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한국농어민신문] 

10여년 전쯤에 한 번도 뵌 적 없는 보건소 직원분이 전화를 주셨다. 취약계층 임산부 영유아의 영양상태 개선을 위해 식료품 지원과 영양교육을 하는 ‘영양플러스 사업’ 담당자분이셨는데 좋은 농산물로 영양플러스 품목을 대상자들에게 공급하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가 먹거리 정의 활동을 하면서 유기농 꾸러미를 판매하고 있으니 소문을 듣고 눈여겨보다가 전화를 주신 것 같았다. 찾아뵈었더니 영양플러스 제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영양 공급으로 인해 원물 농산물로 공급되던 품목들이 가공식품으로 대체되는 일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 걱정이라며 영양플러스 업체가 되어 이런 상황을 바꾸어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가 먹거리 정의 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경제적 능력을 이유로 누군가는 좋은 먹거리에 대한 접근 자체가 보장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깨달음이었기 때문에 그분의 제안은 우리의 활동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소농이었으므로 입찰에 응할 자격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고,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하는 분을 만나뵙게 되다니! 하는 감동이 이 일의 마지막이었다.

그즈음 서울 모 지역에서 공부방을 하시는 선생님도 뵙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친환경급식이 되고 있는데 지역아동센터와 공부방에서는 친환경급식이 시행되지 않고 있으니 이를 바꾸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이 인원수가 적어 요청하는 품목과 양이 적더라도 공부방에서 아이들에게 친환경 먹거리를 먹일 수 있기를 희망하셨다. 일주일에 당근 하나, 감자 1kg이 필요하더라도 보내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한동안 공부방에 유기농산물을 보내드리게 되었다. 이 공부방의 선생님과 공부방을 다니며 성장한 아이들, 지역주민들은 힘을 합쳐 지역사회를 이어가고 돌보는 협동조합을 만들었고, 동네노인 따뜻한 밥 한 끼 프로젝트인 노인밥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5년여 전쯤에 자활센터가 먹거리 돌봄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은지 고민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분들은 영양플러스 공급 업체가 되어 원가는 더 많이 들고 자활센터의 이윤이 없더라도 영양플러스 대상자들에게 친환경먹거리를 공급하는 계획을 세웠다. 소농인 우리 집의 양으로는 도저히 가능하지 않음으로 친환경농산물로 영양플러스 품목을 만들어내기 위해 알고 있는 친환경농부들의 유기농 감자를 공수했고, 제주도 농부들의 당근을 공수했다. 자활센터는 백 보, 이백 보를 뛰며 영양플러스 꾸러미를 친환경 먹거리로 공급했다. 나라는 한 개인의 작은 울타리 안에서 만난 분들도 더 좋은 먹거리로 세상을 채우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는데 친환경학교급식이 실현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며칠 전 그야 말로 “달랑 이거야”라는 말을 해도 좋을 만큼 가공식품으로만 구성된 일부 학교의 급식에 대한 뉴스가 SNS를 달궜고 많은 사람의 공분을 샀다. 사람들이 공분한 이유는 “이런 걸 학교 급식으로 주다니”였다. 그런데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경기도교육청의 급식 꾸러미 중 상당수가 딱 이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등교가 수개월 미뤄지자 꾸러미 형태로 학교급식이 학생들에게 전해졌다. 이미 급식 꾸러미 공급이 완료된 곳도 있지만 최근에서야 급식꾸러미가 지급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채소와 과일을 중심으로 품목을 구성한 급식 꾸러미도 있지만 쌀만 보내준 곳도, 가공식품으로만 구성해서 보내는 곳들도 있다. 한쪽에선 가공급식으로 학교에서 급식을 주는 것에 분노하고 다른 한쪽에선 가공식품으로 급식꾸러미를 만들고 있다. 한쪽에선 학교급식 생산을 담당해온 농민들을 생각하자고 하고, 한쪽에선 배송 중 식품 안전사고의 우려와 편의성을 들어 가공식품만을 구성한다.

한쪽에선 학교급식 생산자들이 주체가 되어 꾸러미를 배송하고, 한쪽에선 모지주회사를 선정하고 포인트를 지급해 온라인 구입을 유도한다. 일부는 마치 편의점 쇼핑이라도 한 듯 대기업 가공식품으로만 학교급식 꾸러미를 구성하기도 한다. 가공식품으로만 된 학교급식 꾸러미를 그대로 학교 급식실로 옮겨놓고 우리 아이들이 먹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아이들은 극한 급식이라 말할 것이고 우리 사회는 분노할 것이다.

학교급식은 학생들의 건강권, 자국 농업의 유지와 보호, 바른 식생활 교육을 위한 사회복지이며, 공공서비스이다. 오랜 세월 지금의 학교급식 체계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사회는 노력해왔다. 비록 감염병 사태로 인해 꾸러미 형태의 공급이 일시적으로 필요하다 해도 학교급식 꾸러미는 급식의 연장이지 불용예산 집행을 위한 교육당국과 행정의 편이, 학부모의 조리 편의성 선호를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급식 꾸러미는 학생의 건강권, 바른 식생활교육, 급식농산물 계약재배 농민 보호와 우리 농산물 보호라는 의미에 충실해야 하고, 한계가 있겠지만 코로나19로 인한 급식관계 업체 경영난 해소를 위한 노력도 담아내야 한다.

전례 없이 재난소득이 지급되고 사회복지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때에, 코로나19로 자국의 식량자급이 중요하다고 말해지는 이때, 코로나19라는 사회적 재난 앞에 학교급식 꾸러미가 이 정도는 용인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말자. 지금은 오히려 학교급식의 사회복지와 공공서비스의 의미를 더욱 확장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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