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뒤 낮은 가격 신음하는 시설채소 단지

[한국농어민신문 김경욱 김관태 기자]

고진택 한농연 안성시연합회장이 얼갈이배추 상태를 보고 있다. 하우스 바닥엔 일조량 부족으로 상품성이 떨어진 얼갈이배추가 널려있다.

상추·청경채 등 수확량 준데다
가격도 낮아…“출하하면 밑져”
파종 위해 수확 울며 겨자먹기
소비 위축이 더 큰 문제 ‘한숨’


“수확의 기쁨이요? 수확을 하지 않으면 파종도 못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수확하는 거지, 솔직히 이 가격으론 안 내보내는 게 더 낫습니다.”

7월 말부터 8월 초 중부권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경기 안성시 일죽면 100여 농가의 시설채소 단지가 대부분 침수돼 큰 피해를 봤다. 그로부터 꼭 한 달이 흐른 지금, 일죽 시설채소 단지는 폭우 생채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가격 하락’이라는 또 다른 먹구름까지 끼어 허덕이고 있었다. 

하우스 40동에서 상추, 청경채, 얼갈이 등 시설채소를 재배하는 조주연(43) 씨는 “침수로 작황이 최악이다. 예년의 30~40%밖에 수확되지 않고 있다”며 “가격이 낮아 출하하면 밑지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수확해야 또 파종하고, 침수로 더 놔두면 작물이 썩어들어 가기도 해 어쩔 수 없이 출하하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조 씨는 “언론에선 연일 채소 가격이 금값이라고 난린데 그렇지 않은 품목도 상당하다”며 “코로나19가 재 확산하면서 학교급식 물량이 끊기고 식자재 매출도 급감하면서 일부 품목은 가격이 폭락 수준”이라고 밝혔다. 

조 씨 전언처럼 다수의 유통업체와 언론에선 채소 가격이 높다고 연일 도배하고 있지만 채소 가격은 품목별로 상당히 나뉜다. 이 중 상추, 깻잎, 청경채, 얼갈이 등 식탁 주 메뉴인 엽채류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비가 급감하면서 시세 역시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실제 긴 장마가 이후 잠깐 반짝했던 이들 품목 가격은 이후 코로나19 재확산과 맞물려 하락세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8월 셋째 주(17~21일) 7만1610원이었던 적상추 4kg 상품 가격은 넷째 주(24~29일) 2만9459원, 9월 첫째 주(8월 31~9월 3일 현재) 1만7532원 등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최근 5년간 가격 비교를 보면 같은 기간(8월 31~9월 3일) 지난해만 1만5463원으로 약세였고, 2018년 5만9252원 2017년 4만8741원, 2016년 3만2100원으로 올해 시세는 평년 시세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깻잎 역시 100속에 2일 1만9229원, 3일 1만9693원 등 최근 2만원 내외를 기록하며 2만원 중반대였던 지난해와 3만원 초반대였던 평년 시세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물론 3일 현재 9호 태풍 마이삭이 영향을 줬고 10호 태풍 하이선도 한반도를 관통할 것으로 예보돼 원활치 않은 유통 흐름 속에 반짝 시세가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기록적인 폭우 뒤 잠깐의 시세 상승 후 찾아온 최근의 가격 하락처럼 학교가 등교를 하지 않고 외식 경기도 가라앉아 있는 한 하락세는 지속할 것으로 우려된다. 

시설채소 재배농가인 고진택 한국농업경영인 안성시연합회장은 “요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소비가 안 되는 면도 있지만 언론에서 하도 부채질해 채소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 소비가 안 되는 것도 크다”며 “생산량이 안 나오면 시세라도 받쳐줘야 하는데 시세까지 안 나오니 올해 도산하는 농가들도 많이 생길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고 회장은 “엽채류는 시세가 폭등한다고 해도 그게 며칠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올해엔 특히 코로나 정국으로 이례적인 기상 이변에도 시세가 잠깐 반짝할 뿐 금방 수그러든다”며 “올해 같이 소비 침체기엔 채소 가격이 높다고 부각되지 않도록 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추석 대목장. 이 시기엔 물량이 폭발하는 시기로 올해엔 특히 침수로 인해 안 나왔던 물량이 추석 대목을 앞두고 쏟아질 것으로 보여 자칫 가격 폭락 우려가 크다.

고진택 회장은 “침수 복구 이후 대부분 8월 말 전후 파종을 했다. 이 물량은 대부분 추석 대목을 앞두고 나온다”며 “워낙 올 추석엔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동이 줄어들어 대목장 소비까지 가라앉을 수 있어 걱정이 태산”이라고 밝혔다. 

이런 아쉬움이 농정당국으로도 향하고 있다. 시설채소는 유독 정책에서 소외돼 있다는 것. 

고 회장은 “시설채소도 상당히 중요한 부류로 국민 식탁에 자주 오르는 상추, 깻잎 등의 주요 농산물이 시설채소에서 나온다”며 “농정당국에서 시설채소는 다른 민감 품목과 달리 관심이 덜 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당장 시설채소는 가격이 폭락해도 대책 하나 안 나오고 농림축산식품부에 시설채소 담당자도 없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김경욱 김관태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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