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위원 · 농정전문기자

[한국농어민신문 이상길 농정전문기자]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치러진 4.15 총선이 여권의 대승으로 끝났다. 국회 300석 가운데 5분의3에 해당하는, 180석의 거대여당이 탄생한 것이다. 여러 분석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 선거 결과가 시대정신의 반영이란 점이다. 국민들은 2016년 촛불혁명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이번 총선으로 이어지는 선택을 통해 공정한 나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시대전환에 힘을 몰아주고 있다. 모두들 이런 민심에 대해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여야 제 정당은 새겨야 한다. 시대정신을 외면하고 구태를 반복하는 정치세력은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한 순간에 몰락한다는 사실을.

그런 점에서 정부여당은 180석이라는 막대한 의석이 국민으로부터 나왔다는 점을 한 시도 잊지 말고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가시밭길은 지금부터다. 지금까지 코로나 방역에 정신이 없었다면, 이제부터는 코로나로 인한 위기요소의 축적이 임계점을 넘어 경제사회 전체에 거대한 충격파가 밀려올 것이다.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경제의 마이너스 성장, 국내 경기의 침체 속에서 일자리가 사라지고, 특히 서민들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 IMF 위기 때나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늘 피해는 서민들의 몫이었다. 위기 때 마다 1% 부자들은 부를 축적했고, 서민들은 고통분담이란 이름으로 어려움 속에 내몰렸다. 이미 농민,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이 여당에 힘을 모아준 것은 IMF나 금융위기 때처럼 서민, 약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피해를 전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두가 어려움을 나누면서 함께 이 난국을 더불어 헤쳐 나가자는 기대에서다. 나아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적폐청산, 경제민주화, 민주인권, 노동과 농민 존중 사회를 향한 촛불혁명을 완수하란 것이다. 돈과 성장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에 주력하란 얘기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내세운 공약을 보면, 국민이 행복한 사회, 지속가능한 사회보다는 경기 활성화, 즉 경제성장에 방점이 찍히는 듯 보여 우려스럽다. 선거 과정에서 종부세 완화 논란을 빚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성장과 코로나 난국에서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민생을 우선해야지, 부동산 규제 완화처럼 소수를 위한 기존의 성장주의, 개발주의를 답습하고 개혁을 후퇴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농업분야도 걱정스럽다. 농민, 시민사회는 21대 국회의 농정 과제로 경자유전에 입각한 농민 중심의 농지정의 실현, 공익직불제를 포함한 농업예산 확대, 농산물 최저가격보장제 도입, 농민수당 내지 농민기본소득제, 식량자급률 법제화, 후계농과 귀농 등 농촌인력 지원 강화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거대 양당은 이런 요구를 제대로 공약에 담아내지 않았다.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위원장 김호 단국대 교수)는 21대 총선 주요 4개 정당의 농정공약을 평가한 결과, 양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농정 공약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의 경우 농식품부가 추진 중인 업무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20대 총선의 공약보다 개혁성에서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다소 개혁적인 공약은 임업직불제 및 수산업직불제, 채소 계약생산물량을 15%에서 30%까지 점진적으로 늘려가겠다는 정도로 꼽았다. 반면 현재 중요한 이슈인 농지와 농민수당, 농민기본소득 대한 어떠한 공약도 제시하지 않고, 기존 진행 사업과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 민주당은 공약을 발표하면서 “농어업의 경쟁력을 제고 하고 농수산식품산업을 과감하게 혁신하겠다”며 역대 정부의 경쟁력주의와 다르지 않은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통합당은 1년에 120만원 수준의 농어업인 연금제, 농업예산을 전체 예산의 5%까지 증가, 농업통계국 신설, 농업인안전보험, 농업수입보장보험의 확대 등을 공약했으나 그 외에는 현재의 농업정책 내에 머물러있다고 평가됐다. 정의당과 민중당은 농지정의 실현, 농민기본소득, 농민수당 등의 공약을 선보였지만, 정의당은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고, 민중당은 의석을 얻지 못했다.

오늘 5월말이면 제 21대 국회가 임기를 시작한다. 지금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당면과제 해결과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문명 전환의 시대다. 농업분야에서도 이미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농정 대전환의 합의가 이뤄져 있다.

21대 국회와 정부는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대전환의 시대정신에 맞춰 개혁과제를 법제화하고, 정책으로 실행해야 한다. 특히 여권은 대선과 지방선거, 이번 총선을 통해 행정부와 지방정부, 입법부를 장악한 만큼 더 이상 민심을 회피하고 개혁을 지연시킬 핑계는 없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오만과 타성에 빠져 기존의 행태를 반복한다면, 2년 뒤 대선을 비롯한 다음 선거에서 심판의 불길이 어느 정치세력을 향할지 모른다. 민심은 천심이다. 국민 앞에서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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