 넘는다. 김규흔 대표는 “지난 40년 동안 한과를 만들어 왔지만, 이번 설 명절처럼 한가로운 명절은 처음이다”며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년 같으면 김규흔 대표가 만든 한과는 설 대목을 맞아 백화점과 면세점 그리고 학교급식에 바쁘게 나가야 했다. 하지만 올해는 세 곳의 판로 모두 막혔다.

김규흔 대표는 “작년 추석 때는 그래도 주문량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명절 대목 매출의 90%가 사라졌다. 국민들도 기업들도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것 같다”며 “온라인으로 팔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는데, 사람들이 주로 한과를 살 때 원료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좀 더 값이 나가는 국산 원료로 만든 전통한과는 온라인에서 인기가 없다. 그나마 우리는 홈쇼핑에서 가끔 판매하는데, 그렇지 못한 다른 한과 업체들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싶다”고 전했다.

전통 방식 그대로 엿과 조청을 만드는 강봉석 ㈜두레촌 대표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우리 고유의 천연감미료인 조청의 제조기법을 전수받아 4대째 가업을 잇고 있으며, 100% 국내산 쌀과 엿기름으로 조청을 만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조청 명장이다. 강봉석 대표는 “지금 같은 시기는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에 우리만 더 어렵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모두가 다 어려운 것 같다”면서도 “예전에는 명절 때 뜨끈한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고 전통 엿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워낙 먹을 것도 많고 하다 보니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진 않다. 가끔 대통령 명절 선물로 청와대에서 우리 제품을 요청하면 그걸로 조금 알려지는 게 전부다”고 말했다.

전통 방식으로 들기름과 참기름, 고추씨기름을 생산하는 이광범 태성식품 대표는 전통식품업계에서 명절 특수효과가 사라진 건 코로나19 전부터 있어왔다고 설명했다. 이광범 대표는 “작년에 농부들이 참깨와 들깨 농사를 다 망쳤다. 농사꾼들은 농사를 망쳐서 울상이고, 우리는 기름 짤 원료가 없어서 어려워졌다. 이 힘든 시국을 어지간해서는 당해 날 재간이 없다”며 “인건비는 점점 오르고 원가는 높아져만 가는데 매출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전통식품업체는 정부가 인정하는 ‘전통식품 인증마크’ 또는 ‘식품명인 인증마크’를 신청할 수 있다. 100% 국내산 원료는 물론 특히 '식품명인'의 경우에는 제조 방법의 전통성과 역사성, 문화성 모두 인정받아야 한다. 단순히 먹을 것 이상으로 전통문화 계승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인정받았다고 해도 매년 까다로운 절차와 심사를 거친다. 그렇다고 제품 가격이 그다지 높은 편도 아니다. 한과의 경우 양에 따라 3만부터 10만원까지 다양하며, 국내산 참기름과 들기름(160mL)은 3만원, 조청(1kg)은 1만원 선이다.

한 전통식품업계 관계자는 “전통식품업계의 설 대목 분위기 실종은 꼭 코로나 때문이라기 보단 전통식품 자체가 희미해져 가는 현상이다”며 “전통식품은 주로 가업을 이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포기를 못 한다. 우리가 관두면 이 문화가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있다. 사람들의 입맛은 점점 고급화되고 있고 건강식을 찾는다고 하는데, 전통식품은 이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있다. 이 장점을 살린다면 길은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주현주 기자 jooh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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