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인 충남마을만들기지원센터장

대부분의 권한 행정에 집중된 탓
‘거버넌스’ 농정 실현 어렵고 더뎌
정책 영역 맡을 중간지원조직 필요

민관협치(民官協治)로 주로 번역되어 사용되는 거버넌스란 개념이 우리 사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서구에서 논의가 활발했던 영향도 있었지만 때마침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한 영향도 컸다. 당시 이 분야에 처음 접하며 ‘행정과 민간이 협력하여 지역사회를 통치’하는 시대가 과연 오기나 할까 반신반의했다.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 성숙한 서구가 걸어온 길과 우리 사회는 너무 다르고, 특히 농촌에는 반봉건적인 사회문화가 광범위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다시 30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정권도 보수와 진보를 번갈아 경험하며 문재인 정부에 이르렀다. 지방자치 선거도 7~8회 있었고, 전체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가 조금씩 발전해온 것은 분명하다. 이제는 중앙이나 지방이나 정책 영역에서 민관협치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행정도 민간도 ‘정책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집행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에 합당하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인터넷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니 농정 분야에서 협치가 처음 거론된 것은 제1기 농특위가 출발했던 2004년경으로 보인다. 그 뒤로 오랫동안 잠잠하다가 2014년경부터 다시 신문기사에 나타나는데 농어업회의소가 큰 계기였다. 삼농혁신(충남), 삼락농정(전북) 등 협치농정을 전면에 내건 지자체도 등장하여 농정에도 민관협치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숙제가 많고 때로는 절망까지 하게 된다. 왜 이렇게 어렵고 더딜까? 모두가 말로는 협치 하자고 하면서 실제 논의과정에 들어가면 거의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무엇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표현되듯이 행정과 민간 사이에 ‘대등한 협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탓이 크다. 대부분의 권한은 행정에 집중되어 있고, 민간은 동원되는 존재로 인식된다. 행정은 민간의 역량이나 자세를 불신하고, 민간 또한 행정의 ‘거수기’ 역할을 강요한다고 반발한다. 협치농정을 전면에 내건 농업회의소 논의에서도 이런 논란은 거듭된다. 농정의 각종 위원회도 마찬가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최근에 많이 강조되는 중간지원조직 논의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크다. 중간지원조직은 민관협치 관점에서 ‘정책의 공동집행’을 담당하기 위해 법령이나 조례에 근거하여 설치되는, 흔히 ‘~~지원센터’라 불리는 조직을 말한다. 도시재생지원센터나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일자리지원센터 등이 대표적이다. 농정 분야에서는 귀농귀촌지원센터, 농촌활성화지원센터, 농촌융복합(6차산업)지원센터, 먹거리통합(학교급식)지원센터 등이 있다. 마을만들기(공동체)지원센터는 앞의 영역과 달리 법령의 근거 없이 민간이 주도하여 설치해왔다는 점이 특이하다.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되어 있지 않지만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이런 경향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 가지 명확한 것은 현재의 농업·농촌문제가 매우 복잡하여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가와 주도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또 정책의 융복합과 협업을 통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을자치, 주민자치의 역량을 키워 민간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과 행정이 공공서비스를 통해 공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구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현장성, 지속성이 필요한 정책 영역에는 중간지원조직의 설치가 매우 중요하다. 앞에서 나열한 유형들이 그러한 정책 영역인 셈이다.

당연히 중간지원조직을 설치한다 하여 농업·농촌문제가 쉽게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민관협치의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어 있지 않으니 ‘권한과 책임’을 둘러싸고 행정과 수탁법인, 중간지원조직 사이에 갈등하는 사례도 많다. 행정 직영으로 운영되는 경우에는 존재감 자체가 미미한 경우도 많다. 중간지원조직이 조례에 근거하여 설치되는, 공공성이 있는 행정사무임에도 보조금과 위탁금을 구분하지 못하는 공무원도 많다. 민간위탁 제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민관협치가 구호에 그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간지원조직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경로는 지역 역량을 반영하여 결정된다. 행정과 민간의 합의 수준이 높고 제도적 이해가 깊을수록 통합형의 민간위탁 형식을 취한다.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농촌 지역은 행정 직영으로 설치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전업 활동가가 상주하면서 법인 설립까지 지원하여 민간위탁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대체로 3년 소요). 이런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이미 열려 있고,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

충남에는 마을만들기 분야로만 14개 시군에 설치되어 있고, 70여명의 활동가들이 상주하면서 주민 활동을 밀착 지원하고 있다. 이웃 전북 또한 비슷하다. 모두 중앙정부 지원 없이 광역 자치단체 주도로 풀뿌리에서부터 성장한 조직들이다. 앞으로 사회적경제나 농촌관광, 6차산업, 푸드플랜, 사회적농업, 마을교육공동체 등의 영역과 결합한다면 현장 전문가들은 크게 늘어나고 정책의 질도 빠르게 높아질 수 있다. 가장 확실한 공공일자리 정책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 중인 신활력플러스 사업과 농촌협약 제도도 이런 방향으로 활용한다면 협치농정의 실현도 그리 멀지 않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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