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불과 나의 자서전(김혜진. 현대문학. 2020. 3. 1만3000원)>

달동네서 부촌으로 바뀐 주소
부동산 문제 이면에 서려있는
삶의 속살, 일그러진 욕망

늘 들끓는 한국 사회는 관심과 뉴스가 정치 쟁점이 많고 끝없이 명멸한다. 두 달 전의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이나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죄 조작 사건이 수십 년은 지난 듯하다. 그렇다면 요즘 소설은 어떤 주제들을 다룰까. 소설 속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지난 3월에 출간된 김혜진의 장편, <불과 나의 자서전>은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를 곤두박질치게 한 부동산 문제의 이면에 서려 있는 삶의 속살을 다루고 있다. 땅값, 집값이 그곳에 사는 인간의 값을 매기는 비정한 현실. 소설은 땅 투기로 떼부자가 되는 이야기를 전면에 등장시키지는 않는다. 배제와 외면, 혐오와 선망이 땅과 얽혀 돌아가는 현실이 실감 나게 담겨 있다.

주인공 홍이가 어린 시절에 살았던 남일동은 산 바로 아래에 있다. 속칭 달동네다. 재개발이라는 불안 섞인 소문들이 쉴 새 없이 회오리바람처럼 떠도는 동네. 홍이는 남토(남일동 토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자랐다. 그러던 홍이는 옆 동네 부자들이 사는 중앙동에 살게 된다.

갑자기 부자가 된 것일까? 아니다. 행정구역이 재편되면서 남일동이 반으로 쪼개져서 반이 중앙동에 편입된 것이다. 그냥 그 자리에 그 모양으로 살지만 부촌으로 주소가 바뀌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후 그녀의 부모는 남일동 자체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원래 중앙동에 살았던 듯 남일동에 선을 긋는다.

남일동은 주해라는 여성과 그녀의 딸 수아가 이사 오면서 활기를 띤다. 홍이는 왕따 당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심한 알레르기 때문에 남일동 약국에 들렀다가 이들을 만난다.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구청이든 주민 센터든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주해. 거리의 가로등이나 마을버스 운행노선까지 이뤄낸다. 정작 남일동 주민들은 시큰둥하다. 묘한 풍경이다.

그러던 주해 모녀가 남일동을 떠난다. 과거의 부정한 일이 드러나면서다. 남일동은 일그러진 욕망만 남는다. 그래서 홍이는 남일동 전체가 허물어지기를 염원한다.

2012년에 등단하여 꾸준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작품으로 써 온 김혜진은 이 소설에서 땅 부자 투기꾼 배불리는 재개발로 양분되는 지역사회, 부의 대물림, 주거공간이라기보다 부동산인 집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위태로운 욕망을 깊이 다뤘다.

<목소리를 드릴게요(정세랑. 아작. 2020. 1. 1만4800원)>


[함께 보면 좋은 책]

100년, 200년 뒤 지구에 무슨 일이

150년 전인 2050년에 여섯 번째 대멸종이 시작되었다. 수온 상승과 바닷물 산성화로 바다의 산호가 녹아 사라졌다. 변종 바이러스와 홍수가 지구를 덮쳤다. ‘7교시’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역사 공부를 하는 내용들이다.

23세기 학생들은 200년 전 사람들이 영양식을 한다면서 축산을 고집하며 기후변화를 초래한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120억 인구의 1/3인 40억이 죽는 대참사를 겪고야 환경주의를 받아들인 것도 이해가 안 된다.

이러한 내용의 ‘7교시’라는 단편과 엇비슷한 작품이 ‘리셋’이다. 인간이 다른 종들을 노예로 삼고, 학대하고, 말살했기에 길이가 100미터나 되고 직경이 8미터 내외인 거대한 지렁이들이 인류 문명을 갈아엎는 이야기다. 이때의 인간들은 “모든 자원을 고갈시키고 무책임한 쓰레기만 끝없이 만들고 있었다. 15분 동안의 식사를 위해 400년 동안 썩지 않을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썼다.”(44쪽).

소설집 <목소리를 드릴게요>는 작품 활동 10년째를 맞아 낸 정세랑의 첫 공상과학 소설집이면서 환경 소설집이라 하겠다. 8편의 단편들은 정신 차려 읽지 않으면 상상과 현실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화자의 시점이 100년 뒤, 200년 뒤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야기 흐름을 놓치기 쉽다. 그 연결성을 잡고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한민국 국회는 2020년에 차별 금지법 논란이 뜨겁지만 지구 문명이 한차례 리셋된 ‘리셋’에서는 수인성 전염병으로 지하 도시가 크게 피해를 본 뒤로 종차별 금지법이 제정되어 양식장까지 철거되었고 모든 동물들은 울타리 없는 곳에서 평화롭게 수명을 다할 수 있게 되었다.(81쪽)

저자 정세랑은 ‘판타스틱’, ‘드림, 드림, 드림’ 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았다.

<푸른눈썹(하아무. 북인. 2020. 3. 1만3000원)>

 

수식없이 마주하는 굴곡진 인생

눈썹은 사람 얼굴에서 가장 강조되는 곳이다. 소설의 주인공 재은의 눈에는 돌돌돌 잘 말린 찻잎이 찻잔 속에서 다시 파랗게 펼쳐지는 모습도 눈썹으로 보였다. 딸 미주의 눈썹. 파란 눈썹으로.

어린이집에 갔다가 문 닫힌 버스 속에서 숨을 거둔 어린 딸은 시도 때도 없이 되살아났다. 차를 덖으면서 부르는 민요도 그랬다. “우리 낭군 감기몸살 씻은 듯이 풀어주고 우리 아기 이질 설사 닦은 듯이 낫게 하세”를 흥얼거리는 이모의 노랫말이 가슴을 찌른다. 이제는 헤어졌기에 감기몸살 씻어 줄 낭군도 없다. 설사를 핥아서라도 닦아 줄 미주는 먼 세상으로 갔다.

섭씨 300도 무쇠솥에서 찻잎이 치치치 물기를 뿜으며 말라갈 때 찜통더위 속 어린이집의 차가 떠오른다. 숨을 헐떡이는 미주가 바둥댄다.

표제작인 ‘푸른눈썹’ 외에 날마다 죽는 사내, y의 근현대여성사, 멘붕 시대 등 8편의 작품이 실린 이 소설집은 전체 분위기가 그렇다. 삶의 불안정성이 기우뚱하게 걸쳐 있다.

위험천만한 고속도로의 ‘갓길’은 남편 주대의 인생만큼이나 어정쩡하다. 딸 아이의 발표회장에 급히 가는데 자동차 뒷바퀴가 펑크가 났다. 휴대폰도 차에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렉카차가 와서 바퀴를 고쳤지만 휴대폰을 가지러 집에 갔다가 찾지도 못하고 다시 고속도로로 올라왔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이번에는 앞바퀴가 터져버렸다.

작품 곳곳에는 배신, 불운, 사망, 미움, 이혼, 폭력, 원망, 낭패 등이 스며있다. 작가는 별다른 해설 없이 사실만을 보여준다. 굴곡진 인생살이를 조망하게 해 준다. 그것이 담담한 위로가 되는 소설집이다. 전희식/농부. 마음치유 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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