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진흥청 농업연구관 김경미

[한국농어민신문]

‘실버 쓰나미’ 내몰리는 베이비부머
농업에 이들 품을 매력적인 일 많아
의욕·열정 담을 구조가 필요할 뿐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은 어디에서 왔을까? 수많은 선대 인류가 몸과 마음으로 기여해온 것은 아닐까? 우리 몸에 독이 되는 풀은 누군가 먹거나 만지면서 아프거나 때로는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축적돼온 것일 터이다. 그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 하나의 책으로 혹은 하나의 글로 쉽게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배울 수 있다는 것, 선조들의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을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기술과 지혜는 모두 그분들의 덕이다. 그러기에 이리 쉽게 얻은 것을 이용해서 우리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하면서 돌려줘야 한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도 사회에 기꺼이 기여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 책임감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지난 7월 초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에서 주최한 가족경영협약 강사 워크숍이 있었다. 여기에 참석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은 2년 전부터 여러 차례 강사양성 교육을 받고 실제 가족경영협약 보조강사로 활동하다가 2019년 12월 강사로 위촉됐으며, 강사모임을 구성했다.

A씨는 1985년부터 2019년까지 35년을 농촌지도직으로 근무했다. 아직 강의는 부담되지만 퇴직 후에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직에서 하던 일과 경험을 살려서 전문가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스스로 자긍심을 갖게 됐다. “주변에서 강사로 참여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가족끼리 소통하고 협의하면서 농가경영을 합리적으로 개선하자는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부터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농가뿐 아니라 많은 가정에 갈등이 있는데 얘기만 해도 풀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이런 갈등을 잘 풀어가도록 돕는다는 기대감이 있다. 한 분야에서 30~40년 일한 사람들이 전문가로 이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면서 의욕을 내비쳤다.

B씨는 38년 근무했다. 주변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평소 농가를 방문할 때마다 느꼈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겼다면서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농가에서 부부가 같이 지내면서도 대화하지 않는 집이 많아서 안타까웠는데, 가족경영협약 워크숍 과정에서 가족 간에 눈빛이 달라지고, 서로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데 정말 보람을 느꼈다. 가족끼리 직접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꺼내 풀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가족문제도 완화할 수 있는 기회인데,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 아직은 강의가 부담이 되지만 열심히 해서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37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C씨도 강사다. 그 역시 가족경영협약의 필요성을 공감했다. 워크숍 과정에서 참여자가 변화하는 것을 보고 “뭔가 건드려 줬구나. 논의하지 않던 주제를 깊이 논의하게 하면서 뭔가 깊은 실질적 문제를 던졌구나. 여기에 내가 기여한 것 같다. 그리고 교육을 마치고 나서, 고맙다고 인사하며 사이좋게 떠나는 가족을 보면 정말 뿌듯하다.”고 했다. 다만 교육받은 농가들에 대한 지속적인 변화 모니터링, 필요한 도움 제공, 단체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농가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참여자 공모방식 다양화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현대경제연구원(2017)에 따르면 은퇴예정자의 경력 관련성이 높은 직업은 공공행정, 교육서비스 등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의 중심에는 경제성장 주역에서 ‘실버 쓰나미’로 내몰리는 베이비부머들이 있고, 그중 고학력 경력자(실버칼라)는 55세 이상 근로자 5명 중 1명으로, 이들을 위한 매력적인 일자리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미 퇴직자의 경력에 기반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학습하고 다양한 연령층과 자연스럽게 융합하면서 새로운 경력을 쌓아나갈 수 있도록 경력재설계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노후준비지원법을 제정하고 개인별 맞춤형 노후준비 컨설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열망을 다 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은 이들을 품을 수 있는 매력적인 일자리가 많다. 농촌진흥청의 조사에 따르면 강사뿐 아니라 치유농장 창업에도 68%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2020)에 따르면 농업은 새로운 직업 창출에도 그 영역이 넓다. 청년부터 은퇴자까지 농업을 통한 즐거운 사회적 기여가 가능하다. 이들의 의욕과 열정을 담을 구조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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