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이병성 기자]

올해 농업계는 그야말로 사건, 사고, 이변의 연속이었다. 봄철 과수 동해로 시작된 재해가 사상 최악의 장마, 이상저온, 집중호우, 수확기를 앞두고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 등 연중 끊이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농산물 파동 등 모든 재해가 농업계를 강타했다.

이 같은 극심한 혼란을 겪는 동안 농업통상 관련 현안이 상대적으로 이슈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서명이 11월 15일 이뤄졌고, 인도네시아와 포괄적 경제 동반자협정(CEPA)도 12월 18일 정식 서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무역의날 기념식서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여를 내비치기도 했다. 앞으로 개방의 폭이 더욱 넓어지고 속도 또한 가속될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농업부문의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바 있다. 

2020년 11월 기준 16건(56개국)의 FTA가 발효돼 있는 등 우리나라는 높은 수준의 개방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농민들은 농업선진국과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것이다. 통상패권을 쥐려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 출범을 앞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체제 복원 등 앞으로 한국의 농민들은 더욱 복잡하고 강력한 통상환경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농정당국의 대응이 이상해 보인다. RCEP 서명 관련 보도자료에서 농산물 추가 개방을 최소화했다고 밝혔지만, 암막으로 덮인 부분도 있다. 농민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사안들이 상당 부문 숨겨진 것이다. 신선 농산물의 RCEP 역내 우회 수입 방지를 위해 원산지 완전생산기준(WO)이 적용된 반면 재료누적 기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재료누적이란 RCEP 참여국가로부터 재료를 수입해 최종 상품을 생산할 경우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원산지 기준에 따라 우려되는 효과는 농식품 재료의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농민들이 우리땅에서 생산한 농산물의 상당량이 수입산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가공용으로 소비가 줄면 당연히 신선농산물 상태로 출하되면서 공급과잉과 시장가격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해당 품목의 생산기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함께 현재 발효됐거나 협상이 진행 중인 FTA의 중첩효과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모든 FTA를 종합해 품목별 양허 실상에 대한 교차 분석이 절실하다. 내년 RCEP이 발효되고, 향후 다자체제 복원 등 급변하는 국제통상 환경에 대응해 농정당국이 농업부문의 피해를 가리기보다는 제대로 알리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병성 기자 농정팀 leebs@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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