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완/보성농협 조합장, 농협RPC운영전국협의회 회장

[한국농어민신문]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온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특히 농업부문에서는 자국민의 식탁을 지키기 위해 주요 식량생산 국가들의 수출중단 선언이 줄을 이었다. 지난 3월 쌀 수출을 중단한 베트남과 밀 수출을 제한한 러시아를 비롯해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파키스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터키, 세르비아 등이 농식품에 대한 수출제한을 확대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농식품의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안정적인 식량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에 혼란이 초래되고, 곡물메이저와 투기자본의 곡물확보 경쟁이 본격화 되면서 우리 곁에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국경봉쇄로 자국 내 식량부족을 우려한 각국 정부가 사재기 수준으로 식량 비축에 나서고 있어 국제 곡물가격 급등이 우려되고 있는 데다 세계 곡물시장의 80%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곡물메이저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국제 곡물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조치로 식량이 농장에서 가공공장과 항구로 제때 옮겨지지 못하고 들판에서 그대로 썩어가는 공급망 와해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무너지는 기현상 즉, “식량이 넘쳐나는 데도 식탁까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식량위기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발 국경봉쇄로 인한 농업노동자의 이동제한에다 남미와 아프리카 등의 메뚜기떼 창궐, 중국 및 남아시아 지역의 대홍수까지 겹쳐 전 세계적인 식량위기론이 대두되고 있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코로나19의 종식시기가 불확실하고, 신종 바이러스 출현주기도 빨라지고 있어 식량안보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이 시점에 세계 최하위권의 곡물자급률과 세계 5대 식량수입국, 세계 4위의 농축산물 무역적자라는 팩트가 우리 농업의 냉철한 현주소다. 이는 그동안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른 나라에서 먹거리를 사올 수 있다는 시장개방론의 팽배와 농업경시 풍조가 초래한 결과이다. 

흉년이 들면 수입이라는 미봉책으로 때우고 풍년이 들면 재고처분에만 신경을 쓰는 우리의 근시안적인 농정과 달리 일본이나 중국은 안정적인 식량 확보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예컨대 일본은 해외 농업개발과 미쓰비시 등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한 국제 곡물유통망 확보에 힘써 30% 수준의 곡물자급률에도 불구하고 식량 자주율은 100%가 넘고, 중국은 해외 곡물회사를 인수한 공기업 코프코가 식량조달 사업에 뛰어들어 곡물자주국이 되기 위해 총력을 다 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아직까지 식량수급에 관한 중장기적인 근본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대책마련을 위한 추경예산에도, 그린 뉴딜에도 농업부문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더구나 일부 언론에서는 주곡인 쌀의 수급안정을 위해 도입한 쌀 자동시장격리제나 주식거래 때 부과하는 농특세 등에 대해서 “퍼주기”라는 몰지각한 비판기사를 내놓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경제봉쇄와 교역축소 등 보호무역이 강화되면서 각국이 각자도생을 위한 식량재고 확보를 핵심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각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하면서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진 지금이야말로 농업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농업예산과 보조금 확대를 통해 쌀을 비롯한 기초농산물의 안정적인 생산과 농업 ·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할 때다. 나아가 비상시 국가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식량안보와 식품안전성 관리시스템도 더욱 고도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국민생존권을 담보하는 식량안보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가치임을 국민 모두가 절실히 공감하고 농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소중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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