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농업인의 날, 대통령 메시지 ‘팩트체크’

[한국농어민신문 김선아·김관태·고성진 기자]

11일 청와대에서 제25회 농업인의 날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영부인 및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가 열렸다.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전국에서 생산된 고품질 쌀 품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제25회 농업인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17년만의 참석이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농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코로나19와 유례없는 수해로 그 어느 해보다 큰 어려움을 겪은 농민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예우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는 청와대의 설명도 기대를 키웠다. 

하지만,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한 현장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농산물 수출실적 60억달러 돌파 △일자리 3년간 11만6000명 증가 △쌀값 회복 △농산물 수급·가격 안정 등 대통령이 꼽은 농정의 성과는 현장의 체감도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새로운 시대의 농정을 과감하게 펼쳐가겠다”고 했지만, △생활 SOC 복합센터 건립 및 농촌재생사업 확대 △귀농귀촌 통합플랫폼 제공 △스마트팜 확대 및 자율작업 농기계 보급 △밀 자급률 10%·콩 자급률 45% 달성 등 나열된 정책 대안들이 과거 농정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무엇보다 이런 메시지를 준비한 청와대 농해수비서관실과 농림축산식품부 관료들의 잘못된 현실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질타도 쏟아졌다. 

한국농어민신문은 대통령 연설문에 담긴 내용을 ‘팩트체크’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익명으로 싣는다.  


◇농업 분야 성과지표 ‘팩트체크’

신선농산물 비중 17.9% 불과 
현장서는 수출증대 체감 못해 
농산물 수입은 더 크게 늘어


▲“10월까지 농산물 수출실적 60억달러 돌파”=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로 세계 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10월까지 김치와 고추장 수출이 작년보다 40% 가까이 증가했고 농산물 전체 수출 실적이 60억불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10월까지의 수출통계 실적은 아직 공식 발표되지는 않았다.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농림축산식품 분야 수출액은 55억1800만달러다. 전년 동기대비 2.1% 증가했다. 국가 전체 수출이 8.6% 감소한 것과 견주면 선방한 수치다. 하지만 수출통계 실적을 좀 더 들여다보면 평가는 달라진다. 농가 소득과의 연계성이 높은 신선 농산물 비중(9월 기준)은 9억8600만달러로 17.9%에 불과한 반면 가공품은 45억3000만달러로 80%를 넘는다. 지난해 9월 동기 대비 신선 농식품 수출 물량은 오히려 15.9% 줄었고, 수출금액은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공품 수출 증가(8%)가 전체 수출액 증가를 이끈 셈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들어 농산물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2018년 414억 달러를 기록, 처음으로 400억달러를 넘어선 데 이어 2019년에도 400억달러가 넘는 수입 농식품이 들어왔다. 정부가 성과로 내건 수출 성과 이면에는 이런 수치들이 숨어있으며, 현장에서 수출 증대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자리 3년간 11만6000명 증가”=문 대통령은 “일자리는 2017년부터 3년간 11만6000명이 늘어났다”며 “농촌에서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과 귀농인들이 농촌에 혁신과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2017년 6월 기점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주목을 받았다. 2018년 전체 취업자가 9만7000명밖에 늘지 않는 ‘고용한파’ 속에서도 농림어업 분야만 6만1000명 늘어났고, 2019년에도 5만5000명이 증가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분석은 엇갈린다. 

정부는 줄곧 자발적 귀농, 스마트농업·청년창업농 등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를 언급하고 있지만, ‘일시적 현상’ 또는 ‘경기침체의 전조’라는 반대 시각도 만만치 않다. 

양적 증가와는 별도로 질 높은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단기 계절적 수요가 많은 농어촌의 일자리 특성, 코로나 사태에서 외국인노동자 공급 차질에 따른 영향 등이 반영되면서 ‘단기 일자리’ 측면에 치우친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는 만큼 양적 수치만으로 농촌 일자리 증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해선 물음표가 따른다. 

귀농·귀촌 흐름도 문재인 정부 들어 ‘한풀’ 꺾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귀농·귀촌 인구는 2016년 49만6048명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17년 51만6817명으로 50만명대를 넘어선 뒤 2018년 49만330명, 2019년 46만645명으로 조금씩 떨어지는 추세다. 


쌀값 상승세는 사실이지만
기후변수로 인한 생산 감소가 원인
정부 정책 성과로 보기 어려워

▲“20년 전 수준 쌀값 회복, 안정적으로 유지”=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 출범 전, 20년 전 수준까지 떨어졌던 쌀값이 회복돼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인 2016년 말과 2017년 초 쌀값은 80㎏ 기준 12만4000~12만8000원대였다. 당시로부터 20년 전인 1996년 80㎏ 쌀값이 13만1770원(정부양곡 매입가 기준, 농식품부 양정자료)인 점을 감안하면 ‘20년 전 쌀값 수준’이라는 말은 사실에 가깝다. ‘20년 전 쌀값’은 문재인 정부 들어 증가 추세를 보이며 지난해 19만원대를 회복했고, 올해도 11월 5일 기준 정곡 80㎏ 21만5404원을 기록해 쌀값이 유지되는 흐름을 띠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정책 성과라기보다는 기후 변수로 인한 쌀 생산량의 지속적인 감소가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쌀 생산량은 397만2000톤으로 2016년 419만7000톤보다 5.3% 감소했다. 여름 극심한 가뭄과 폭염, 재배면적 감소 등이 이유였다. 생산 감소 추세는 계속 이어졌다. 2018년 쌀 생산량은 386만8000톤으로 전년보다 2.6% 감소했다. 7월 폭염과 잦은 강수가 겹치는 등 기후 영향 탓이 컸다. 2019년은 여기서 더 줄어 374만4000톤, 올해는 ‘역대 최저’ 수준인 350만7000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쌀값 회복’을 강조하는 것은 자연재해로 고통 받고 있는 농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모르기에 가능한 일 아니냐는 지적이다. 


▲“농산물 가격 폭락에 눈물지었던 농민의 시름도 덜어”=농산물 가격 안정과 관련 문 대통령은 “농산물 생산량 정보를 제공해 자율적으로 수급을 관리하도록 돕고 있다”며 “올해 시범적으로 양파, 마늘 생산자들이 함께 수급을 조절하고, 온라인을 통해 도매 거래한 결과 수급과 가격 모두 안정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농산물 실측조사 체계를 도입하고 생산자 단체와 수급 조절 협의를 이어온 점, 도매 거래를 위한 온라인 농산물 거래소를 만든 점은 사실이나 이런 부분이 전적으로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시각이다. 온라인 농산물 도매시장의 경우 아직 시장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래량이 많지 않고, 생산량이나 소비량에 대한 통계가 고도화되지 않아 아직 현장 농민들이 자율적으로 수급을 조절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 

농민들은 ‘전체적인 농산물 수급 구조가 아직 상인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상인들이 불안 심리를 조장하면 농민들은 싸게 팔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구조를 바꾸려면 산지 및 소비지에 대한 조사를 더욱 고도화하고, 농가가 수급 문제에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정개혁 최대 성과로 꼽히지만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 처리
농업계 요구예산 3조도 못지켜

▲“농업계 오랜 숙원인 공익직불제 도입, 앞으로 더 발전시킬 것
”=공익직불제 도입은 문재인 정부의 ‘농정개혁’ 최대 성과 중 하나로 평가된다. 하지만 공익직불제 입법화 과정에서 정부와 여당은 충분한 논의 없이 예산부수법안으로 관련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관건 중 하나였던 예산 확보 문제도 농업계와 야당이 원했던 3조원이 반영되지 못한 채 정부안보다 2000억원 증가한 2조4000억원 확보하는 데 그쳤다. 

올해 법 시행으로 일단락될 것 같았던 공익직불제 문제는 여전히 논란 속에 있다. 문 대통령이 “앞으로 농업이 환경과 생태적 가치에 기여하도록 공익직불제를 더 발전시키겠다”고 언급한 것과 달리 2020년부터 2024년까지 계획한 공익직불제 예산은 2조4000억원으로 5년 동안 묶인 상태다. 환경과 생태적 가치 기여를 위해서는 현재 800억원대(공익직불 예산 중 약 3% 비중)에 불과한 선택형직불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하는데, 정부가 밝힌 중장기 재정 운용계획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공익 기능 증진이라는 제도 취지를 살리는 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직불제 중심의 농정 전환’이라는 대통령 공약도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현장에 자리하고 있다. 


▲생활 SOC 복합센터가 이미 700개?=문 대통령은 “젊은이와 어르신 모두가 살기 좋은 농촌, 살맛나는 농촌을 만들고 있다”면서 “도서관과 체육시설을 갖춘 생활 SOC 복합센터는 올해 700여개에서 2025년까지 1200여개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구역상 일반 농산어촌으로 분류된 읍·면의 수가 1153개인데, 대통령의 발언대로라면 이미 60%가 넘는 읍·면에서 생활 SOC 복합센터 사업이 추진됐고, 5년 후면 사실상 모든 읍·면에 1개 이상의 생활 SOC 복합센터가 들어선다는 얘기다. 현장 농민들 입장에선 의아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에 대해 농식품부 담당자는 ‘생활 SOC 복합센터사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2015년부터 실시된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실적을 누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 지역개발 전문가는 “이전 정부에서부터 추진된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을 왜 생활 SOC 복합센터로 이름을 바꿔 현 정부 성과로 포장했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700개가 무슨 기준으로 카운트됐는지도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현장 목소리 

대통령 잘못된 현장인식은 청와대 등 참모진들의 책임
실행력 담보된 정책대안 없이, 여전히 미사여구만 넘쳐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결국 누가 어떻게 보고하느냐가 중요한 문제 아니겠나.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대체 그 연설문을 누가 그렇게 썼는지 궁금해 한다. 대통령이 농업·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자신들의 정책성과는 부풀리고, 현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은 감춘 사람들이 문제라고 본다.” 

농업계의 한 인사는 “메시지를 준비한 참모진에게 책임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올 초 냉해부터 시작해 50여일 넘게 이어진 장마로 뭐 하나 성한 작목이 없는데, 생산량이 줄어서 올라가고 있는 쌀값을 농정 성과로 들이밀면 농민들의 심정이 어떻겠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재인 정부 출범 4년차가 지나가고 있는 지금, 농민들은 이제 구호나 이벤트가 아니라 실행력이 담보된 구체적 정책 대안이 나오길 기대하는데, 기존 농정 패러다임이 그대로 유지된 채 여전히 미사여구만 넘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인사는 “2022년까지 밀자급률을 9.9%로 높이겠다는 정책 목표를 내놓은 게 2018년인데, 여전히 1%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니냐”면서 “이걸 10년 후인 2030년까지 10%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뭘 준비하면서 10%로 높이겠다는 것인지가 있어야, 믿든지 기대를 하든지 할텐데 그런 게 없으니 답답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인사는 “메시지는 사람과 환경 중심인데 구체적인 내용을 뜯어보면 여전히 기존 농정 패러다임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서 “스마트팜을 2022년까지 7000ha로 늘리고, 자율작업 트랙터와 이앙기로 어르신들도 큰 힘 들이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과연 중소농이나 고령농을 위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무기력한 농특위 대응도 답답

이번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가 배제된 것도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 인사는 “농특위는 대통령 직속의 자문기구다. 대통령이 농업관련 메시지를 내는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농특위가 당연히 참여했어야 한다”면서 “만일 청와대나 농식품부가 농특위를 배제한 것이라면, 농특위가 직접 나서서 어떤 식으로든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도 “농특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한 것은 행정이 아니라 농특위가 중심이 돼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각 부처와 협력해 대통령이 약속한 농정 틀 전환 논의를 구체화하라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농식품부 입장에서야 당연히 견제를 할테고, 농특위 스스로 위상과 급에 맞게 활동반경을 넓혀야 하는데 어디에서도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어 너무 안타깝다”고 전했다.

김선아·김관태·고성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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