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수확의 계절이지만, 지난 8월 폭우 때 댐 방류로 수해를 입은 수재민들의 삶은 고단하다. 석 달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하면, 폐허가 된 하우스와 축사는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는 농민들이 있다. 쥐꼬리만 한 복구비로는 다시 일어설 엄두를 못 내고 분노와 허탈감만 쌓여간다.

재해로 인한 농민의 눈물은 이곳만이 아니다. 4월초 사상 최악의 냉해로 전국의 과수농가들이 큰 피해를 입고 폐농의 위기에 몰렸다. 올해 농촌 현장에는 봄철 냉해를 시작으로 긴 장마, 태풍과 폭우 등 연이은 재해로 큰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적지 않다.

근래 기후 위기의 심화는 농업재해의 발생 빈도를 늘리고, 피해규모도 매년 확대되고 있다. 재해의 무서움은 그것이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헌법 34조 6항).

우리나라의 농업재해대책은 ‘농어업재해대책법’에 따른 복구비 지원과 ‘농어업재해보험법’에 따른 농작물재해보험을 양대 축으로 한다. 현행 제도는 농업 재해 발생 시 재해대책으로 정부가 응급복구와 생계 구호를 지원하고, 실질적인 피해보상은 농작물재해보험이 담당하는 체계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업재해로 인한 피해를 보상함으로써 농업경영 안정과 생산성 향상,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하는 공적인 정책보험이다.

그러나 농작물재해보험은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실제 정부(50%)와 지자체(평균 30%)의 지원에도 여전히 부담스런 보험료, 피해에 턱없이 못 미치는 보상으로 가입률은 2019년 기준 38.9%에 그치고 있다. 열 농가 중 여섯 농가는 재해를 당해도 보험금을 받을 길이 없고, 나머지 네 농가도 피해규모에 한 참 모자라는 보험금을 받는다. 국가가 운영하는 재해대책이라고 하기엔 부실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매년 불만과 개선요구가 제기돼 왔고,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공약으로 “농어업재해대책법과 농업재해보험법의 지원기준을 현실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보험료 농가부담이 높고 대상품목이 제한적이며 원상복구를 위한 농가부담이 높은 농업재해보험 제도를 개선하여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농협손보와 정부는 올해 농작물재해보험의 사과, 배, 단감, 떫은 감에 대한 적과 전 보상률을 일방적으로 기존 80%에서 50%로 축소했고, 그 피해는 올 4월 동상해 피해를 입은 과수농가들이 곧바로 뒤집어썼다.

대통령의 공약까지 무시하는 역주행의 배경은 뭘까?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근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정책보험인 농작물재해보험을 민영보험사인 NH농협손해보험이 독점 운영한다는 점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총괄하고, 운영비 100%를 NH 농협손보에 지원해 주는 체계다. 중간에서 농업정책보험금융원이 지도감독을 한다.

하지만 이런 체계는 농민들을 위해 작동하지 않고, 정책보험이라는 취지는 퇴색됐다. 농협손보는 농협중앙회 금융지주의 자회사로, 영리를 추구하는 주식회사다. 영리회사인 민영보험사가 보험을 운영하다 보니 손실을 피하고 이익을 남기기 위해 갈수록 피해 산정, 보상 기준이 농민에게 불리하게 되고 있다. 올해 과수에 대한 보상 축소도 이와 무관치 않다.

현장 농민들은 “농민을 위한 정부 지원으로 농협손보만 이익”이라면서 “국가가 책임질 재해보상을 농협손보에 맡긴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성토한다. 보험업계는 최근 저금리, 저성장,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농협손보의 경우 올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대비 6배 이상 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분명한 것은 더 이상 기존의 농작물재해보험으로는 빈발하는 농업재해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심화로 재해가 확대되면 농민들의 생존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국민의 먹거리 공급에 차질이 오게 된다.

재해대책과 농작물재해보험은 피해에 상응하는 지원과 보상을 통해 피해 농민들이 다시 일어나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상화돼야 한다. 당장 농어업재해대책법의 복구비 지원은 최소 생산비 수준으로 개정하고, 농작물재해보험은 품목 확대, 보상비율 인상으로 현실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농업재해 예방과 복구, 보상을 포괄하는 법률을 제정,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농작물재해보험은 농민을 위한 것이다. 주인인 농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농협, 농식품부, 농금원, 일부 학자들이 끼리끼리 제도를 주무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사안이 복잡하다는 핑계로 문제점을 고칠 생각은 안하고, 결과적으로 매번 농협손보의 기득권을 챙겨주는 농작물재해보험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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