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민신문]

박진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

이십년 전에 미국노총인 AFL-CIO의 초대를 받아 미국의 몇 개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은 주로 미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조합과 단체, 연구자들을 만났는데 미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주노동자이거나 불법체류노동자들이었다. 

우리를 안내해준 미국노총 담당자는 소위 3D 업종이라고 말하는 분야의 일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한축을 이주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음에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살펴보면서 대한민국 역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러나 그 후 오랫동안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몹시 부끄럽게도 귀농해 농촌에 살기 전까지 이주노동자들은 공단과 식당에만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 내가 농업분야 이주노동자를 마주한 것은 귀농 초창기 어느 축사에서였다. 소 키우기를 궁금해 하던 남편과 함께 어느 축사를 방문했는데 이주노동자 한 분이 부지런히 축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원래 두 분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분이 어제 점심으로 나온 만두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앓아누워 오늘은 한 분만 일하고 있다고 했다. 어떻게 다 가려서 점심 준비를 할 수 있냐며 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축사 주인의 말도 이어졌다. 우리는 소 키우기를 들으러 갔다가 오히려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태도에 충격을 받고 돌아왔다.

그 후 축사에서, 토마토하우스에서, 버섯재배농장에서, 미나리 하우스에서 우리가 제법 규모 있는 농장이라고 말하는 농촌의 곳곳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십 여년이 지난 지금은 사과농장에서 시금치 밭에서 내가 사는 지역 어디를 가도, 다른 농촌 지역 어디를 가도 농업현장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건 모르건 간에, 우리가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간에 이주노동자들의 농업노동이 우리의 밥상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농촌의 여러 가지 어려움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올 상반기 외국인 계절근로자 3052명은 한국으로 오지 못하고 있고, 고용허가제로 농축산업 분야에서 일하기로 되어있는 6400명 중 720명만 입국한 상태라고 한다. 사과꽃 딸 사람이 없고, 양파를 수확할 사람이 없고, 농번기 일손 부족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이 이어진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 일손. 심기부터 수확까지 이제 이주노동자들의 일손이 없으면 우리 농업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허가를 받고 일을 하는 농업노동자들이면 당연히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임에도 노동권을 보장하는 근로기준법 제63조에서는 1. 토지의 경작·개간, 식물의 재식(栽植)·재배·채취 사업, 그 밖의 농림 사업, 2. 동물의 사육, 수산 동식물의 채포(採捕)·양식 사업, 그 밖의 축산, 양잠, 수산 사업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적용 제외를 명시하여 농축산업분야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박탈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1991년 3D 업종의 일손을 구하기 위해 해외투자업체 연수제를 시작했고, 1993년 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를 실시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을 본격화했다. 연수라는 말로 노동을 가린 것이다. 정당한 노동을 연수로 위장해 온 탓에 체불임금, 산재불처리 등 사업주들의 불법이 만연했고, 외노자로 불리며 이주 노동자들의 신분과 노동의 가치가 비하되고 폄하되었다. 외국인산업연수생제도가 고용허가제로 변하고, 농축산업분야의 TO가 생겼다.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조항으로 인해 휴일 휴게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고,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기도 했다. 

밭 한가운데 목욕탕,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받기도 했으며 사업주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여성노동자의 경우 성추행을 당했고, 다른 농장에 불법 파견되고, 일하다 다쳐도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런 사업주의 불법을 막는 방편으로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지고, 숙식비 징수 상한제 등이 실시되고 있으나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늘도 어느 이주노동자는 농장주에게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고, 계약서를 본 적도 없다.

적용 예외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제63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박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이주노동자이니까 괜찮아, 농업분야는 특수성이 있으니 그래도 되지 않아 라고 말하지 말자.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을 연수로 치부하던 그 시절 그 모습과 노동을 현장실습으로 위장하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똑같이 닮아있지 않은가? 휴일, 휴게시간 적용이 예외 되는 것은 5인 미만 사업장과 닮아있지 않은가? 노동의 본질을 외면하며 발생되는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어 일어나지 않는다.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은 부족한 일손을 메우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농업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농민과 농업노동자의 한축이다. 더 이상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을 그림자 농민, 그림자 농업노동자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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