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조영규 기자]

“올해는 뭐가 좋아요?”

지난해 농민들을 만났을 때 꽤 많이 들었던 말이다. 어떤 트랙터가 좋은지, 어떤 비료가 좋은지, 어떤 농약이 좋은지 다들 ‘좋은 것’에 관심이 많았다. 습전에서 쓸 트랙터, 측조시비할 비료, 탄저병을 방제할 농약, 이런 ‘좋은’ 상품을 알고 싶어했다. 이들에게 ‘좋다’는 건 자신의 영농환경에 맞는, 그러면서 최신상인 농기자재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어제보다 나은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의 바람이기도 한데, 이렇게 묻는 농민은 거의 없었다. “올해 종자는 뭐가 좋아요?”

일년 농사의 시작은 종자다. 좋은 종자는 농민의 손길과 하늘의 도움을 만나 좋은 산물을 내놓기에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결정타다. 그래서 농민들은 종자를 선택하는 데 꽤 심혈을 기울인다. 그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 ‘좋은 종자’를 궁금해하지 않는 이유다. 예전 경기의 한 농가가 “어떤 종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게 우수한 종자인지도 모르니 그냥 이전에 썼거나 지금 쓰고 있는 종자를 로열티 내고 쓰고 있을 뿐”이라고 한 하소연이 아직도 기억난다. 모르니 못쓴다는 말이다. 국산종자를 모르니 못쓴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종자자급률은 2019년 기준 27.5%로 낮다. 수입종자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 힘겨운 시장에서 나름의 성과는 있다. 딸기종자 국산화율은 2019년 95.5%. 2010년엔 61%에 불과했었다. 일본산이 대부분이었던 양파종자 시장에서 최근 국산 양파가 일본산 대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종자 국산화율도 2014년 18%에서 2019년 29.1%로 완만하지만 상승세다. 국산 양배추 품종도 80% 이상을 차지하는 일본품종과 상품성 경쟁을 하고 있고, 국화 품종 ‘백마’는 국화 종주국인 일본시장에서 이미 일본산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도 자급률을 6년새 2~3%씩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수입산과 견주는 ‘좋은 국산 종자’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출시됐습니다’에 그친 마케팅의 한계다.

물론, 농민이 종자를 바꾸긴 쉽지 않다. 농사는 정확한 농법은 물론, 농민의 예민한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손에 익은 종자를 한번에 바꾸는 모험은 더욱 쉽지 않다. 그래도 로열티를 지불하지 않는 좋은 국산 종자가 있다면, 정확히 농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단편적인 ‘출시’ 정보가 아니라 A지역과 B토양과 C날씨에 적합성이 높고, D당도와 E식감과 F외관으로 소비자 선호도가 뛰어나다는 식의 현장 정보와 함께다. 파종시기에 맞춰, 영농기술도 전해져야 하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조언도 필요하다. 그래야 농민들이 좋은 종자에 관심을 높이고, 자신에게 맞는 종자라고 판단되면 지금의 농장에서 조금씩 시험재배를 해 볼 터다. 이 시험성적에 따라 국산종자의 운명에 명암이 있을테지만, 이 역시 국산종자의 영역을 넓히기 위한 과도기라면 충분히 할 만한 모험이다. 적어도 모르니 못쓴다는 하소연은 듣지 않을 수 있다.

일년 농사는 종자고르기에서 시작된다. 이 때 농민들이 미래 가능성을 품은 국산종자에 더 신뢰를 주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조영규 기자 농산팀 choyk@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